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루캐리 Jul 05. 2023

홍보팀 속성 글쓰기: 연설문(축사, 개회사, 환영사)

며칠 전, 아주 급하게 행사 인사말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세 시간 후 해외에서 시작되는 행사였다. 사실 세 시간이면 인사말을 세 번은 쓰고도 남을 시간이지만, 퇴근까지는 고작 30분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제대로 정리된 행사 개요가 없어 행사명, 프로젝트명, 참여업체만 달랑 전달받았다. 하지만 퇴근이 무엇인가. 하루살이 직장인의 희망이자 가장 강력한 동력이 아니던가. 30분 만에 800자 분량의 인사말을 완성한 후 늦지 않게 퇴근할 수 있었다. 최고로 완벽하다고는 못하겠지만 90점 언저리는 된 것 같다.


홍보담당자로 일하며 홈페이지 문구, 채용 포스터의 카피, SNS 콘텐츠부터 보도자료, 기획기사, 칼럼, 백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글을 쓴다. 개인적으로 가장 품이 많이 드는 건 축사, 개회사, 환영사와 같은 연설문이다. 목적과 청자가 명확한 글이기에 기본적인 틀은 정해져 있으나 분량 맞추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읽기가 아닌 말하기를 위한 것이므로 지나친 문어체는 피하면서도 어느 정도 품격과 격식을 갖춰야 한다. 다소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요령이 생기면 속도가 제법 빨라지기도 한다.


다행히 조금만 검색하면 참고자료가 엄청나게 많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역대 대통령들의 연설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카테고리(환영사, 국회 연설, 신년사, 기념사, 취임사, 축사 등)를 설정하고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어 편리하다. 포털에서는 '전문(全文)'이라는 검색어를 활용한다. "개회사 전문", "축사 전문"과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면 대통령, 국회의원, 지자체장, 협회장의 연설문이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진다.


다양한 연설문을 읽으며 흐름을 파악해놓으면 글의 구조를 짜기 쉬워진다. 두괄식으로 첫 문단을 시작해 과거(배경, 의의, 역사)-현재(현황, 성과)-미래(비전, 기대, 당부)-(PR)-마무리 순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각각에 해당하는 핵심 메시지를 2~3개 정한 후 살을 붙여나가면 한결 수월하다.


연설문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은 따로 적어서 모아두면 유용하다. 대표적으로 가치, 감사, 건승, 격려, 결실, 경의, 기대, 기원, 노고, 노력, 당부, 도약, 발전, 사명, 성원, 역할, 응원, 조력, 존경, 지혜, 통찰, 헌신 등이 있다. 각 단어를 글의 구조에 따라 분류하면 갈피를 잡기 편하다. 과거(노고, 사명, 존경, 헌신)-현재(결실, 발전, 역할)-미래(기대, 도약)-마무리(감사, 건승, 조력) 정도로 단어를 분류하면 글을 전개하기가 조금 더 수월할 것이다.


소재나 주제와 들어맞으면서 감사와 격려, 존경 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표현을 활용하면 연설문이 한층 다채로워진다. 대통령 연설문 중 유독 마음에 드는 표현을 몇 가지 꼽아봤다. 저렇게까지 거창한 대의를 나타낼 일이 많지는 않겠지만 표현의 방식은 충분히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군 창군 70주년: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 국민의 가장 강건한 날개

부산항 미래비전 선포식: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우리 해운·항만의 기상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요식 축사: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마음

세계변호사협회 2019 서울총회: 촛불혁명의 나라 대한민국

제14회 세계해양포럼: 바다를 지키면서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계기

제69주년 국군의 날: 평화와 조국을 수호하는 보루

중앙경찰학교 제296기 졸업식: 국민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삶, 가장 가까운 곳의 안보

한국신문협회 창립 60주년: 신문은 세상과 우리를 연결시켜 주는 창



연설문을 마무리하기 전에는 연설의 성격이나 상황 등을 고려해 적당한 수준의 기업 PR을 집어넣을 수도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제 11회 세계한인의 날 및 2017 세계한인회장대회 축사를 보면 한인회 및 재외동포에 대한 감사로 시작한 후 관련 정책을 언급하고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당부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제11회 여성리더스포럼 축사는 포럼의 의의를 먼저 언급한 후 서울시의 역대 주요 여성 정책과 최신 정책을 홍보하고 있다. 기업이라면 짧게는 한두 문장의 포부를 넣는 곳으로 충분할 수도 있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성과와 비전 등을 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맥락 없는 제품 및 서비스 홍보처럼 보일 경우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기 쉬우니 산업 동향이나 시의성 등을 고려해 너무 튀지 않게 다듬길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퇴고 단계에서는 연설문을 꼭 소리 내 읽어보길 추천한다. 키보드로 쓴 글이기에 입 밖에 내면 미묘하게 부자연스럽거나 호흡이 걸리적거리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연설 대부분은 말하기보다는 읽기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지만, 어쨌든 주목적은 발화를 통한 전달이니 입에 가장 '잘 붙게' 윤문하면 더욱 완성도 높은 연설문이 되리라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자미팅, 어디서 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