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靈性)과 커피, 녹색 에메랄드 뒤에 숨은 마약과 내전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다가 전에 봤던 내용중에서 나르코스 (Narcos)가 문득 생각나 예전 출장갔을 때 찍었던 사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이야기를 다룬 나르코스는 출장 이후에 보게 된 드라마였는데, 무척 잔인하면서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묘한 드라마였던 기억이 난다.
잔혹하고 범죄로 일관하는 마약사업의 두목 격인 에스코바르이지만,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친절하고 배려심깊은 콧수염 아저씨로 묘사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서사가 실제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 공감한다. 누구나 집에서는 좋은 아빠, 성실한 남편이 되려고 하지만, 사실 실제 그에게 주어진 환경이 그런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가는 또 다른 사회적, 경제적 구조에 대한 분석 속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내게는 콜롬비아가 아름답고, 한편으로는 애처로운 역사를 가진 이중적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에스코바르의 최후처럼. 주로 빈한한 농민들로 이루어졌던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FARC)의 해체처럼.
우선 보고타 풍경을 떠올려 본다.
이 풍경은 수도인 보고타 (Bogota) 동쪽의 해발 약 3,100미터의 몬세라테 언덕 (Cerro De Monserrate)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이 언덕은 Funicula를 타고 오르면 밑에서부터 5분이면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예루살렘의 성모 몬세라테(Montserrat)를 기리는 스페인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정상에는 순례자들의 기도의 장소인 엘 세뇨르 카이도(El Señor Caído) 성당이 있다. 실제로 보고타 자체도 고도가 2500미터 정도 되는 곳이라서 처음으로 고산증을 느껴본 곳이기도 한데, 이 언덕에 서면 더 그랬던 것 같다. 우선 공기가 뭔가 묽다는 느낌, 그리고 왠지 수영하고 나서 귀에 물이 있으면 소리가 잘 안들리듯이, 뭔가 청각이 둔해진 것 같은 느낌.
수많은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이 정상에 올라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예수님의 고행의 길 (Via Dolorosa)을 본 따 만들어진 14곳의 작은 기도장소를 한 군데 한 군데 지나며 기도를 바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곳. 콜롬비아 국민들이 그렇게 신심이 깊었나 할 정도로, 곳곳에 보이는 성당과, 기념물들.
시내는 안전한 중심지대 소위 1구역부터 동심원 모양으로 구획지어진다고 하는데, 외곽으로 갈수록 치안이 불안하니 밤에는 돌아 다니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었다. 그래서 낮에 일단 중심가 근처를 걸어 보았는데, 참 재밌는 풍경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우선, 통통한 그림을 그리는 콜롬비아 출신 화가 보테로 (Fernando Botero) 미술관이 있는데, 참 인상적인 그림들이 많았다.
과일들까지 동글 동글, 길죽한 바나나도 동글동글하게 보인다. 왠지 마음이 좀 푸근해 지는 듯한 느낌. 뾰족뾰족하거나, 선이 날카로운 그림들에 비해 보테로의 그림은 둥글 둥글, 색감도 너무 예뻐서 그림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나는 잘 몰랐던 녹색 에메랄드가 그렇게 콜롬비아에서 많이 나오는지 처음 알았다.
손톱만한 작은 것부터 큰 덩어리까지 에메랄드 가게에서는 이 동양인 아저씨를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고 여러 가지를 꺼내 보여 주었지만, 가격이 내 지갑으로는 감당가능한 수준이 아니어서, 사실은 아주 작은 거 하나라도 아내한테 선물로 사가고 싶었지만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괜히 허락도 없이 샀다가는 돈만 쓰고 욕만 얻어먹을 수도 있겠다는 현실적 고려도.
일반 시민들이 사는 동네 풍경은 낯설지 않게, 소박하고, 낮은 단층집들이 많았는데, 색감이 남달랐던 기억.
어디나 있는 중앙광장에 저녁 늦게 가보니, 역시 가족들과의 시간을 중시하는 사람들답게, 일반 시민들이나 관광객들도 없고, 가로등만 환하게 오래된 돌들로 포장된 바닥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열심히 일하고, 며칠 후 짬이 나서 다시 그 유명한 소금성당에 가보았다.
이곳은 보고타 북쪽으로 약 1시간 거리의 Zipaquira라는 곳에 있는 소금성당인데, 지하 180m, 길이 약 500m 이며, 세 개의 주요 홀과, 여기에도 조성해 놓은 Via Dolorosa 14곳이 있었다. 모든 벽과, 기둥, 제단, 십자가가 순수한 소금 암석이며, 대성전은 16미터 정도의 거대한 십자가와 제단이 있어서, 모든 방문객들이 여기서 무릎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곳.
원주민 시대부터 소금을 캐내던 갱도들이었는데, 광부들이 매일 위험한 작업에 나서기 전에 갱도 안 작은 예배당에서 신의 보호를 빌던 전통을 이어받아 1950년대 성당으로 완공하였고, 현재의 모습은 1995년 무렵 완성되었다고 한다. "신앙과 노동이 만난 성스러운 공간" 이라고 하는데, 막상 지하 깊은 곳, 푸른 조명 아래 십자가 아래 서면 나도 기도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기념품 가게에 있던 (양념) 소금통 모양도 천사의 모양을 닮아 있다. 그리고 토착 원주민들의 남녀 가면도 인상적이었고.
나는 보고타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의 어떤 다른 도시 (Monteria)에서 며칠 동안 일을 하고 다시 보고타로 돌아왔다가 귀국했는데, 콜롬비아의 친절한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도시에서도, 보고타의 몬세라테 언덕에서도, 소금성당 지하에서도, 처음 보는 낯선 동양인 남자를 붙들고 사진찍자고 하던 그 아이들, 심지어 내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던 아주머니들,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 모두가 지금 내 컴퓨터 사진첩에 남아 미소를 짓게 한다. 어쩌면 그렇게 다들 경계심이 없고, 자기 것을 내어주면서까지 친절할 수 있을까? 치열한 경쟁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늘 목표한 성과와 경쟁, 평가에 절여진 삶을 살았던 것이, 이들에겐 인간으로서 서로 당연하게 나누는 조건없는 친절과 호의가 내게 다소 의아스럽게 보였던 이유는 아닐까?
그래서인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삶의 목적과 방법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의 콧수염이 멋진 미소와, 내가 만난 콜롬비아 사람들의 얼굴은, 두고 두고 기억이 난다. 주차장에서 나와 동료를 기다리던 저 밝고 아름다왔던 어느 현지인의 얼굴처럼.
부디 모두들 그때의 얼굴들 처럼, 마약과 내전은 이제 완전히 잊고, 녹색 에메랄드와 진한 커피향, 보테로 아저씨의 동글동글한 그림처럼, 따뜻하고 행복하기를.
"Adiós, Ami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