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날의 무거운 생각을 들어올린다. 백지를 가득 채워본다.
사랑이 뭘까. 고민한다.
언젠가 부터 좋아한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은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사랑한다고 껴안아주고 싶은 영혼들이 눈에 가득했다.
분명 사랑은 완벽하게 좋고 예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느끼는 사랑을 상대에게 온전하게 전달하기란 쉽지 않았다. 언제나 옳고 예쁜 마음일 수 없었다.
사랑의 형태가 너무 다양했다.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 속 등장인물들이 저 마다의 모습과 성격으로 "사랑해"를 외치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엔 황홀한 기쁨이었고, 가끔은 슬픔이의 손을 잡은 버럭이의 목소리였고, 어느 순간에는 완전하고 깊은 슬픔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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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향한 사랑은 "효"라는 단어로 충분히 표현되지 않았다. 가끔은 어린 아이를 보듯 안쓰러웠고, 위태로웠고, 그래서 지켜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 들었으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우정 VS 사랑을 고르라는 질문에는 뭘 골라도 선택의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우정도 사랑인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이성을 향한 마음은 참 다루기가 어려웠다. 상대가 남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 마음을 수십번 점검해야 했다. 호감의 유무에 따라 행동을 확실하게 했어야 했다. 그로인해 유독 남성이라는 성별에게만 좋고 싫음을 분명히 구분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과 판단이 뜻밖에 더 큰 사랑을 불러왔고, 그 사랑을 감당해야 했다.
싫어하던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감정은 훨씬 더 강력했다. 그 사람을 향해 가졌던 악감정, 그리고 수습해야 할 죄책감들이 배로 커져 그 사람에게 갚아주어야 할 사랑의 크기가 너무 부풀었다. 그렇게 감당하기 벅찬 사랑을 품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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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질투의 감정을 접했을 때, 코카콜라를 처음 먹고 기절한 원주민 마냥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창피한 마음과 자괴감이 동시에 뒷통수를 강타했다. 왜 사랑을 하면 상대를 통제하고 싶어하는지, 소유욕이 생겨나는 건지, 나는 왜 머리로는 자유 연애를 추구하면서 꽉 막힌 마음을 붙들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질투는 사랑의 표현방식이기도 하면서, 상대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 조금은 깜찍하고, 동시에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 중 하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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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지 않게 두 손 맞잡아 주는 사랑이 있고,
혹여나 넘어질까 뒤에서 지켜봐주는 사랑도 있다.
말로 전해지는 사랑의 언어가 있고,
소리없이 스며드는 사랑의 온도가 있다.
어떤 사랑이든 사랑은 힘이 세고, 그 사랑은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