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의 낭만, 오프라인의 현실
유럽에서, 그중에서도 21세기 들어 가장 ‘핫’한 도시 중 하나인 베를린에서 소위 말하는 예술을 하고 산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멋있다’, ‘자유롭다’, 혹은 매체들에서 흔하게 보이는 자유분방한 외국인(그중에서도 ‘백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예술계에서 일한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 로맨틱하지도, 자유롭지도 않다. 오히려 매일매일이 서바이벌에 가깝다. 예술은 어느 곳에서도 생계를 보장받기 힘든 분야이지만 그것도 타지에서. 국내라면 무엇을 해도 먹고살기에 아무 걱정 없을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외국에서 일을 하고 페이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나간다는 건 4-5배는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예술계의 ‘열정 페이’는 선진국이라 불리는 독일에도 존재한다. 정당한 페이를 받는 것조차 싸우고 설득하고, 변호사나 관련기관을 알아보기까지 해야 되는 건 흔한 일이고, 더욱 안타깝고 때로는 화가 나기까지 하는 건 이런 환경을 이용해 식당 서빙 알바에게조차 무리한 요구를 계속해서 하는 한인업소들과, 이런 곳에서 일하며 같은 알바에게도 텃세를 부리는 어린 친구들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는 것. 그뿐인가, 인종차별을 당해 추행이나 폭행의 피해자 입장에서 신고를 해도 오히려 경찰에게 공격을 받거나 무시를 당하는 외국인들의 사례는 너무 많이 들어 이젠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곳에서, 뜻하는 일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 있게 생각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인 것도, 스스로 택한 일인 것도 사실이다. 다만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베를린 예술가들의 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이미지와는 다르다’라는 것.
어제 베를린에서 예술을 하는 다른 친구와의 대화에서 그 친구는 이렇게 표현했다.
‘다들 미친 듯이 흰머리가 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지’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이야기. 베를린에서 우리는 정말 많은 흰머리를 얻었다.
21세기의 많은 나라들에선,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름 샌들을 어떤 브랜드에서 살지, 마음에 드는 명품을 굳이 필요는 없지만 살지 말지를 고민하는 일은 흔해도 매일매일의 생존을 걱정하고, 먹을 음식이 없어 며칠, 몇 주, 몇 달을 굶다시피 하며 살아가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 곳에 존재하고, 베를린에서 홀로 예술을 하면서 살아가기를 선택했다면 그런 경험을 할 확률이 올라간다. 어느샌가 거울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되는 늘어난 흰머리는 덤. 여기는 그런 곳이다.
아무리 내 인스타그램에 베를린의 핫하고 예쁜 카페들과, 별 거 없이 멋있어 보이는 외국인 친구들과, 화려해 보이는 공연 사진들이 난무해도 현실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렇다고 이 삶은 힘드니 다른 선택을 하라 얘기할 마음은 없다. 자신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굳이. 다만 ‘멋있어 보여서’ 베를린에서 살고 싶다 하는 사람들에겐 다시 생각해보라 말하고 싶다.
타지인의 유럽에서의 일상은 ‘멋있지 않은’ 일들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