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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문 Apr 01. 2021

299.4m

채우지 않아도 괜찮아요

딱, 딱, 하루만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까?


완전 자유, 예산 걱정 없고, 뭐든지 할 수 있다면!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군:)


육아와 회사일에 지친 난 일탈하기로 했다.

단 하루.


휴가를 냈다.

아내 몰래!(아내가 이 글을 보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평상시 누리지 못했던 소확행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싶어. 그냥 멍 때리면서"
"점심은 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먹어야지"
"도서관에 가서 만화책을 실컷 보겠어!"

그런데,,

결국 아침부터 산에 올랐다.

(도서관 9시 개관. 커피숍 9시 오픈. 코로나로 갈 데가 없네)


사실 남자가 새벽에 나와서 갈 수 있는 곳이란 회사와 산 밖에 없구나.


안 가본 산 중에 가장 가까운 곳을 택했다. 소래산이었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걷는다. 혼자여서 좋다. 새소리가 좋으면 잠시 멈춰 듣는다.

 

이윽고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산의 이름과 함께 산의 높이가 적힌 돌이 있었다.


299.4 m



'아 300 m 였다면 좋았을 텐데.'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했다 산 위에 조금 흙을 더 쌓으면 300m가 되지 않을까? 그럼 더 의미가 있을 텐데!

쯧쯧 생각하는 것 하고는...


난 채우는 데 익숙했다.

왜냐하면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늘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악착같이 살았다.


지식이 부족하고 생각했다.  

 여유가 생기면 공부에 목을 매었다.


남의 인정에 목이 말랐다.

평가와 평판에 집착했다.


난 늘 부족했다. 그래서 채우려고만 했다.

나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난 높고 낮음에 관심이 없어.
사람들만이 그것에 집착하지.


카운터 펀치를 한방 맞았다. 바다에게서도 그랬고 산에서도 그랬다. 그들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인생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메시지를 전달한다.


소래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마음을 이게 한다. 시흥시와 인천시가 동시에 보이고 멀리 서해가 부른다. 내려오는 길에는 산이 하는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인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좋아해" 그렇다고 내가 좋은 것은 아니지 나를 생각하며 그들이 설레여.


어떤 이가 산을 좋아한다고 산이 좋은 게 아니었다. 을 좋아하면 '산을 좋아하는 그/그녀'의 기분이 좋아진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사람이 행복해진다.



그냥 있는 그대로가 .

산이 높고 낮음에 산은 관심이 없다. 산이 좋고 싫음에도 산은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이 산은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고, 이산은 높다 낮다 말을 한다.


그대로. As it is.

Just the way you are


산은 부족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즐긴다.

그 초연함 덕분에 천년만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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