홍도 ep5. 깃대봉 혼자는 무서웠습니다
날씨가 그냥 가만히 있어도 땀이 절절 나는 날 나는 등산을 결심했다.
사실 어제 이곳 사람들 말로는 해가 뜨기 전 아침 또는 해가 떨어질 것 같은 시간대에 가야 한다고 말해줬다. 안 그러면 더위를 타서 너무 힘들 거라며.. 하지만 나는 아침 시간대에 너무 잘 자고 일어나서 아침밥시간 마저 보내 버린 상황이었다.
숙소 이모님은 혼자 산을 타는 건 너무 위험하다며 분명 오후 배로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서 산을 타는 분들이 있다고 기다렸다가 따라가라고 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친화력은 자신 있던 나는 그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산 길도 모르고 혼자 오르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도 못 요청하니까..!
밥을 먹고 숙소 앞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카페 사장님하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같은 충청남도 출신인걸 알았다. 결혼하면서 오게 되었다는데 문득 '나도 결혼하고 섬에 살아야 되는 상황이 오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답은 '몰라요'이다. 사람이 중요하지 지역이 중요할까 싶기도 한데,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정말 '몰라요'가 '몰라요'이다.
카페 사장님이 지금 사람들 올라가니까 올라가라는 말에 후다닥 갔다. 친화력이랑 의지력 모든 다 좋은데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체력'이다. 등산을 즐기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았던 나는 진짜 사람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겠더라 그래도 꾸역꾸역 올라가니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 아기자기하고 이쁜 섬을 사람들은 보통 하루 코스로 들렸다가 간다고 하는데, 나는 낚시꾼도 아니면서 2박 3일이나 있는다고 하니 놀랍겠지! 그래도 매일매일 새로운 시도를 하고 주변을 살펴보면서 이렇게 만끽하고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 바로 등산하는 날!
옆에 같이 등산하는 이모님? 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찍어주면서 그 수건 그렇게 찍는 거 맞냐고 물으신다. 나는 머리가 지금 산발이라서 괜찮은데 왜 그러시지?라고 생각했는데......
사우디 여성 같다면서 이야기해 주시는 게 무슨 뜻인지 확! 와닿았다. 얼굴을 다 가리는 히잡을 쓴 인증숏 느낌으로 보였나 보다. 그래서 내리고 한 컷 더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내리고 남긴 사진도 너무 잘 남겼다고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어 준 이모는 홍도가 벌써 3번째라고 한다. 그리고 이 산도 처음이 아니라면서 이곳이 정말 아름다워서 계속 방문하게 되었다고 말해줬다.
등산을 할 때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고 헥헥 거리는 느낌에 땅만 바라보고 걷는 게 거의 70% 이상이다. 그런데 옆에 있던 이모가 하는 말이 "산은 내 앞만 보고 걸으면서 타는 게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는 거라며 여기 나무에 타고 있는 식물을 봐봐 자연이 얼마나 아름답니?"라는데 그 순간 턱끝까지 올라오던 숨이 잠시 다르게 쉬어지는 것 같았다.
이곳만의 공기와 이곳만의 식물 그리고 이곳에 있는 나무들을 느끼니까 새삼 목표점만 보며 숨차게 달렸던 게 다르게 느껴졌다. 때때로 인생도 그런 거 같다. 목표점이 없으면 방황하지만 너무 명확한 목표점은 주위를 둘러보지도 여유 있게 더 그곳에서 보고 느껴야 하는 걸 알아가지 못한 채 정상에서 만의 공기와 성취 그리고 경관만을 기억하는 것 같다.
마치 업적만을 남긴 채 그 가는 길 가운데 무엇이 있는지는 기억조차 못하고 달리는 기분이다.
사실 나는 내 삶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산을 타듯이 벅차오르는 숨을 가쁘게 쉬어가면서 언제 도착할까? 어디쯤 왔을까?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빨리 올라가지? 언제 나는 저만큼 따라가나? 등등 생각들은 단순히 등산할 때만 있는 생각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의 같은 선상 위에서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느끼는 심리와도 비슷한 것 같았다.
같은 길로 내려가지 않는다면 다시 살펴볼 기회가 없는 것들. 알고 보면 빨리 가 중요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조급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면 좀 세상이 달리 보이지 않을까? 오늘 그런 생각을 했다.
별거 아닌 거미줄을 보면서 우리가 했던 대화는 '산에 뱀이 있을까?'이런 대화를 오고 갔다.
산에 뱀이 없다고 하는 데 있다고 하고 정답은 모르겠지만 속으로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뱀을 만났을 때 대처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참에 저녁에 숙소 들어가면 뱀 만났을 때 대처 방법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빨리 올라가서 정상에서 사진 찍고 이것저것 봐야지!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천천히 걷다 보니 정상에 올라와 있었다. 돌이켜 보면 올라가는 길들 가운데 신기했던 식물들과 거미, 다람쥐, 그리고 돌길, 나무 같은 게 더 생각이 나는 거 같았다.
사실 내 인생에서 필요한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어떠한 자격증을 취득했고, 어디서 일했습니다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마주하고 또 보고 느꼈던 것들. 나는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어떤 게 기억 남는지.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었다.
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작성하는 맥락은 같았고 나의 스펙을 한 줄 더 쓰는 게 중요했는데 오늘만큼은 내 삶의 스토리라는 걸 필름처럼 써 지나치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의 목표를 가면서 어떠한 것들은 보고 또 느끼고 경험했는가. 무엇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가.
도착했을 때 비롯소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주위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들고 있는 짐을 잠시 내려놔도 좋고, 들고 주위를 바라봐도 괜찮다.
왜냐하면 분명한 목표가 있고 길이 있다면 우리는 도착해 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하니까. 언제 도착하고 또 언제 떠나는지 차이일 뿐 그곳에 가는 목표가 분명하고, 끊임없이 가다 보면 나는 도착해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충분히 즐길 준비는 언제나 되어 있다. 최선을 다하고 도착한다면 뿌듯한 그 보람을 간직하면서 말이다. 어느 철학 책에서 산을 오르면서 인생을 이야기하는 작가님이 있었다.
읽기 전에는 등산으로 인생을 이야기한다는 건 너무 투박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누구와 함께 오르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또 어떤 동식물을 만나고, 마침내 도착하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내 삶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지 내면을 더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홍도에는 1구와 2구 총 2개의 마을이 있다.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등산을 통해서 산을 넘는 방법이다. 과거에는 1구에 학교가 있어서 초등학생들이 이 산을 넘어서 학교를 오고 갔다고 한다. 현재는 1구에만 학생들이 있다고 하는데 문득 이 산을 넘어서 교육을 받으러 학교를 가는 학생들은 어떤 마음과 생각을 지니었을까 궁금해졌다.
궁금한 거와 다르게 사실 그냥 가야 하니까 당연하게 가는 걸 수 있지만, 또 어쩌면 교육에 대한 열정이 있는 학생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알 수는 없지만 관광으로 와서 등산 또한 관광의 목적으로 한 나로서는 다양한 생각들이 드는 것 같다.
내려가는 길 구름이 가득 낀 게 오늘은 노을은 안 보여주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점점 내려가면서 보이는 게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어쩌면 오늘 노을을 볼 수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어제 실패해서 오늘은 꼭! 보고 싶었다.)
거의 다 하산할 때 노을이 보이는 거 같았다. 그리고 '홍도초등학교'는 첫날부터 너무 예쁘다고 생각이 들었다. 전교생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교사와 교장선생님 각 1명씩 있는 학교라고 전해 들었다.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이쁜 학교가 학생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폐교를 해야 한다고 하니... 현실적으로는 맞지만... 어찌 표현을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 마음속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 같다. 좋은 위치에 좋은 학교라는 생각이 확! 들어서 그런 느낌이다.
천천히 등산하고 내려오면서 태양이 보여서 잡았다! 붉고 동그랗게 나타난 게 운이 정말 좋은 하루다.
아마 정상에 더 머물렀다가 왔으면 못 봤을 노을이다. 모든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게 있는 거 같다.
올라가는 수고를 하고, 정상을 즐기고 또 내려와야 할 때는 내려와야 하는.. 그런데 내려온다고 그게 추락과 같은 건 아니다. 또 다른 아름다움이 나를 이렇게 반겨준다고 생각하면 사실 내려가는 것 또한 설레는 일이 아닐까? 때때로 의도하지 않게 떨어지 듯 내려올 수 있지만, 그 나름대로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
왜냐면 올라가 보았고, 올라가지 않았다면 올라가는 노력을 했으니까..!
오늘 나는 올라가는 노력을 하였고, 또 그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산악회 이모님 삼촌님들 덕분에
"여기 이거 봐봐, 저거 봐봐, "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것만 같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나와 다르게 여기저기 산을 즐기는 그들을 보고 정상만 보고 걷는 게 아닌 산을 보고 느끼는 거라고 등산에 대해 다시 재해석하게 되었다.
인생을 비유할 때 달리기도 많이 이야기하고, 등산도 많이 이야기하고 다양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맥락은 결국 같은 것 같다. 주위를 살필 틈도 없이 빨리 가야 하는 때도 있지만, 가끔은 우리 곁의 환경도 사람도 그리고 평소 쉽게 접하지 못한 것들도 모두 살피면서 나아가는 게 진정으로 인생을 좀 더 보람차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나는 오늘 그렇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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