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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Jan 01. 2024

아프리카가 황량하다는 편견

사하라사막투어의 시작은 페즈(Fes)였다. 페즈는 인구 120만 정도 되는 모로코 북부의 도시이다. 보통 모로코에 오면 마라케시에서 사하라 사막이 있는 남쪽 메르주가(Merzouga)까지 내려갔다가 북쪽에 있는 페즈로 올라가는 투어를 많이 이용하는데, 우리는 반대 순서로 페즈에서 메르주가, 다시 마라케시로 가는 일정으로 투어 상품을 예약했다. 투어 상품은 인터넷으로 예약했는데 그 여행사를 이용했던 사람들의 후기도 꼼꼼하게 읽고 회사에 전화해서 상담원과 통화한 후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숙소를 체크아웃하는 날 투어를 예약한 여행사에서 직원을 보내주었고 그가 약속된 시간인 아침 8시에 숙소로 찾아왔다. 숙소비에 포함되어 있는 조식을 못 먹고 간다는 걸 눈치챈 숙소 관계자는 주스와 빵을 미리 싸두어 떠나는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고단한 여행자를 배려해 주는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졌다.


사라하 사막 투어는 2박 3일 일정이었다. 첫째 날은 아침부터 온종일 달려 메르주가의 사하라 사막 캠프로 가서 짐을 풀고, 낙타를 타고 사하라 사막에서 노을 지는 것을 구경한 후에 캠프 숙소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는 일정이었고, 다음날은 와르자자트(Quarzazate)라고 하는 도시로 가서 다시 하룻밤을 보내고 마지막 셋째 날에 마라케시에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그룹 투어를 예약해서 스페인에서 온 조용한 커플과 함께 넷이서 투어를 하게 되었다.


투어의 첫째 날, 페즈에서 메르주가까지 9시간 정도 차로 이동하는 매 순간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의 한 나라이고, 나는 차로 이동하는 9시간 내내 사막처럼 황량한 황무지를 달릴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페즈를 떠나서 두 시간 동안 펼쳐지는 녹색 올리브밭을 보며 입이 딱 벌어졌고, 다음엔 울창한 숲이 나왔으며, 그다음엔 끝도 없이 펼쳐진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그러니까 페즈에서 메르주가까지 오는 내내 북아프리카 모로코는 푸르게 빛났다. 


모로코는 세계 올리브 생산량의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가 작년에 4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나는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올리브를 더 많이 생산할 줄 알았는데 4~5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올리브 나무를 아프리카에서 보고 있으니 기가 막혔다. 그리고 크로아티아와 이탈리아에서 많이 봤던 작고 귀여운 올리브나무들이 생각났다.

‘너희들 이렇게 까지 클 수 있는 나무였구나.'

모로코 북쪽땅이 쑥쑥 키워낸 거대한 올리브 나무 밭을 지나 우리는 이프란(Ifrane)이라는 도시에 잠시 쉬어갔다. 이 도시는 미들 아틀라스주에 위치한 도시로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이곳은 또 ‘작은 스위스’라고 불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스위스에 있을법한 삼각형 모양의 지붕을 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집의 크기도 제법 컸다.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했는데 동네 자체도 그렇고, 커피숍도 그렇고 아프리카라는 느낌은 전혀 없고 럭셔리한 유럽사람들 별장같이 느껴졌다. 가이드 말로는 여기에 모로코에서 아주 유명한 보딩스쿨이 있는데 모로코 왕가의 자녀들이나 정치인들의 자녀들, 그리고 유럽에 부유한 집안 자녀들이 이곳에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겨울에는 눈이 와서 스키장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아프리카에 눈이온 다고?' 이 땅은 매 순간마다 나의 무지를 깨우쳐주었다.


이프란 마을의 어느 커피숍


커피타임이 끝난 후 차를 타고 막 떠났을 때 곧이어 아틀라스 산맥 한 줄기를 따라 울창한 숲이 나타났다. 이번엔 원숭이 가족들이 도로에 몰려나와 우리를 쳐다보았다.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어 가이드에게 부탁해 잠시 차를 세웠다. 원숭이 가족들은 멀뚱멀뚱 앉아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아마 먹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동안 서로 바라보다 내가 아기 원숭이를 안고 있는 엄마 원숭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엄마 원숭이가 경계하며 뒷걸음질 쳤다. 야생 원숭이들이라 사람들 손이 낯선 것 같았다. 나를 보고 뒷걸음질 치는 그 모습이 참 좋았다. 그래, 그렇게 인간들 잘 피해 다니렴!


원숭이 가족들

원숭이들과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고 얼마 되지 않아 거대한 캐년 지형과 마주하게 되었다. 미국에 그랜드 캐년도 가봤지만 그에 못지않게 웅장하고 멋졌다. 그런 다음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니 끝이 보이지 않는 오아시스 숲이 펼쳐졌다. 우리는 굉장히 크고 넓은 곳에 가면 흔히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아마 이 오아시스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이 오아시스는 정작 77000km에 달한다. 상상이 가는가? 가이드 말로는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큰 오아시스라고 했다. 사막에 오아시스 하면 황량한 모래 더미에 작에 고여있는 물 웅덩이와 나무 몇 그루 정도 있는 이미지를 상상을 하곤 했는데, 나는 또 보기 좋게 모로코에게 머리를 한대 얻어맞았다. 


끝도 없이 펼져지는 오아시스



끝도 없이 펼져지는 오아시스




아프리카는 황량할 것이다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모로코는 그런 나의 편견을 산산조각 내주었다. 물론 적도부근의 아프리카 보다 기후가 낮은 북아프리카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프리카 대륙인데 스키장이 있을 거라고, 그리고 이렇게 푸를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편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한 조각의 치우친 생각은 타인이 아니라 나를 쉽게 가두어 버리고 나 자신에게 한계를 두어 내 능력을 펼칠 수 없게 기회를 박탈해 버리는 몹쓸 생각이다. 아프리카가 황량할 것이라는 생각은 나를 가두어 아프리카가 푸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해 버리게 만든다. “아마 이건 이럴 것이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는 일은 마치 작은 상자 안에 나를 가두고 내 사지를 다 잘라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나를 몰아넣는 일과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상자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작은 사람인가. 

그래, 무엇이든 쉽게 단정 짓지 말자.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대하자. 

모로코는 이렇게 편견에 대해 또 한수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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