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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세미 Aug 23. 2021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60 그 언저리 즈음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초등 5학년 딸아이의 성장판 검사 결과를 들으며 의사 선생님께 들었던 말이다. 현재 키는 155cm 정도로 5학년 치고는 정말 큰 키이다. 어디 가서 12살이에요. 하면 다들 놀라실만한 키 인 셈이다. 나는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검사를 받았던 것일까? 몰랐어도 됐을 이야기를 검사비용 5만 원까지 내고서 들었던 것이다.

아빠 키는 컨디션 좋으면 179.9cm 엄마 키는 165cm로 결코 작은 키가 아니어서 아이들의 키를 걱정해본 적은 없다. 2년 전 딸아이의 성조숙증 검사를 받으러 가기 전까지 말이다.


2년 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아이의 성장이 눈에 띄게 있었고, 2차 성징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요즘은 성조숙증이 진행되는 아이들이 많아서 오죽하면 초등 입학 선물로 검사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6세부터 이갈이가 있었고 그것도 하나의 징조라고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느꼈다. 그때만 해도 비만한 아이들에게나 찾아오는 질병으로 알고 있었다. 늘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그저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어 친구와 함께 예약을 하고 병원을 찾았다.


기본적으로 키와 체중을 확인하고 성장판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아이의 증상을 이야기 함으로써 상담이 진행되었다. 뜻밖의 이야기로 아이의 뼈 나이가 그 당시 나이보다 1년 반이 앞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인 즉, 나이는 9세이나 뼈 나이는 10세 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14세까지 키가 큰다고 생각하면 아이의 나이와 뼈 나이의 갭이 생긴다는 것이다.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했고 다시 예약을 잡아 힘든 검사를 진행했다.


복부 초음파로 자궁이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였고 팔에 주사 바늘을 꽂아두고 30분 간격으로 피를 뽑는 검사를 2시간인가 3시간 진행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가 울거나 보채지는 않았지만 엄청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받은 검사 결과는 한참이나 나를 울렸다. 보통 수치가 5 이상이면 성조숙증으로 판명 나는데 우리 아이는 20이 넘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저 선생님께서 성조숙증이니 주사치료를 향후 2년 정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뿐 귀에 들어오는 다른 말은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때부터 알아보니 아이 친구들 중에 주사치료를 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정말 요즘엔 흔한 질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서 시작된 주사 치료에 대한 공부. 자연 성장을 택한 부모님들과 주사치료를 택한 부모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보았다. 결국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이었다.


주사치료에 대한 부작용부터 알아보았고, 오래도록 검증된 주사가 아니기에 선택하기가 힘들었다. 부작용 중엔 아이의 피로감 호소, 비만하게 되는 것 그리고 나중에 불임의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논문을 찾아본다거나 하지 않았지만 모든 주사 치료에는 100프로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니 없는 걱정은 아닐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와 의논한 뒤 우리의 선택은 자연 성장을 택하였다. 골고루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겠다는 아이의 약속을 받고서 주사치료에 대한 공포는 덜어주기로 했다.


그때부터 아이는 주 3회 줄넘기를 다니기 시작했고 여전히 잠자리엔 일찍 들고 밥을 잘 먹었다. 인스턴트는 최대한 먹지 않기로 했는데 오래가지는 않았다. 나도 아이에게도 이미 맛을 본 우리에겐 너무나 큰 자제력을 요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 해 동안은 눈에 띄게 키가 컸고 성조숙증이란 단어를 잊고 살만큼 고요한 나날들에 정말 갑작스럽게 그날이 왔다. 아이의 초경이 시작된 것이었다. 늘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어야지, 아이에게 대처 방법을 알려줘야지 했는데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하루아침에 일이 일어났다. 그것도 우리가 타 지역으로 장례식장을 가던 중 아이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날은 서로 전화기를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아이의 인생 중 제일 미안한 날로 기억하고 있다.


초경이 시작되고 1년 정도 더 키가 크고 그걸로 끝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엄마인 나도 초경을 일찍 시작했고 키가 이만큼 자랐고, 주위에 친구도 일찍 시작했지만 잘 자란 케이스를 봤기 때문에 우리에겐 비켜가는 일로 생각했다. 그렇게 초경 1년 뒤 다시 성장판 검사를 받아 보았다. 아직 성장판이 열려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고 남은 시간 동안 또다시 키 크는 데에 집중하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줄 알았는데 뼈 사진을 판독한 결과 뼈 나이는 이미 3년 정도 앞서가고 있고 많이 커봐야 160 언저리라는 것이다. 2년 전 성조숙증 진단을 받을 때보다 더 왈칵했다. 하지만 아이 앞이라 울 수는 없고 당황해서 어버버하고 있으니 의사 선생님께서 미안하다시며 왜 주사치료를 하지 않았냐고 물으셨다.


신랑과 나도 놀라움이 컸지만 아이는 다행히 긍정적이었다. 희망을 가지면 된다고 더 클 수도 있다고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 우리의 선택이었으므로 슬퍼하지만 말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다리는 긴 편이니 나름 괜찮다며 위안을 했다. 비율 좋은 키작녀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가령 송혜교처럼?

아빠 엄마 키를 넣고 보면 예상키는 166cm이다. 아, 차라리 모를걸. 퍽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니. 우리는 오늘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 해 보기로 한다. 혹시 의사 선생님께서 뼈 사진을 잘 못 보셨을 가능성은 없는 걸까? 아 아니다.. 미련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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