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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복 Oct 30. 2022

소설 환취 (8화/25화)

8. 본분

8. 본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듯이 제가 경비원으로 일하던 회사의 직원들도 야근을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어느 날 밤이 시작될 무렵, 직원 한 명이 점검 중인 차량에서 확인할 게 있다며 차량 정비고를 열어달라고 하더군요. 전 열쇠 꾸러미를 챙겨 직원과 같이 정비고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죠. 젊은 직원이 꽤 활달하고 싹싹한 성격의 청년이라 그런지 걷는 중에도 친근한 말들을 계속 저에게 건넸어요.


"밤에 근무하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낮에 충분히 자고 출근하는 편입니다."


"그럼, 아예 쉬는 날에도 밤낮을 바꿔서 생활하시나 봐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이젠 익숙해져서 밤에는 깨어있는 게 오히려 편합니다."


"제가 입사할 때부터 뵈었는데, 한결같이 열심히 하시고 친절하신 것 같아요. 다른 직원들도 다 그렇게 이야기해요."

    

"감사합니다. 직원분들이 잘 대해주셔서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연신 좋은 말을 건네는 직원에게 저도 걸맞은 대꾸를 계속해 주었죠. 엄연히 직원과 용역 경비원 간의 대화여서 저는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 아닌, 흠 잡히지 않을 무난한 대답만 머릿속으로 골라서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젊은 직원도 그저 듣기 좋으라고 저에게 하는 말일뿐, 진심이 담긴 말은 아닐 거라 생각했고요. 그저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가면을 쓰고 하는 말이라 여겼을 뿐이죠. 그렇게 형식적인 아무 의미 없는 대화를 서로 주고받으며 걷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비고에 거의 다다랐을 때 직원이 아주 쾌활한 어조로 저에게 말하더군요.     


"그래도 적적하진 않으실 것 같아요. 고양이랑 밤새 재미있게 보내시는 거 봤어요."


"네! 네?"


"고객님이 차량 외관에 흠집이 생긴 거 같다고 하셔서 야간에 혹시 무슨 일이 있었나 CCTV 확인하다 봤어요."

     

"네! CCTV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아! 그거 최 과장님 승인받았어요. 최 과장님이 CCTV 프로그램에 원격으로 접속할 수 있게 등록해 주시면 제자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거든요."


"아… 네…."


 빨리 무언가 다른 말을 해서 화제를 돌리고 싶었지만, 머릿속이 개미굴처럼 바글바글 한 느낌만 가득해지고 입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다행히 정비고 앞에 도착한 상태라 빨리 문을 여는 시늉을 하며 경보장치를 해제하고 열쇠로 문을 열어주었죠. 직원은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끝나면 이야기하겠다고 하고는 정비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야간에 녹화된 CCTV 화면까지 낮에 일하는 직원이 확인할 경우를 생각하지 못한 거였죠. 출입구의 경보장치나 건물 내 침입 감지기가 울리면, 외부 경비업체에서 수분 내 확인하러 왔었주차된 차량과 다른 시설물들은 야간 경비원이 직접 확인하면서 특이사항이 있으면 바로 조치하거나 퇴근하면서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더군다나 CCTV를 볼 수 있는 권한은 최 과장님과 야간 경비원들에게만 있는 걸로 알았거든요. 따로 담당자의 승인을 받아서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전 알지 못했어요. 주간에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들의 일상도 몰랐고요. 원격 접속으로 그런 게 가능할 줄은 더더욱 몰랐죠. 사실 설명을 들었지만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지 이해를 못 했어요. 제 컴퓨터 다루는 실력은 그저 CCTV를 돌려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겨우 하는 정도였으니까요. 결국 방심했던 제 불찰이었죠.


 일을 마친 직원이 퇴근한 뒤, 전 아무것도 못하고 머리가 멍한 채로 경비실에 앉아만 있었어요. 그러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두려움을 느꼈어요. 젊은 직원의 경고가 섞인 농담이었는지도 분간이 안 갔고, 다른 직원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였으니까요. 잘못되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이곳을 그만두었을 때 의식주 해결을 위한 계산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진행되더군요. 대략 앞으로 받게 될 남은 예상 급여와 퇴직금, 실업급여 등을 계산하고, 그걸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어느 정도의 기간을 버틸 수 있을지 예상을 해봤죠. 물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어요. 따로 저축한 비상금은 계산에 넣지 않았어요. 제가 질병이나 또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를 대비한 것이었거든요. 보통 제 또래의 사람들이 '노후 자금'을 생각하며 저축을 할 때, 전 만약을 위한 '생존 자금'을 모으고 있었어요. 살아남으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었으니까요. 이런 계산들을 빠르게 마치고 나서 '지금은 어떻게 이 상황을 대처해야 할까?'를 생각했어요. 그리고 전 선택을 했어요. 바로 "본분"이란 단어를 머리에 떠올렸죠. 


 근무지의 건물과 차량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건물에 침입하거나 고객의 차량에 흠집을 낼 수 있는 길고양이를 회사 내에 들인 건, 본분과 맞지 않는 행동이었어요. 또 저 하나의 입을 해결하기도 벅찬 인생을 살면서 분수에도 맞지 않는 짓을 한 것이었고요. 빠르게 반성을 하면서 저를 돌아봤어요. "본분", "책임감", "분수", "근무 태만" 등 지금까지의 행동을 반성하고 자아비판을 하면서 태세를 전환할 말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어떤 방법으로든 땅콩이를 제 인생에서 제거할 명분을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이런 말들을 머릿속에 가득 채운 상태로 경비실을 나가니 '그 재수 없는 고양이'가 다가오더군요. 땅콩이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의 본분과 책임감에 따라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을 했어요. 땅콩이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구둣발로 밀어냈거든요. 저도 세상을 살면서 당해본 '외면'이란 걸 시작한 순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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