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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복 Oct 30. 2022

소설 환취 (13화/25화)

13. 길고양이들

13. 길고양이들    

      

 피비린내가 사료공장까지 퍼졌던 건지, 앞선 고양이 뒤로 두 마리의 고양이가 더 모습을 보였어요. 고양이들의 조직인지 아니면 가족인지 그들의 내부 사정까진 모르지만, 어쨌든 세 마리면 충분해 보였어요. 배고픈 고양이들의 한 끼 만찬 삼아, 깔끔하게 해치울 수 있는 양으로요.    


 먼저 선두에 있던 우두머리로 보이는 고양이가 회사 입구 근처에서 냄새를 맡아가며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어요. 그러다 땅콩이의 잔해를 발견하고 나서는, 마치 정지 화면처럼 멈추더군요. 그 상태로 몇 초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한 걸음씩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뒤따르는 고양이들까지 비슷한 속도로 따라갔고요. 지켜보는 입장에선 그 느릿함에 답답함이 생길 정도였어요. 


 하지만 우두머리 고양이가 어느 부위인지 알 수 없는 작은 파편에 코를 갖다 대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을 땐, 답답했던 마음이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었죠. 이제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했거든요. 길고양이들이 쉽게 맛볼 수 없는 생고기 식사였을 테니까요. 그런데 '킁킁'하면서 몇 번 냄새를 맡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더군요. 다른 고양이 두 마리도 똑같은 행동을 했고요. 어이가 없었어요. 사람도 극한 상황에서는 같은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인데, 왜 고양이들이 눈앞에 펼쳐진 맛있는 고기를 안 먹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도로엔 차도 다니지 않는 시간이었고, 출근시간대가 전까진 생고기 만찬을 방해할 어느 누구도 없었는데요. 세 마리가 똑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앉아있으니 땅콩이와 알고 지내던 고양이들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먹을까 말까 갈등을 하는 건지, 아니면 동족에 대한 추모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어요. 그냥 가만히 앉아 땅콩이의 잔해를 쳐다만 보고 있었거든요.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우두머리 고양이가 천천히 일어나서는, 결국 자리를 뜨기 시작하더군요. 다른 두 마리도 따라 움직였고요. 안 먹을 생각이었던 거였죠. 저의 마지막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어가는 걸 보고 있자니, 순식간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어요. 의자 뒤에서 바로 박차고 일어나 경비실 문을 열고 나가면서 고양이들에게 크게 소리쳤어요. 


"다 꺼져!"


 고양이 세 마리가 깜짝 놀라며 일제히 제 쪽으로 고개를 돌린 뒤, 광분한 저를 발견하곤 혼비백산하며 달아났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바로 콧구멍에서 '씩씩'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숨을 내쉬며 청소 도구함이 있는 곳으로 갔어요. 거기서 튼튼한 빗자루와 널찍한 쓰레받기를 찾아 바로 땅콩이의 잔해가 있는 곳으로 향했어요. 그런데 땅콩이의 잔해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느려지더니, 결국 몇 미터 앞에선 멈춰 서게 되더군요. 발걸음이 더 이상 안 떨어졌어요. 


 참 고요했어요. 주변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어두운 우주 속 휑한 공간에 저와 땅콩이의 잔해밖에 없는 느낌이 들었어요. 청소도구를 양손에 쥔 상태로 눈을 감고 고개를 푹 떨궜어요. 긴 한숨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그러면서 가슴에선 부글부글 억울한 마음이 끓어올랐고요. 그 상태로 한참을 서 있었어요. 그러다 다시 고개를 확 들며 땅콩이의 잔해를 향해 소리쳤어요.     


"왜! 왜! 너도 먹이가 필요해서 온 거였잖아!

그동안 잘 먹었으면 된 거 아니야!

끝까지 골치 아프게 하고 있어!

넌 먹을 거 먹었고, 난 외로움 달랬고, 그냥 그거였잖아!

그리고 난 약자야! 이게 약자가 사는 법이라고!"


 청소도구를 그대로 땅바닥에 내팽개쳤어요. 경비실로 들어가 머리를 감싸 쥐고 눈을 꾹 감고 앉아서 '으으' 하면서 짜증이 담긴 인간만의 신음을 계속 내뱉고 있었죠. 기대할 수 있는 게 더 이상 없었어요. '시간!' 그저 빨리 퇴근시간이 절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주길 바랄 뿐이었죠. 출근하는 직원들이 어제와 그대로인 땅콩이의 잔해를 보고 절 욕해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그저 그 상황에서 빨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거든요.


 그런데 날이 밝아오면서 평소에 관심도 없던 굉음이 멀리서부터 귓가에 다가와 속속 꽂히기 시작하군요. 처음엔 무엇인지 몰랐어요. 그저 '무슨 소리지?' 하는 단순한 생각만 들었죠. 그러다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땐, 감고 있던 눈이 번쩍 뜨이고 저절로 감사의 기도를 하듯이 두 손이 맞잡아 모아졌어요. 꼭 모은 두 손에 너무 힘을 주어서 그런지 팔까지 부르르 떨리더군요. 전 그대로 하늘을 향해 떨리는 팔을 들어 올리며 외쳤어요.     

"왔다! 왔다!"


 그것이 오고 있었어요. 아니에요. 그때 저를 구하러 오신 구세주나 영웅처럼 느껴진 존재를 시간이 지났다고 '그것'이라고 표현하는 건 실례인 것 같네요. 그 순간 받은 느낌 그대로 말로 표현하자면… 그분이 오시고 계셨어요!


 '도로 청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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