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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복 Oct 30. 2022

소설 환취 (7화/25화)

7. 자식

7. 자식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지 못한 건, 나이를 먹을수록 아쉬움으로 남더군요. 젊을 때는 배우자를 만나지 못한 걸 주로 아쉬워했다면, 나이가 들어서는 자식이 없다는 것도 아쉬워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길을 가다 가족 단위로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한 번 더 눈길이 가고 부러운 마음이 들었죠. 하지만 저 사람들도 배우자가 있으면 있는 대로, 자식이 있으면 있는 대로, 그에 따라 짊어져무거운 짐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았어요. 전 가족이 없으니 그에 따른 짐은 없었으니까요. 물론 부러운 마음은 그대로 계속 남아있었지만요.


 제 동년배의 사람들은 결혼을 필수처럼 여기던 대를 살았어요. 옛 친구들도 대부분 가정을 이루었죠. 그런데 가정을 이룬 친구들과 각종 경조사로 만나게 되면, 대화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친구들이 한참 커가는 자식에 대한 자랑을 할 때는 억지로 웃어주기도 했지만, 그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어요. 가장이 되고 나서 힘들다며 앓는 소리를 하는 친구라고 해도, 역시 저와 말이 통하진 않았고요. 전 그 세계를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궁금해하고 부러워하던 감정들을 땅콩이 덕분에 경험할 수 있었던 거였죠.


 땅콩이를 갓난아기 다루듯 두 팔로 감싸 안았을 때 환생에 대한 생각을 했어요. '원래 나와 운명적으로 만나야 했던 아기의 영혼이 그만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영혼이 소멸했다가, 다시 고양이로 태어나 나에게 찾아온 건 아닐까?' 하는 것이었지요. 물론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도 없고 저 혼자만의 상상인 건 알지만, 그래도 영혼의 존재는 대부분 믿고 있으니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았어요.

     

 고양이도 어느 정도 훈련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뒤엔, 손가락으로 종이상자를 가리키면 점프해서 뛰어 들어가게 하는 것도 성공하게 되었어요. 정말 머리도 좋고 말도 잘 듣고 흠잡을  없는 완벽한 고양이었죠. 참 무럭무럭 잘 크더군요. 커가면서 재롱도, 애교도 같이 늘어갔고요. 그걸 보고 있으면 정말 피로가 싹 날아가는 느낌이었어요.   


 

 아침에 헤어지기 전엔 땅콩이의 앞발을 잡고 일으켜 세운 다음, 기억 속에 있는 음정을 콧노래로 흥얼거리면서 춤을 추듯이 좌우로 움직이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리곤 했어요. 어릴 적 유원지에 놀러 가서 회전목마를 타면 나오는 음악이었는데 제목은 몰라요. 그저 음정만 좋아서 기억하고 있었죠. 그 회전목마 탈 때가 저에게 얼마 없는 행복한 기억 중 하나였어요. 가족 나들이였거든요. 


 땅콩이는 신기하게 춤이 끝나면 가야 할 때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마지막 한 바퀴를 빙글 돌고 나서 춤을 끝낸 다음 경비실 문을 열어주면, 알아서 나간 뒤 숨을 곳을 찾아 사라졌거든요. 땅콩이가 아침에 사라질 때 신데렐라 이야기가 떠오른 적이 있어요. 왕자님과 춤을 추다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신데렐라가 사라져야 하는 부분이요. 그래서 땅콩이와 춤추는 시간을 "신데렐라 타임"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신데렐라 이야기도 해피엔딩이라 참 좋았죠. 마지막에 왕자님과 신데렐라가 다시 만나니까요. 저도 땅콩이랑 아침에 헤어지고 다시 출근하면 만나니까 이것도 괜찮은 한 편의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거요.      


  땅콩이를 만난 뒤엔 저도 고양이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주 찾아보게 되었어요.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는 회원분들이 각자 먹이를 챙겨주고 있는 고양이들의 사진을 게시판에 올리곤 하셨어요. 역시 다른 고양이들의 사진을 아무리 살펴봐도 땅콩이만큼 귀엽고 예쁜 고양이는 없었어요. 그런데 카페 회원분들도 대부분 길고양이를 데려다 같이 살지는 못하고 먹이를 주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더라고요. 길고양이를 동물 보호 센터에서 무조건 다 받아주는 것도 아니어서 보내기도 어려웠을 거예요. 그리고 동물 병원이 사설 보호 센터에 보내는 건, 비용 문제로 선뜻 결정하기 어려웠을 테고요. 이런 것들을 모를 땐 길고양이들에 대한 아무런 동정심이 안 들었는데, 알고 나니 불쌍하게 느껴지더군요. 평생 안락한 보금자리를 못 갖고 대부분 떠돌다 죽어갈 운명이었으니까요. 고양이를 싫어했던 제가 땅콩이 덕분에 인식도 많이 바뀌게 되었죠. 물론 사료공장에서 담을 넘어오는 고양이들을 열심히 쫓아내긴 했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너네 동네로 가!' 정도의 마음이었어요. 회사 안은 저와 땅콩이의 영역이었으니까요.     


 밖에서도 내부가 훤히 보이는 회사 내 1층 고객 대기실에는 "캣피의 생각"이라는 제목의 그림 한 점이 걸려있었어요. 이전에는 순찰하면서도 무관심하게 지나친 그림이었는데, 땅콩이와 지내면서 그림에 담긴 의미가 이해되더라고요. 화가분이 흰색의 복슬복슬 한 털을 가진 "캣피"라는 고양이와 같이 살고 있었나 봐요. 눈을 지그시 사색하듯 감고 있는 고양이 뒤로 각종 물고기들과 곤충들 그리고 통조림과 사료 봉지 같은 것들이 그려져 있었어요. 평소 캣피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던 화가가, 자신이 상상한 캣피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었죠. 그러고 보니 자식이 있는 부모님들은 아이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궁금해할 것 같더군요. 저도 땅콩이가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었거든요. 특히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절 쳐다볼 땐 "왜? 땅콩아 왜?" 하면서 물어보기도 했죠. 저에게 아무 의미 없던 그림이었는데, 고양이를 키우는 화가분의 마음이 그림을 통해 전해졌어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끼리 간혹 말없이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나 봐요.


 

 쉬는 날 장을 보러 마트에 가던 중, 예전에는 전혀 관심도 없던 동물 병원 앞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게 되었어요. 고양이 심장 사상충 약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사기처럼 생긴 튜브 안에 든 액체를 몸에 발라주는 약이었어요. 가격이라도 물어보려 들어갔다가 수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땅콩이의 공식적인 보호자로 등록도 하고, 약도 구입을 하게 되었죠. 비싼 약이라 한 번에 성공해야 돼서, 베개를 땅콩이라 여기고 모의로 약을 바르는 시늉을 하며 연습을 했어요. 약이 혹시 따갑거나 부작용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더군요. 땅콩이가 건강하게 오래 살길 바랐어요. 그리고 제 자신이 처음으로 다른 존재의 '보호자'가 된 것에 대해 만족했고요. 땅콩이 덕분에 자식을 돌보는 부모의 마음이라던가 반려동물과 같이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저도 갖게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저의 착각이었죠. 제가 가졌던 마음은 고작 몇 초 만에 바뀔 허상에 불과했으니까요. 저에게도, 땅콩이에게도 해피엔딩 따윈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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