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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갱 Oct 23. 2021

그리고 다시 봄

2019년이 밝았고, 우리는 오키나와의 추억을 한가득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제 택배


2019년 봄. 우리는 서울에서 다시 신혼을 시작했다. 이번엔 해(海)주근접이 아니라 직주근접이 우선이었다. 오키나와 푸른 바다 근처 방 2개 집보다 곱절로 비싼, 서울 보랏빛 5호선 지하철역 옆 1.5룸에 자리를 잡았다. 오키나와의 속도에 맞추어 조금은 느슨하게 흐르고 있던 우리의 시계를 다시 타이트하게 조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흘러가는 대도시의 속도에 맞추어 생활하던 우리. 어느 날 국제 택배가 찾아왔다.

From. 오키나와현 나카가미군 요미탄손 토야
To.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내용물: 오키나와에서의 추억 한가득


우리가 오키나와에서 나오면서 우체국에서 한국으로 보냈던 것들이 한 달 만에 도착한 것이다. 


'우리 짐이 이렇게 적었나?' 

오키나와에서의 1년의 신혼생활은 몇 안 되는 박스에 담긴 채, 서울 신혼집의 거실 한가운데 놓였다. 박스를 하나하나 열다 보니 오키나와의 추억들이 연이어 서울의 거실로 쏟아져 나왔다. 모두 추억이 깃든 물건들이었다. 오키나와의 모래가 묻어있는 오리발을 보며 스노클링을 했던 생각에 잠겼다. '이 오리발도 나만큼 오키나와의 바다를 즐겼겠지'. 둘둘 감긴 뽁뽁이를 벗기며 물건마다 깃들어 있는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이야기하자, 옅어져 가던 오키나와의 추억들이 다시 밝은 색을 띠었다.


오키나와에서의 1년. 우연히 시작하게 된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의 생활. 한걸음 천천히, 조금은 느긋하게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는 법을 배웠던 시간. 덕분에 매일 일어나는 일의 아름다움을 배웠고, 이제는 해 질 녘 퇴근길엔 핸드폰이 아니라 차창 너머로 해가지는 풍경으로 시선을 돌린다. 어두운 저녁이 가져오는 포근함을 알기에, 우리의 저녁 거실은 작은 불빛만 켜놓은 채 기분 좋게 편안한 어둠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그리고 그 어떤 여행처럼 끝이 아니라 그 과정이 더 즐거운 것을 배웠기에, 서울에 놓인 우리의 두 번째 신혼에서도 목적지보단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을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우리 마음만큼 가벼웠던 신혼살림은 작은 택배 박스에 담아 왔고, 강렬했던 오키나와의 색은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물감처럼 우리 부부의 생활에 깊게 물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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