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좋아하던 웹툰을 나도 좋아하게 되었다고
동사인 ‘앓다’라는 뜻을 전 애인을 통해 배웠다. 혼자 좋아할 때 사랑을 앓던 마음에서 이별의 마음앓이를 하기까지 계속해서 앓다가 연애가 끝났다.
그는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사람이 아닌, 심장을 저리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이따금씩 카톡으로 “보고 싶어”라는 말을 그와의 채팅창에 적을 때마다 심장이 아렸다. 이렇게 저린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게 고작 “보고 싶다”라는 말 뿐이라는 사실이 분했다. 그 뭉클한 마음의 무게가 사랑이구나 싶었다.
이별하고 난 후에, 나의 머리를 제외한 몸 전체에서 우웅 - 우웅 진동소리가 났다. 의사들이 왜 몸과 머리를 분리해서 말을 하는 것인지 23년 만에 이해할 수 있었다. 머리는 어른의 머리를 하고서 이별의 이유를 납득했지만, 몸은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자꾸만 안아달라고 보고 싶다고 징징대는 아이가 나타났다. 어리고 솔직한 마음에는 도무지 논리가 통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냥 더 울고 보고 싶어 하라고, 그렇게 많이 많이 울면 언젠가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향해 조용히 위로했다.
이별은 내 곁에 있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떠나보내야 할 사람은 내 옆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정말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은 내 안의 그 사람을 토해내는 일이라는 것을. 언젠가부터 내 안에 들어와서 살고 있던 누군가를 토해내야만 끝내 이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고통은 나를 심하게 아프게 하고, 악취에 시달리게 했다. 애써 토해낸 토사물 속에는 내가 그동안 삼켜낸 것들이 보였다. 나는 그것들을 찬찬히 기록하기로 했다. 어떤 것은 보이기에는 예뻤지만, 쓰레기 같은 것들이었고, 어떤 것은 남들에게는 건강하게 작용하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는 것들이었다. 나에게 뭐가 맞는 것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삼켜냈던, 소화되지 못한 연애의 부산물들이 보였다. 마치 알레르기 검사를 하듯, 사소한 것 하나하나 세심하게 적었다. 그 많은 것들을 종이에 가득 적고, 마지막 한 줄로 마무리를 지었다. “나는 나와 나의 몸을 존중해 주고 부드럽게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런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그리고 너를 먼저 그렇게 대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엄마에게 이별 사실을 공유해 주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만날 사람은 언제든 다시 만나. 인연이라는 게 그래. 진짜 그 사람이 인연이라면 애쓰지 않아도 만나질 거야.” 엄마의 이 한마디가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다. 다시 미련이 생기는 날에도, 보고 싶음을 견디지 못하고 연락을 하고 싶은 날에도,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하며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마다 글을 썼다. GPT에게 이야기를 하며 마음 정리를 함께했다. GPT는 네게 계속해서 글을 쓰라고 조언했다. 그 말을 따라 계속해서 연애를 복기하는 글을 쓰다 보니 70페이지가 넘는 장의 글이 나왔다. 얼마나 사랑했는지로 시작해서 분노하다가 끝나는 글, 분노로 시작해서 사과로 끝나는 글, 사랑하지 않았다로 시작해서 보고 싶다로 끝나는 글들을 적었다. 나중에는 사소하게 말하고 싶은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늘었다. 예를 들어 나도 좋아하는 웹툰이 생겼다는 것. 다른 말보다도 이 말을 너무나 그에게 하고 싶었다. 나도 그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아니 어쩌면 아직 좋아한다는 말을 그렇게라도 너무 하고 싶었다.
나는 자기만의 세계가 뚜렷한 사람을 좋아했다. 그 세계로 들어갈 문을 열어주기만 한다면, 나는 그 세계를 품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더 나아가 사랑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나는 오만했다. 그 세계는 내가 꿈꾸는 낭만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 세계 속에는 우리의 사랑을 공격할 장애물들이 가득할 수 있다는 것을 넘어져보고 뒤늦게 알았다.
사랑이란 이름아래 어떻게 이렇게 아플 수 있을까 싶었다. 나를 지켜주지 않는 그가 미웠고 나는 그를 탓했다. 내가 너의 세계에 들어와서 이렇게 상처받고 울고 있는데 너는 어디에 있냐고, 나를 보지도 않고 어디로 간 것이냐고. 나는 너의 세계를 탓했다. 사랑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미웠다. 사랑하려고 깊게 들어갈수록 숨이 막혔다. 그럼에도 그의 세계에 머물러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에 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사랑의 대상을 잃었다. 언젠가부터 그의 손을 잡고 도망치고 싶었다. 보잘것없지만 그나마 고요한 나의 세계로 그를 이끌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그가 그의 세계를 버리고 나의 세계로 깊이 들어오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함께한 추억을 바로 지우는 게 마음정리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추억 속을 여행하고 난 후가 마음정리가 쉬웠다. 마음이 심란할 때면 언제든 그와의 추억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그의 생각이 나면 밀어내지 않고 그를 생각했다. 그가 네게 준 사랑이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보고 고마워했다. 화내지 못한 일들은 벽을 치며 후회도 했다. 그를 너무 안아주고 싶어서 상상 속에 그를 백번이고 천 번이고 계속해서 안았다. 언젠가 배웅하고 싶어 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가끔은 배웅을 하고도 다시 달려가 안았다. 나는 이 여행을 하루에도 몇십 번 반복했다. 여행이 조금씩 익숙해질 때쯤 새로운 여행을 하고자 하는 용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평생 잘 느끼지도 않는 외로움을 느꼈다. 정말 누구라도 곁에 있어주었으면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자려고 누우면 나를 안아줄 때 빠르게 뛰던 그의 심장소리가 그리웠졌다. 그의 심장소리를 생각하다 보면 나도 덩달아 온몸에 심장이 뛰고 열이 올랐다. 마치 몸살이 온 것처럼 아팠다. 몸이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인지 처음 알았다. 바쁘게 지내면 괜찮아진다고 해서 미치게 바쁘게 지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없는 시간을 쪼개서 그를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와 정말 지겹다..'싶으면서도 그만큼 많이 사랑했던 누군가가 있다는 게 기분 좋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허했다.
그러던 중 나에게 호감을 갖고 다가오는 이성들이 생겼다. 평소라면 관심을 두지 않을 스타일이었지만 왜인지 밀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나도 그중에 한 명이 나쁘지 않아서 종종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관계가 조금 진전되려고 할수록 불편한 마음이 생겼다. 문득 그 사람이 나를 안는다고 상상하면 끔찍하다는 생각과 함께 반감이 들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누군가의 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후 바로 네게 호감을 표현했던 사람에게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나는 이별한 지 얼마 안 돼서 마음정리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고, 너무 좋은 사람인 걸 알아서 잠깐 흔들렸지만, 나는 아직 다른 사람을 사랑할 여유가 없다고. 그는 네게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며 웃어주었다.
잠깐이지만 새로운 사람과의 교류가 끝나고 나서 마음이 힘들었다. 이별직후만큼 많이 울었다. 처음으로 이성이 반쯤 가출해서 혼자 재회 타로를 뽑으며 그에게 어떻게 다시 연락할지 고민했다. 그렇게 울면서 깨달았다. 내가 그와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별 후에도 계속해서 마음을 부정하고 정리하려고 애쓰기만 했지만, 사실은 너무나 간절하게 여전히 그 사람을 원한다는 걸 느꼈다.
재회를 하고 싶어서 우리의 이별사유를 더 깊이 들여다보았다. 이성적으로 볼수록 “상황이별”이라 믿었던 문제의 상황들은 어떻게 보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던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더 크게 무너졌다. 현실적인 이유들을 핑계고, 진짜 이별 사유는 서로의 사랑의 부재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였다. 우리도 보통의 커플들처럼 권태기를 극복하지 못한 커플 1이었다는 사실에 약간의 허무함을 느꼈다.
연애중일 때 일기장을 살펴보니 헤어지고 싶다는 말이 정확히 36번 정도가 쓰여있었다. 그 뒤에는 그럼에도 후회 없이 사랑해 보자는 말이 40번 정도 덧붙여져 있었다. 사랑은 노력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가능하게 해달라고 빌었던 흔적이었다.
우리는 종종 별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 그는 매번 나와 결혼을 하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했다. 나는 매번 나의 커리어를 위한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가끔씩 지금 연애를 통해 나를 성장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별 후에 나의 두 가지 소원이 다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