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혼을 일깨우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소위 "딴따라"를 싫어했지요.
개미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베짱이 너희들은 여름내 뭐 하다가 추운 겨울이 되어 곡식을 구걸해?
이게 저희 전형적인 도식이었지요. 차암, 무식한...
나는 열심히 국민학교때부터 못줄 잡고, 피 뽑고, 고등학교 때 정도는 피도 뽑고, 낫질도 하고, 지게질도 하고, 다른 애들이 종로학원 대성학원 가서 자신들의 입시 능력을 키울 때,
나는 저녁에 볏잎에 맺힌 물방울이 너무 빛나길래 누가 목걸이를 잃고 갔나 착각할 만큼 모자란 소년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아버지께서 내게 논에 가서 물 좀 대라 하시고, 피곤해서 주무시던 때도 있었지요.
좁은 수로 옆에, 큰 돌멩이를 이쪽 논으로 막으면 저쪽 논으로 물이 밤새 들어가고,
이쪽으로 막으면 다른 쪽 논으로 밤새 논으로 물이 들어가 벼들이 물을 먹고 자라나는,
그런 아주, 지금 생각해 보면 원시적인 관개 수로. 그 논둑 위에서, 어른들의 큰 소리 앞에서,
고작 고1, 고2 정도의 남자 아이, 그것도 소작농의 아이였던 나는 그냥 어두운 길을 돌아와야 했지요.
아무것도 아닌 돌의 위치를 포기하면, 그것이 밤새 내 논의 벼들이 목마른 이유가 되어야 했던.
그래도 별은 너무 빛났고, 철마다 개구리들이, 혹은 귀뚜라미들이 나와 함께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취해서 잠드신 아버지 몰래 카세트 테이프를 틀고 듣던 누나 옆에서,
박 인희 님의 노래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린 저는 그 목소리에서부터 참 소위 힐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노래들을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 라는 라디오프로에서부터 듣기 시작했고, 소위 팬이 되었지요.
그런데 그 분이 미국으로 이주하셨다길래, 그 분의 노래 좀 직접 들어보고 싶은데, 이젠 기회가 없구나.
그랬는데, 이분이 작년에 제주에서 솔로 콘써트를 하셨다고 하길래, 한 번 봤는데요, 저는 그냥 울었습니다.
머리가 흰 이 누님이 너무도 고운 목소리로 지금도 노래를 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어릴 적 누나가 준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지으신 시인이자 수녀인 이해인 님과 중학교 부터 동창이신 두 분.
내게는 조카인 신부님과 수녀님도 생각났지만, 이 인생의 어르신들이 지탱해 오신 그 엄청난 인생의 무게와, 그 속에서도 지켜낸 빛나는 원칙들이 너무도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먼저 살아 내신 분들의 모습을 보며, 지켜가야 할 것, 붙들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되지요.
비단 우리 나라만 그럴까요?
맨하탄에 Terra Blues라는 정말 작은 카페가 있는데, 거기서 만난 나이드신 흑인 가수의 노래도 제게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떨 때는 목소리 자체만으로 주는 감동도 있는데, 끽해야 위스키 한 잔 값 주고 들어간 이 카페에서 저는 미국판 정태춘 박은옥을 느꼈거든요. 노 가수의 음성 자체가 제게는 감동이었습니다.
허스키한 음성, 이마의 주름, 거친 기타 반주, 흐느끼듯 부르는 이 노래. 가사는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모두가 힘껏 박수를 치며 환호했던 기억. 그리고 고마운 마음에 한 잔 더 주문하고, 곱슬머리 파마를 한 흑인 여직원이 작고 귀여운 바구니를 들고 그 좁은 통로를 돌던 따뜻한 기억, 그 깜깜한 속에서 나도 꾸역꾸역 10불을 그 바구니에 넣었구요...
그래요, 우리는 다 각자가 나누는 감성과 기억과 지식들의 총합체를 기반으로 커왔습니다. 기저귀 떼고 혼자 큰 사람은 없겠지요. 끊임없는, 그리고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한 상호작용이 우리 각자를 키웠겠지요. 작게는 부모님, 형제들과, 혹은 친구들과, 좀 더 커서는 학교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과 등등. 그러나 나는 우리는 더 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만든 모든 것들과, 그리고 그 과정에 가장 크게 영감을 주는 Creators! 작가, 화가, 가수, 작곡가, PD, 코미디언 등 암튼 모든 종류의 창작자 들에게, 우리는 빚지고 있다는 생각. 어떤 경우는 Pioneers들로부터도 영감을 받지요. 스콧 힐러리부터 박영석 등반대장님께도.
하여튼 우리는 살아 있으니 기회가 있습니다. 무슨 기회? 배우고 단련되어서 나도 빛나게 끝날 수 있는 기회! 그래서 오늘 다시 본 박인희 님의 공연 동영상에서 나는 치유받고, 또 더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박인희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