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꽃들, 작은 곤충들, 작은 사람
오늘은 날씨가 흐리고 빗방울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추석 명절 첫 날인데 이동하는 길들이 비로 인해서 더 힘들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평소 걷던 천변길을 걷다 보니 오늘은 달팽이와 노린재의 일종으로 보이는 이름모를 날벌레가 풀잎에 앉아 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지만 사진을 찍어서 확대를 해보면, 작은 몸집임에도 형태나 무늬와 각 기관들이 너무도 신비롭다는 생각이 든다. 저 친구들 역시도 나와 같은 시간대에, 같은 세계를 살고 있지만, 작다 보니 잘 보이지도 않고,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도 적다. 어쩌면 그것이 포식자들에게 눈에 잘 안띄어서 생존 확률을 높여 주는 방법일수도 있겠다.
나는 왜 이렇게 작은 것들에 관심이 많을까? 아마도 어렸을 때의 경험 때문일 수도 있겠다. 개울가에서 놀거나 논밭에 있다 보면 늘 작은 물고기들과, 풀벌레나 땅강아지 들을 많이 만났고, 물가와 논둑의 풀숲에는 늘 작고 소박한 꽃들이 피어 있어서, 그런 것들과 친숙해진 탓이 아닐까? 물론 어쩌다 동물원같은데 가보면 크고 멋진 동물들도 많았고, 기린의 몸에 있는 무늬들은 어린 마음에도 참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꽃이나 나무들도 얼마나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것들이 많은지.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작은 것들에 더 눈길이 간다. 작기 때문에 더 오묘하고, 작기 때문에 더 살아남는 것이 기특한, 그런 작은 존재들.
작은 것은 곧 더 취약하고,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 큰 동물들은 누가 장난삼아 돌멩이 하나 던져서 맞더라도, 큰 충격없이 삶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작은 곤충들이나 작은 새라면 돌멩이 한 개에 존재가 다 파괴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더더욱 작은 것들에 마음이 가고, 그 작은 것들까지도 큰 것들과 똑같이 지어진 이 세계가 신비롭다. 크고, 강하고, 화려한 것들만으로 가득찬 세상이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다양하고, 조화롭게 균형잡인 세상이 될 수 있었을까? 작은 것들이 있어서 큰 것들이 더 빛나는 건 아닐까?
나 역시 나이가 들어 점점 작아지다 보니, 안보이던 혹은 못보던 것들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사회적으로 어떤 강자의 위치에 있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젊을 때 소위 "괜찮게 나가던" 때일때는 못보던 것들이, 이제는 더 눈에 잘 보이고, 특히나 그것은 "작은 것들"일 때가 많다. 내가 작아지니 작은 것들에 더 공감이 되고, 나와 동일시 되어서 그런 것일까? 다행히도 세상은 큰 것들보다는, 훨씬 더 많은 수의 작은 것들로 채워져 있어서, 그것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하고, 신비롭게 하는 건 아닐까? 세상 사람들도 임금과 재상들의 숫자 보다는 백성들의 숫자가 더 많듯이, 나처럼 작은 이들이 모두 각자의 다채로운 몸짓으로 세상을 채워가는 건 아닐까? 그래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큰 것들보다 자꾸 작은 꽃들이, 작은 동물들이 아름다와 보인다.
반면에 떠오르는 생각은, 크고 화려하게 보이기 위한 성장의 노력. 그것 또한 필요하고 마땅한 일이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계를 알아야 하고, 인정해야 하고, 그 안에서 최적점을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
20년도 넘은 예전에 읽었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라는 책이 떠올랐다. 당시 구독하던 격월간 잡지 녹색평론이라는 곳에서 발행한 책이었는데, 정말 공감이 갔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늘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경제라는 것은 늘 성장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인가, 그렇다면 성장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성장해서 과연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지고, 이 세상은 더욱 지속가능하게 (Sustainability) 변화하고 있을까? 과연?
내가 배웠던 경제학은 경세제민 (經世濟民)의 줄임말이었고, 나는 그 단어 자체도 좋았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경세"는 오히려 자본의 이익을 위한 수탈 (Exploitation)의 수단으로 전락했고, "제민"은 물건을 팔아치울 소비자 (Consumer)로만, 그 소비자들을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변질된 것이 아닐까? 뭘 얼마나 더 계속 Consume 할 수 있어야만 행복해 진다는 것인가? 그걸 자꾸 늘리려고 모든 시스템이 변질되는 것을, 오히려 자유화, 개방화 이런 식의 좋은 말로 포장하고, 작은 것들, 취약한 것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국가가 개입하던 보호막과 장벽과 수단들을 "규제완화" 라는 식으로 허물어 왔던 것은 아닐까? 경제학은 원래 경세제민을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선택을 거시적/미시적으로 고민하고 방법을 찾는 학문이어야 하는데, 다들 경제학 전공했다고 하면, 왜 너는 그렇게 돈 버는데 관심이 없냐고 묻는다. 참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경영학 전공자에게는 그 말이 더 맞는 질문일 수도 있다고 개인적으로 나는 생각하지만. (이 말 들으면 경영학 전공자들이 기분나쁘려나? 어쨌든 어떤 조직을 최적의 성과를 내도록 Organizing하고 Managing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니, 그 최적의 성과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계량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어쨌든!
내 삶에서도, 그간은 더 커지고, 더 많아지고, 더 화려해지고... 이런 것을 꿈꾸었다면, 이제부터는 좀 바꾸고 싶다. 작아도 기쁘고 만족할 수 있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을 받아들이는, 그리고 나아가서는 좀 더 성숙하고 향기로운 그 무엇을 바라는 걸로. 크고 밍밍한 배 보다는 작고 흠집이 많아도 단단하고 맛있는 흠집사과처럼.
작은 달팽이와 작은 꽃들이 내게 오늘 아침에 들게 한 짧은 생각. (참고로, 위 꽃들 사진 중 세번째 작은 꽃은 여뀌라는 풀꽃인데, 우리 누나들이 어려서 소꿉장난할 때, 저 꽃을 손가락으로 주욱 훑어서 고춧가루로 썼던 꽃... 한 분은 지금은 안계시니 더 이런 것들이 생각이 난다.)
어느 아침, 작은 나비 한 마리가 내게 와서 앉아 떠나지 않던데, 나나 그나 같은 작은 존재들이라서 그런가보다. 작은 이가 되어서 다행이다. 작은 것들의 친구가 될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