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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데리온 Nov 30. 2023

고려대학교 강의실에서

저는 지금 '미래관'으로 불리는 건물 4층의 한 강의실 안에 앉아 있습니다. 대략 1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 안에, 25명쯤 되는 학생들이 아주 고요하고 적막하게 띄엄띄엄 앉아 있습니다. 학생들 중 삼분의 일 정도는 외국인입니다. 아마 영어 강의라 그런 듯 합니다. 영어 강의는 교수님의 강의도, 공지사항도, 과제도, 시험도 모두 영어로 합니다. 수학이나 국어를 전공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학생 때 배우는 과목 중에서는 영어가 가장 졸업 이후에도 쓸모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튼 학생들과 홀로 마주 서 있는 중년의 교수님은 북유럽 국가들의 정치에 대해 영어로 외로운 독백을 이어갑니다. 학생들의 시선은 전부 다른 곳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교수님에게, 자기 핸드폰에게, 창 밖에, 혹은 멍하니 허공에.


오, 방금 교수님이 David라는 학생을 콕 집어서 질문하셨습니다. 틱틱틱 하고 들리는 노트북 타자 소리를 제외하면 학생 쪽에서 오랜만에 색다른 소리가 들려나옵니다. 지금은 강의실 앞 화면에 띄워진 1번, 2번, 3번, 4번 항목을 각각 다른 학생에게 읽도록 시키고 계십니다. 원하는 학생이 답변할 수 있도록 전체 학생들을 향해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학생을 콕 집어서 질문하시는 이유는 아마 모든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일까요. 돌아가면서 질문을 던지면 모든 학생들이 적어도 한 번은 말을 하게 되니까요. 저는 오랜만에 강의실의 꽤 뒤편에 앉았습니다. 그래서 제 앞쪽에 있는 학생들이 다들 노트북으로, 아이패드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 슬쩍슬쩍 알 수 있지요. 물론 뭘 하고 있는 건지 아주 자세하게 훔쳐보는 음습한 행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단지 저기 저쪽의 누군가가 강의에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 있는지 정도만 가려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절반 이상의 학생들은 강의에 관심이 없습니다. 아, 정확히 말하면 교수님이 출석부를 보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 급습한다면 대답할 수 있는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는 듯 합니다. 놀라운 능력입니다. 웹서핑을 하면서, 카톡을 하면서, 누군가는 브런치에 이상한 글을 쓰면서도 동시에 '강의를 따라가고 있는 척'을 할 수 있는 정도로만 신경을 분배하고 있다니요. 엄청난 최적화 능력입니다. 가끔 '최적화 신경 분배'에 실패한 어떤 학생들이 예기치 못한 교수님의 질문 공격을 받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곤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다들 딴짓과 강의에 각각 사용하는 신경량을 재분배하는 듯 합니다. 잠깐 동안이겠지만 딴짓은 줄이고, 강의에 조금 더 집중해 보고.


물론 교수님의 강의 성향에 따라, 강의에 참여하는 학생들에 따라, 또 강의 주제에 따라서 강의실의 분위기는 매우 달라집니다. 학생들의 영혼이 강의에 깃들어 있는 정도 또한 달라집니다. 중학생 때, 고등학생 때를 생각해 보시면 재밌는 수업이 있고, 조금 지루한 수업이 있는 것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오만한 생각일 수 있겠지만 학문(공부)에 필요한 본질적 능력이나 아무튼 그런 것들이 소위 '명문대 학생'이라고 해서 그렇게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혹은 다른 무언가 - 예를 들면 주기적으로 시험을 열심히 준비한다던가 하는 것들 - 에 그저 익숙한 것 뿐이라는 느낌을 종종 받습니다. 물론 정말 뛰어나고 통찰력 있다는 인상을 받는 멋진 학생들도 많이 있었지만요. 저만 해도 강의실에서 30분 넘게 딴짓을 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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