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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아빠 May 06. 2021

정말 거지 같네.

남편 주부의 아침

“아빠, 놀자요.” 아들이 귓속말로 나를 깨운다. 달콤하다. 아침마다 아들의 목소리와 함께 기상하는 나, 축복이겠지? 아빠도 스스로 일어날 줄 알아. 깨우지 않아도 돼 아들아. 제발 10분만 더 자고 싶어.


아들의 손에 이끌려, 거실로 간다. 도대체 몇 시야? 아... 6시 30분? 아들아, 더 자야 하는데. 조금 더 자. 당연히 다시 잘 리가 없다. 비몽사몽 거실에서 아들과 놀아준다. 응, 그래? 오. 알겠어. 잘하는데? 영혼 없는 리액션을 하며.


7시 40분. 땡땡땡.

아들의 등원과 아내의 출근 미션이 시작된다. 등원 차량이 오기까지 40분 남았다. 아침식사 준비 및 아들 밥 먹이기, 아들 양치, 옷 입기, 동화책 읽기, 아내가 가지고 갈 핸드 드립 커피를 준비해야 한다. 가끔 아들이 오줌이라도 싼 날에는 샤워 미션까지 더 해진다.


먼저, 가스레인지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식용유를 두른다. 프라이팬이 달궈지는 동안, 냉장고에서 계란을 두 개 꺼내고 터뜨린다. 계란이 튀겨질 동안, 커피 포트기에 물을 끓인다. 커피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면서, 계란이 익기를 기다린다. 어느 정도 계란이 익으면 젓가락으로 휘저어서 계란 스크램블을 만든다. 계란 수분이 어느 정도 날아갈 즈음, 계란을 프라이팬 한쪽으로 밀어 넣고, 간장을 한수저 넣는다. 간장이 끓으면서 간장 냄새가 날아가면 간장과 계란을 섞는다. 계란밥 준비 완료! 아들이 먹기에 뜨겁기 때문에 잠깐 식힌다.


이제 커피를 내리면 된다. 커피 향을 맡으며 잠깐의 쉼을 느끼려 했다가는 등원차량을 놓친다. 그냥 빨리 내려. 맛은 중요하지 않아. 시간이 중요할 뿐. 어차피 라테는 우유가 들어가니까 맛은 거기서 거기. 오, 여보 오늘 커피 맛있게 내려졌어. 잘 마셔~^^. 커피 맛은 말하기 나름이라는 거.


흰쌀밥에 간장으로 조리한 계란 스크램블과 참기름 한 숟가락 넣고 섞는다. 8시. 늦지 않았어. 그동안 아내가 아들의 옷을 입히고 식탁에 앉힌다. 아침 식사를 어떻게 하느냐.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여기서 등원차량에 탑승하느냐, 못 하느냐가 결정 난다. 마음이 급해서 아들을 닦달하면 오히려 늦어진다. 적절하게 밀당을 하면서, 빠른 식사를 유도해야 한다. 유치원 일과표를 읽어 주면서, 유치원에 가고 싶은 기대감으로 식사속도를 빠르게 한다. 오늘 유치원에서 숲체원 간다던데? 많이 먹고 가야지. 오늘 운동장에서 친구들이랑 달리기 하려면 잘 먹고 가야 해. 와, 오늘은 레고 선생님 오는 날이야, 재미있겠는데?! 억텐 폭발.


삐리리. 삐리리. 8시 15분.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지금 양치질을 하지 않으면, 늦습니다!!! 경보음이다. 다행히 아들은 양치질하는 걸 좋아해서, 후다닥 마무리할 수 있다. 좋아. 오늘은 늦지 않겠다. 후훗! 미션 성공이 눈 앞이다.


아들이 운동화를 신는 동안 유치원 가방과 마스크 그리고 겉 옷을 챙긴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아니야. 이건 아니야. 갑자기 아들이 운동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아니야. 그러지 마. 화 차오른다~~ 화가! 화가 차오른다~~ 화가! 그냥 가! 인마!!! 남자가 무슨 신발 타령이야!!! 소리를 지르고 싶다. 하지만 안 된다. 참아야 한다. 이를 깨물고. 이제 마지막 관문인데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 지금 화를 내면, 아들은 소리 지르면서 울겠지? 그럼 아들을 달래는 시간 때문에 등원 미션은 실패한다. 김남주! 판단을 잘해! 무리한 부탁이 아니라면 들어주자. 등원 차량 탑승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째깍, 째깍...


"아들, 뛰어."

아들과 나는 달린다. 안 되겠다. 꽉 잡아. 아들을 품에 안고 뛴다. 헉헉. 아, 내가 이 XX 때문에 아침마다. XXX. XXXX. 마음의 소리는 언제나 고맙다. 마음껏 욕할 수 있으니까. 이거라도 없으면 어떻게 사나.


“늦어서, 죄송합니다.”


헐레벌떡 유치원 등교 차량에 아들을 태운다. 미션을 실패한 기분, 발걸음 무겁게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온다. 어렵네. 2년째 이렇게 지내고 있는데, 아직도 아침 등원 미션은 어려워. 내일은 꼭 성공하리라! 주먹을 불끈!


응? 아직 아내의 차가 출발하지 않고 있다. 아직 안 갔나? 늦었을 텐데. 운전자석 창문이 내려간다. 빼꼼히 아내가 얼굴을 내민다. 창문과 마스크 사이로 아내가 미소를 짓는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나도 웃는다. 따스한 아침 햇살과 함께. 정신없던 아침에 언제 그랬냐는 듯 아내의 미소 덕분에 조금은 웃음을 찾는다. 여보, 돈 많이 벌어와요.


어서 와.

아내와 아들을 보내고 돌아오면 나를 반기는 이가 있다.

설. 거. 지.

정말 거지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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