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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Dec 29. 2023

파르테논 신전의 운명

 다음날은 아침 일찍부터 파르테논 신전으로 향했다. 아침이 아니면 줄을 어마어마하게 서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눈 뜨자마자 부랴부랴 준비하고 물 한 병 챙겨서 숙소를 나섰다. 오전 8시 30분 정도 도착했는데 다행히 5분 정도만 줄을 선 후에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할 수 있었다.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 입장권만 살 수 있고, 주변 유적지까지 함께 볼 수 있는 통합권도 구매가 가능했는데 통합권을 구매해 주변을 보고 싶었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그냥 아크로폴리스 입장권만 구매하였다. 


아침에 한산했던 파르테논 신전 매표소

표를 구매하고 신전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다 보면 헤로데스 아티쿠스 오데온(Odeon of Herodes Atticus) 극장이 먼저 나온다. 이곳에서는 여전히 공연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공연이 가능한 멋진 극장을 창조한 그리스 조상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처음에 이 극장이 디오니소스 극장인 줄 알았는데 디오니소스극장은 조금 더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스를 여행하기 전 김헌 교수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은 것이 여행지의 현장과 과거를 비교해 보며 상상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나는 디오니소스 신이 포도주의 신인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만 이 책에 따르면 디오니소스는 염소의 신이자 비극이라는 영어단어의 어원이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나와 헤라를 피해 염소로 변신해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염소의 신이기도 했다. 영어의 비극을 말하는 Tragedy는 그리스어 Tragodia에서 왔다고 한다. Tragos 숫염소, aoidia 노래하다는 뜻이 합쳐진 것이다. 디오니소스 극장에 풍요를 기원하며 염소를 바치는 동안 노래 하던 것이 점차 비극 연기로 발전해 비극이란 단어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여행하면서 알게 되는 '앎의 기쁨'이 정말 쏠쏠하다.


아티쿠스 오데온(Odeon of Herodes Atticus)


극장 바로 위쪽에 가파른 계단을 지나면 프로필라이아라는 대리석 기둥으로 만든 커다란 입구가 있고 바로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파르테논 신전은 BC 479년 페르시아인들이 파괴한 옛 신전 터에 아테네 인들이 아테나 여신을 위해 만든 신전이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와 건축가들이 BC447년이 짓기 시작해 BC 438년인 16년 만에 완성하였다. 세계 최고의 건축물이라 칭송하는 이 신전은 건물을 더 웅장해 보이게 하려고 직선이 아니라 완만한 곡선으로 정교하게 제작하였고 사람의 눈에 생기는 착시현상까지 고려하여 기둥 간격을 균일해 보이도록 만든 대단히 과학적인 건축물이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보호하는 유네스코 국제기구의 로고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1687년 베네치아 전쟁으로 천장이 무너져 내렸고 1822년 그리스 독립전쟁으로 훼손되어 수십 년째 보수공사 중이다. 신전 가까이에 가서 보니 조각조각 무너진 신전을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이어 붙여서 복원을 한 과정을 사진으로 함께 전시해 주고 있었는데 복원 기술도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르테논 신전


에렉테이온(Erechtheion) 신전


파르테논 신전 맞은편에는 기둥대신 6명의 여신상이 있는 유명한 에렉테이온(Erechtheion) 신전이 있었다. 이 여인들은 ‘카리아티드’(Caryatid)라고 하는데 6명의 여신상은 모조품이고 진품 5개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하나는 영국의 토마스 엘긴경이 수집하여 ‘엘긴마블스’라는 컬렉션으로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수많은 오벨리스크를 보며 다른 국가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복잡한 상황에 대해 이미 고민해 보적이 있었기 때문에, 내심 영국이 가져간 엘긴 마블스라 불리는 카리아티드의 그녀를 그리스로 돌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말을 삼키고 그녀들을 조용하게 응시하였다. 19세기 무너져 가던 오스만 제국은 신바빌로니아의 이슈타르 게이트의 타일도 독일에 팔아넘겼고 엘긴경이 문화재 조사라는 명목으로 카리아티드의 그녀를 가져갔지만 눈감아 주었다. 그리스 정부에서 1980년대 이후 엘긴의 대리석을 반환하라고 요구했지만 영국 정부는 이를 거절하였다. 


 우리는 지금도 약육강식이 현저하게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힘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힘이 없으면 예전에 자기 물건을 뺏어간 사람에게 돌려달라고 할 수 없다. 갑자기 힘센 사람이 계산적인 마음으로 어떠한 대가를 바라고 줄 수는 있겠지만 이제 와서 도의적인 양심에 호소하며 그것을 맨입으로 돌려받을 확률은 희박하다. 


아크로폴리스의 뜻이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하는데 이 말처럼 신전이 위치한 곳은 고지대였기 때문에 신전 아래로 바글바글 모여있는 하얀 집들과 산, 바다가 훤히 보였다. 



한때 잘 나가던 아테네는 페르시아 전쟁직후인 BC 478년경 주변 도시국가들과 델로스 동맹 맺어 페르시아의 공격으로부터 대비하려고 한다. 이 델로스 동맹은 델로스 섬에 공동 금고를 두어 또 전쟁이 나면 이 모금된 금액을 사용해 함께 적을 막자는 에게해 섬들과 소아시아 연안의 주변국들과 약속이었는데 페르시아 전쟁에서 이기고 '델로스동맹'을 이끌었던 아테네의 시민들이 동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공동 금고를 BC 454년경 아테네로 옮긴 뒤 이 돈을 마음대로 사용해 대리석으로 거대한 신전을 지었다. 그들은 영원히 건재할 것 같은 멋진 신전을 지었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스파르타에 패전하면서 신전은 기독교의 예배당도 되었다가 이슬람 사원도 되었다가 포탄에 무너졌다가 엘긴경에게 마지막 자존심까지 뜯겨졌다. 


나는 파르테논 신전의 운명 앞에서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속담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힘과 권력에 취하면 그 힘에 도취되기가 쉽기 때문에 아무리 역사가 교훈을 주더라도 권력자들의 귀엔 들리지 않는것 같다. 그래서 바보같이 지금도 파르테논의 신전의 운명은 곳곳에서 되풀이된다. 가장 힘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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