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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좀 안아줘

남성 갱년기

by 춤추는 금빛제비

갱년기,
여성에게만 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거울 속의 내가 조금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길 일이 괜히 짜증도 나고, 예민해진 마음이 스스로 어색하다.

예전엔 드라마를 봐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는데, 요즘은 광고 한 편에도 코끝이 시큰하다. 몸이 먼저 변화를 알아챈다.

자고 일어나도 피로가 그대로고, 성욕도 예전 같지 않다.

온몸이 심드렁하다.‘내가 나 같지 않은’ 날이 잦아졌다.

여성들은 갱년기가 오면 병원이나 약국을 찾는다. “요즘 갱년기라서요.” 그 한마디면 다들 이해한다.

하지만 남성은 다르다.

“나 요즘 갱년기인가 봐…” 이 말을 가족 앞에서 꺼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아내가 “요즘 왜 이렇게 예민해요?”웃으며 던진 말에도 괜히 속이 뜨끔한다. 그래서 대부분은 입을 다문다. 그저 묵묵히 버틴다.

남성 갱년기 이야기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다.

“야, 요즘 좀 이상하지 않냐?” 그러면 친구가 낮은 목소리로 맞장구친다.
“나도… 그래.”

그렇게 공감 한 줄 나누고, 이야기는 곧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남자의 갱년기는 그렇게 소리 없이 지나간다. 사실, 나이 들면 호르몬이 조금 바뀐다고 한다. 여성은 강단이 생기고, 남성은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그러니 눈물이 많아지고, 감수성이 짙어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그 시기를 그냥 두지 않기로 했다. 다시 댄스스포츠를 배우기 시작했고, 평범한 일상이지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 잊고 있던 활력이 조금씩 돌아온다. 글 속에서 마음을 털어놓으면 묘하게 가벼워진다.

아마도, 그게 내 나름의 갱년기 극복법인 것 같다.

사실 남자도 위로받고 싶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그 한마디가 필요하다.

남성 갱년기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저 한 계절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청춘이 봄이라면, 이 시기는 늦가을쯤이랄까. 조용히 색이 바래지만, 그 속엔 깊은 맛이 있다.

결국 갱년기는 잃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자신을 배우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조금 느려져도,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 그 안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난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가운데서 비로소 깨닫는다.

남자의 만추(晩秋)도,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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