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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천교육교사모임 Aug 25. 2022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

구소희 씀

강영안 저 / 문학과 지성사 / 2005.12.



타인은 지옥일까? 


  얼마 전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드라마를 잘 챙겨보지 않는데다가 가끔 채널을 바꾸던 중에 만나는 장면이 늘 어둡고 무거웠다. 그래서 한 편도 제대로 시청한 적은 없다. 제목만 강렬하게 남았다. 그리고 질문이 남았다. ‘정말 타인은 지옥일까?’ 세상이 정글이라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이라면 어쩌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바라보고 살아가기엔 삶이 너무 가엽지 않을까? 


  올 초 관계 심리학 교사 연구단과 성장학교 별 공동으로 거트비에스타 관련 포럼을 진행했다. 포럼에 참여하는 6명의 연사 중 한 명으로 거트비에스타 논문과 저서를 읽던 중 ‘레비나스’라고 하는 낯선 철학자의 이름이 강렬하게 남았다. 그동안 접했던 다른 서양철학자들과 다른 사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올여름 김현수 선생님이 주관하시는 ‘장대비 연수’에서 레비나스를 다시 만났다. (장대비 연수에서 8월 한 달간 다양한 교육철학자의 책을 함께 읽고 전문가를 불러 강의를 듣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은 오랜동안 현대 철학의 거장 레비나스에 대해 연구해온 강영안 교수가 '주체와 타자'의 문제를 중심으로 레비나스의 초기 철학에서 후기 철학에 이르기까지 주요 저작을 연구하고 집필했던 글을 모은 책이다.(출판사의 책 소개 참고)


  레비나스는 유대인으로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났다. 히브리어 성경과 탈무드, 러시아의 문학을 읽으며 성장하였고, 독일 철학자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였으며 1930년 프랑스에 귀화한 뒤 프랑스에서 연구활동을 이어왔다. 히브리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책을 읽고 그 문화와 함께한 철학자였기에 사람들은 그를 ‘네 문화의 철학자’라고 부른다. 네 문화에 포함되었으나 네 문화 어디에도 온전히 포함되지 못하였기에 존재자이자 이방인의 시선으로 서양철학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었던 이유인지 모르겠다. 


  그의 어린 시절은 전쟁과 유대인에 대한 핍박으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시간이 길었다. 리투아니아에 태어났으나 러시아 혁명으로 우크라이나로 피해야 했으며 다음은 세계 제2차 대전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실제 그의 부모와 두 형제는 나치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레비나스의 사유는 폭력과 인종주의에 근원을 탐색하고 ‘다르게 사유함’을 통해 나치 전체주의라는 악을 극복해 가려는 끊임없는 투쟁이었는지도 모른다.  


  레비나스는 나치즘이 나오게 된 근원적인 이유가 유럽의 ‘주체’를 중심에 둔 철학에 근원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하였다. 이는 중세의 ‘신을 중심의 사유를 ‘인간’으로 가져오며 근대 사상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 중심의 사유는 ‘나’의 존재 유지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타자’를 부차적인 존재로 바라보았다는 한계를 갖는다. ‘타자’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 부차적인 존재로 생각되었다. 


  레비나스는 이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 되는 ‘근본’ 악이라고 보았다. 타자는 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는 절대자로 우리는 타자를 수용하고 환대하며 나의 도움이 필요한 타자에게 책임 있는 행동을 할 때 악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타인이 나에게 응답을 요구하며 부를 때 내가 응답하게 되면 나는 비로소 응답하는 자로서 윤리적 주체로 탄생한다고 보았다.


  레비나스의 철학과 만나며 그의 이야기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간 익숙했던 서양 철학을 낯설게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며 점으로만 존재했던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거주와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탐구하고 존재와 타자의 의미, 선과 악, 그리고 윤리에 대한 통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을 얻게 되었다는 것도 큰 수확이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외치는 세상에서 ‘타인의 부름에 응답할 때 책임 있는 자, 윤리적인 주체로 탄생한다.’라는 그의 철학은 내가, 우리가, 공동체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 북의 부제 ‘행복은 타인으로부터 온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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