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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호 Jun 12. 2024

시, 그리고 좋은 시

시, 그리고 좋은 시

2024.6.12



(어제 쓰던 글을 이어서 쓴다.)

그렇게 난 시를 접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시를 쓰고 있는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좀처럼 뭐 하나에 꽂혀 있지 못하던 내가

아직까지 시를 쓰고 있는 걸까?

시가 재미있어서?

시를 쓰는 내 스스로가 좋아져서?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자면 관성 반 흥미 반인 듯하다.

시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한 건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시 본연의 재미를 느낀 것이.

시의 관성이란 생활과 맞닿아 있다.

생활이 나를 자꾸 시 쪽으로 밀어낸다.

시간이 남고 할일이 없으면 시집을 꺼내 읽는 것이.

시집을 읽다 좋은 시를 발견하면 나도 무엇인가

남기고 싶다는 소중한 마음이.

자꾸 나를 시가 있는 그곳으로 민다. 밀어낸다.

2020년 12월 7일 이후로 단 하루도 시를 놓은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시만 생각했다.

그렇게 시 속에서만 살았다.

(물론 시는 곧 시가 아닌 ‘문학’의 영역으로 확장 혹은 환원되어 왔지만)

나는 친구가 없다. 대학생이지만 그렇게까지 바쁘지 않다. 내가 하지 않으면 하루종일 연락 하나 오지 않는 날도 많으니, 시에 집중하기에 적합한 환경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시를 아주 잘 쓰고 싶었다.

시를 아주 잘 쓰려면

시를 벗어나 시 아닌 곳으로

아주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시는 균형 잡기다.

어떠한 시에 대한 정의보다 난 이 말이 마음에 든다.

(내가 만들었지만.)

또한, 이에 대한 의미 풀이는 생략해도 좋겠다.

너무나 많은 방향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시를 계속 쓸 수 있었던 개인적인 사유가 있긴 있다.

그것은 남들에게 내 시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어쩌면 공모전도 일련의 그것인지도 몰라.

공모전에 투고를 많이 해 왔다.

애초에 공모전 사이트에서 시작된 시이다 보니까

시를 쓰면 공모전에 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몰라.

시를 쓴 지 2주차 때부터 공모전에 투고했다.


바로 등단 연락이 왔다.

그곳에서는 내게 등단비를 요구했고

나는 다시 연락드린다고 답했다.

등단비라고?

엿 먹으라고 했다.

(물론 생각만 했다.)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고 다른 공모전을 살펴 보니

등단비는 커녕

당선 시 상금을 준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후로는 그런 곳에만 냈다.


시 쓴 지 한 달차였다. 

당선 연락이 왔다.

그 지면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한다.

웹진이었고

<통섭회>라는 곳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 터인데

이곳은 좋지 않은 일로 얼마 못 가 없어져 버렸다.

공모는 <제1회 통섭회문학상> 산문시 부문이었고

나는 썼던 운문 시를 산문 형태로 변형해서 투고했다.

그리고 당선 연락을 받았고

상금은 5만원이라고 했다.

엄청나게 기뻤다.

(그러다 며칠 후 지면이 없어졌지만.)


한동안 시를 쓰는 데 있어 나에게 공모전이란

시를 계속 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이것은 썩 옳지 않은 마인드라고

누군가 계속 내게 전하였지만

지금은 나조차도 어느정도 동감하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나는 비문창과에 지방대학생에

주변에 시는 커녕 책을 읽는 사람들도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어느 누가

시 쓰기를 지속할 수 있을 텐가.

자기만족? 그런 것은 시에 한해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게 믿는다. 시는

지극히 사회적인 장르라고 난 생각해.

시는 말과 같고

말을 배우지 못한 늑대 소년은 

평생 늑대로만 살다 가는 것이다.

인간의 말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난 시도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무언가 다른

시를 쓰는 동력이 내겐 필요했던 것이다.

그게 공모전이었고

그래서 한동안

공모전이 먼저, 그 다음이 시였고

끝에는 공모전을 위한 시를 쓰곤 하였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런 생활이 오래 가진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걸 쓰고 싶었다.


그렇지만 공모전을 내기는 냈다.

크고 작은 공모전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시 쓰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함께 합평 스터디도 했다.

시란 진정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도 많이 했다.

계속 시를 잘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마음과는 사뭇 달랐다.

말미에는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이란

좋은 시여야만 했다.

좋은 시?

좋은 시란 뭘까?

그것은 또 시란 뭘까?라는 생각과 사뭇 달랐다.

이런저런 고민의 그물망 속에서

내 자아가 형성되었다.

자아.

그것은 내가 그토록 형성하지 못했던 것.

시를 쓰기 시작한 24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형성되기 시작한 것.

나는 그냥 멍청이었다.

말하는 감자였다.

(뭐 지금도 그렇지만.)

그래서 종종 시한테 고맙다는 말을 한다.

(속엣말로.)


그래서?

나는 아직도 시를 쓰고 있다.

시가 조금 좋다.

조금은 좋아하려고 애쓰는 마음 또한 있다.


나는 나를

시 오타쿠라고 생각한다.

평생 오타쿠인 적 없었지만

시와 관련된 모든 것이 좋으니까.

오타쿠가 맞다.

인정한다.


시를 좋아하면 안 된다.

시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근데 아니기도 하다.

그게 시다.

모르겠다.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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