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래블 소피아 Dec 25. 2023

이브의 경고


우피치 미술관은 메디치가의 코시모 1세 때 지어진 건축물로 메디치가의 공무 집행실로 사용되던 것이 메디치가의 마지막 상속녀 안나 마리아 루이자가 피렌체 시에 기증했고,  미술관으로 변경되어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그래서 사무실(Office)이라는 이탈리아 단어 우피치(Uffizi) 미술관이 된 것이다. 르네상스 최고의 회화 2천5백 점 정도를 소장하고 있어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피렌체에 오기 전에 우피치 미술관 소장 작품들에 대한 공부를 했었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유명한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었지만 우피치 미술관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은 산드로 보티첼리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비너스의 탄생과 봄, 프리마베라라는 작품이었다. 이 두 작품 앞에 서면 은은하게 빛나는 색감과 아름다운 여신들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어 발길이 떨이 지지 않는다. 마치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처럼이 작품 앞에 서면 온몸이 얼어붙는 마법에 걸린다. 피렌체라는 도시명이 바로 꽃의 도시인데, 꽃이 가득한 프리마베라 작품이야 말로 피렌체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보티첼레의 비너스의 탄생
보티첼리의 봄, 프리마베라 앞에서


 어마어마한 르네상스 시대 대가들의 그림으로 신이 나서 미술관을 휘젓고 다니다 전혀 기대도 하지 않은 작품 앞에서 멈춰 섰다. 독일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의 작품으로 알려진 아담과 이브라는 작품이었다. 꽤 사이즈가 큰 아담과 이브의 작품이 전시실 한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었고 나는 이브를 그린 그림 앞에 서서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림 속 이브는 부드러운 곡선의 나체로 서서 사과를 왼손에 하나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주위에 뱀이 있었다. 화가가 그린 기교에 대해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브’라는 인물에 그냥 꽂혀 버렸다. 성경에 최초로 나오는 여성이자 고대 히브리어로는 '하와'라고 발음하고, 고대 그리스어로 '에바'라고 표기한다.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의 아담과 이브


이브는 왜 선악과를 따먹었을까? 왜 그런 유혹에 넘어가는 역할은 여자가 담당했을까? 왜 여자들은 주로 호기심이 있는 인격으로 그려지고 재앙을 몰고 오는 캐릭터로 그려졌을까? 

그리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재미있는 것을 또 발견하게 되었다. 최초의 성경에 나오는 여성은 이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릴리스'라는 인물이 아담 첫 아내였는데 부부관계를 하던 중 릴리스가 '똑같이 흙으로 만들어졌는데, 왜 나만 당신 밑에 누워야 되나?'라며 항의하였고 아담과 다투다가 부르면 안 되는 하느님의 이름을 불러버리고 도망쳤다고 한다. 야훼가 3명의 천사를 보내 추격했으나 릴리스가 안 돌아간다고 버텨 결국 데려오지 못했다. 이 내용은 나무위키를 참조했고 나무위키에 따르면 이 기록은 '벤 시라의 알파벳'(Alphabet of ben Sira)라는 7~10세기 중세 유대교 문헌에 나온다고 한다. 벤 시라의 알파벳에서는 이 정도로 그치지만 후대 릴리스는 철저히 '악마화'된다. 도망친 후 악마와 어울리며 악마를 낳았다느니, 이브를 유혹한 뱀이 그 악마였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퍼진다.  릴리스 이야기는 이제 성경과 상관이 없는 설화로 남았지만 여전히 평등을 주장하는 강한 여자를 악마화한다는 콘셉트는 이브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는 나쁜 역할로 그렸다는 관점에서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리스 신화에 판도라도 생각났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자 사람이다.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 사람을 만들 때 여자는 없었다. 김헌 교수님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가 사람을 물과 흙으로 빚었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만든 창조자였기 때문에 인간을 몹시 사랑하였고 불까지 훔쳐다 인간에게 주었는데 제우스가 신의 특권인 불을 한갓 인간에게 준 것에 단단히 화를 냈고 프로메테우스가 만든 인간도 싫어하게 된다. 제우스는 인간들에게 어떤 재앙을 내릴까 고민하다가 여자를 만들기로 한다. 제우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를 시켜 진흙을 빚어 여신을 닮은 처녀의 모습으로 만들었고, 아테나는 여자 인간에게 옷과 허리띠, 화환을 주었고,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과 매력을, 헤르메스는 아름다운 목소리 영악한 마음 교묘한 말솜씨를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판도라가 되었다. 판(Pan)은 모든 이라는 뜻을, 도라(dora)는 선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자의 이름은 '모든 신들이 선물을 주었다'가 된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명에 따라 모든 선물을 신으로 받은 판도라를 에피메테우스에게 데려갔고, 형인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가 보낸 어떤 선물도 받지 말라고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말했지만 그는 매력적인 판도라를 보자마자 그녀에게 빠져들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가 불행, 질병, 고통 등 해로운 것이 들어있는 항아리를 열어보지 말라고 판도라에게 말했지만 그녀는 결국 항아리를 열어 보게 되었고 인간에게 해로운 것들이 세상으로 빠져나오고 말았다. 

이브도 마찬가지다. 남자인 아담이 먼저 만들어지고, 아담의 늑골로 후에 만들어진다. 아담의 아내로서 에덴동산에 살다가 금단의 과실을 뱀의 유혹에 의해 따 먹으면서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고 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호기심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특성이라고 했다. 왜 최초의 여자인 판도라와 이브에게 인간다운 특성인 호기심이 있었을까? 왜 이브는 그 과일을 따 먹었을까? 


나는 윌에게 물어보았다.

“왜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에덴동산에서 과일을 따먹었을까?"

그리고 윌이 말했다.

“내 생각에는 보통 여자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보면 항상 남자들보다 먼저 성숙하고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빨리 알아차리기 때문에 인간 중에서도 여자가 ‘지적 호기심의 가득한’ 캐릭터로 그려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판도라의 이야기가 쓰인 그리스도 그렇고 성경이 쓰인 당시 시대적 배경이 여자들을 남자보다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들이 나쁜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을까?

“왜 이브가 그냥 호기심이 아니라 지적 호기심이 가득한 캐릭터라고 생각해?"

“그야 이브가 따 먹은 과일이 지혜의 나무에서 나온 눈을 뜨게 해주는 과일이니까."

“응? 눈을 뜨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것이었나? 나는 막연히 그 과일 이름을 '선악과'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혜의 나무라느니 눈을 뜨게 해주는 과일이라는 하는 소리와 연결 짓지 못해서 문득 궁금해졌고 나중에 윌이 가지고 있는 성경책에 영문 개정판을 읽어보았다.


He(the serpent) said to the waman, “Did God actually say, ‘You shall not eat of any tree in the garden?”

뱀이 여자에게 말했다. “정말 하느님이 ‘정원에 있는 어떠한 나무에서도 먹지 말라’라고 말하셨어?"

And the woman said 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s in the garden, but God said, ‘You shall not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that is in the misdst of the gardern, neither shall you touch it, lest you die."

그리고 여자가 뱀에게 말했다. “우리는 정원에 있는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먹을 수 있지만 하느님이 말씀하셨어 ‘너는 죽지 않도록 정원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

But serpent said to the woman, “You will not surely die. For God knows that when you eat of it your eyes will be opend, and you will be like God, knowing good and evil."

그러나 뱀은 여자에게 말했다. “너는 분명히 죽지 않을 거야. 네가 그걸 먹으면 너의 눈이 떠지고, 하느님 같아지고,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걸 하느님이 알게 될 뿐이야.”

So when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a delight to the eyes, and that the tree was to be desired to make one wise, she took of its fruit and ate, and she also gave some to her husband who was with her, and he ate. 

그래서 여자는 그 나무가 음식으로 좋아 보였고, 눈에는 즐거움이었으며, 그 나무가 누군가를 현명하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보았다. 그녀는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조금 주었더니 그가 먹었다. 

Then the eyes of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loincloths.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떠졌고 그들은 자신의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화과 잎들을 함께 꿰어 자신들에게 샅바로 만들어 덮었다.


 하느님은 하지 말라는 것을 한 두 사람과 뱀에게 화가 나서 벌을 내리게 된다. 벌이 많긴 하지만 중요한 것을 말하자면 뱀은 배로 기어 다니며 하루종일 먹을 것을 찾아 헤매도록 하였고, 여자에겐 아이를 낳는 고통을 주고, 아담에게는 평생 땀을 흘리며 일하여야지만 먹고살 수 있도록 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Behold, the man has become like one of us in knowing good and evil. Now lest he reach out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fe and eat, and live forever."

보라, 인간은 신처럼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너희가 생명의 나무에 또 손을 뻗쳐 신처럼 영원히 살지도 모르게 되었구나.


여기서 보면 나무가 두 개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는 knowing good and evil tree: 선과 악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나무, 다른 하나는 Tree of Life :생명의 나무이다. 아담과 이브는 선과 악을 알게되는 나무에서 선악과라 불리는 과일을(사과로 그려지는 과일) 따먹어서 무엇이 선한지 무엇이 악한지, 무엇이 좋은지 별론지 구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다음 차례는 생명의 나무 과일을 따먹어서 신처럼 영원히 살려고 할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그래서 신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추방 한 다음에 에덴동산 동쪽 끝에 불타는 칼까지 배치하면서 생명의 나무를 지켰다. (He placed the cherubim and a flaming sword that turned every way to guard the way to the tree of life.)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의 포커스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이야기할 거리가 매우 풍성해진다. 이 내용으로 기독교나 가톨릭에서 나름 신도들에게 가르치는 방향도 있을 것이다. 한낱 인간이 너무 자만하여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품었고 신을 도전하는 행위를 하면 벌을 받는다. 그러니까 절대 권력인 신의 명령을 어기려고 하면 안 된다. 신에게 도전하면 안 된다. 뱀은 악마가 보낸 자, 유혹하는 자이니 조심해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 가르치지 않을까 짐작해 볼 수 있다. 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이브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이야기 속 그녀였다면 좀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야기 자체로만 보면 뱀의 속삭임에 현혹되어 유혹에 넘어간 이브고, 자기가 잘못한 것도 모자라 남자까지 꼬드겨서 신의 명령을 어기게 했으니 이것 또한 이브의 잘못인 것만 같다. 인간이 벌을 받게 된 이유가 사실 악마의 탓도 아니고 아담의 탓도 아니고 이브의 탓인 것만 같다. 그런데 호기심에 가득 찬 인간이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이란 말인가? 

이브는 ‘내가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구나’라는 의식을 가지게 된 사람이다. 인간도 처음에 동물처럼 아무것도 입고 다니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지만 의식이 깨어 ‘인간다운 인간’이 된 것이다. 눈을 뜬것이다. 의식의 사전적 의미는 깨어있는 상태에서 자신이나 사물에 대해 인식하는 작용이다. 그러니까 나 자신을 알고 구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인간이 모든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 아니었던가? 우리가 지금까지 이렇게 발전하여 번영을 누리고 살 수 있게 해 준 모든 것으로부터의 원동력이 인지능력 아니었던가? 

아니면 성경의 이야기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나’를 인지하게 됨으로써 모든 동물과 자연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항상 오만해 왔다고. 이 오만이라는 특징 덕분에 인간들은 항상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이끌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신이 그 벌로 아담에게 평생 노동을 하게 하고, 이브에게 아이를 낳는 고통을 주셨지만 사실은 그 신이 우리였고, 우리가 우리를 파괴하며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있다고.

 석유를 마구 퍼내어 사용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시켜 오존층을 파괴하고, 농사를 핑계로 무자비하게 나무를 베고, 값비싼 상어지느러미 요리와 참치 요리 때문에 바다 포식자의 씨를 말리고, 플라스틱과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하고…….

어쩌면 이브는 현대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떴기 때문에 그 사실 자체만으로 신에게 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인지함으로 인해 온 세상 만물 위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신처럼 행동하며 모든 것을 짓밟아 버리고 있다.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가고 있지만 우리 욕망은 끝이 없고 멈출 수도  없다. 이브의 이야기는 인지능력을 가진 죄로 스스로 파멸시키는 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