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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아빠 May 11. 2021

삼겹살 할인에 속았다

남편 주부 일상 에세이

디리링.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누구지? 연락 올 곳이 없는데.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나?


"게릴라 타임 세일~~ 오늘은 몇 시일까요?"


MS마트에서 나를 찾는 알림이다. MS마트는 내가 사는 지역 마트인데 우리 집 앞에 있어서 자주 가는 곳이다.

전업주부가 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어플 중에 하나가, MS마트 어플이다. 마트에서 보내주는 할인 소식은 가장 유념해서 살펴야 한다. 아내가 소득을 책임지고 있다면, 내가 가정의 소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가정의 경제가 좌우되니까 마트 어플을 잘 살펴보는 게 정말 중요하다.


처음에는 마트 할인 소식에 홀려서 가계 경제를 말아먹었다.

오~오늘은 삼겹살이 할인인데? 소고기도 할인이야? 닭갈비도!? 새우도!? 눈이 돌아간다 눈이. 아들이 새우 좋아하는데. 할인할 때 사야지, 모두 다 담아버려! Flex!!! 육해공 Flex!!


고기는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으면 되니까 저렴할 때 사자고. 할인할 때 산거라, 합리적인 장보기, 경제적인 장보기를 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계산대에 섰다. 응? 뭐야? 뭐가 이렇게 많이 나왔어. 할인이라고 해서 샀는데, 뭐야 이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네. 닭고기는 다음에 먹을까? 좀 뺄까? 마트 직원이 내미는 손에 더 생각할 겨를 없이 카드를 건넸다. 혹시나 잘못 계산된 건 아닐까. 영수증을 받아 들고 다시 차근히 계신해봤지만, 틀림이 없었다. 몇 개는 환불 할까? 아니야, 할인할 때 산 거니까 괜찮아. 그지, 괜찮아. 잘 먹으면 되니까. 괜찮아... 마트 자주 오는 것보다 한 번에 이렇게 장을 보는 게 기름도 아끼고 좋잖아?


우와, 여보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우리 오늘 잔치 해? 뭐 좋은 일 있어?

아니. 그게 아니고...^^; 오늘 할인하길래 샀지. 마트 Flex!!!

여보 오늘은 소고기부터 먹자고. 하하하. 스테이크 해줄게. 내가 유튜브에서 배웠어. 얼른 씻고 나오셔.


냉동실이 가득 찼다. 전쟁이 나도 한 달은 거뜬히 버틸 만큼. 더 이상 넣을 곳이 없다. 이거 언제 다 먹지. 고기는 냉동실에 있으면 안 썩으니까 괜찮아.


다음 날이 되었다. 역시나 마트에서 할인 문자가 왔다.


삼겹살 100그람에 1600원?????


우르르!! 쾅쾅!!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삼겹살을 100그람에 1800원 정도에 샀었는데, 오늘은 100그람에 1600원이란다.

장난해?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야? 200원에 상처 받았다. 부르르. 손이 떨린다. 사기를 당한 것 같다. 분명, 할인이라고 했잖아!! 속았다. 세상에 믿을 할인 소식이 없었다. 할인이라고 무작정 살 것이 아니었다. 삼겹살의 평균가를 모르고 있으니까 할인이라고 하면 정말 할인인 줄 알았던 거다. 정말 삼겹살이 싸다는 가격이 그람에 얼마인지를 모르니까 할인이라면 그냥 장바구니에 담았던 게 잘못이었다. 고기 값이라는 게 그날, 그날 경매로 낙찰받아서 정해지는 거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초보주부라서, 마냥 속은 느낌이었다.


여보, 이거 언제 먹을 거야? 아 뭐야, 닭고기 있었네?!

할인이라서 많이 샀더니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게 더 많았다. 할인이라고 냉동실에 쟁여뒀더니 오래 방치해서 맛도 별로 였다. 미리 꺼내서 해동하는 것도 귀찮았다. 정말 답답한 건, 뭘 사서 넣어뒀는지 잊어버리고 또다시 산다는 거다. 다가오는 유통기한에 쫓겨서 먹기 싫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도 고문이었다. 그래서 할인에 이끌려 장을 보는 것보다는 그 날 먹고 싶은 거 위주로 장을 보는 게 나았다.


이제 속지 않으리! 할인이라고 사지 않으리! 재고처리하지 않으리!!

200원에 상처 받은 마음은, 눈을 크게 뜨도록 했다. 정신을 단디!! 차려야 했다. 하지만 눈만 크게 뜬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마트에 가면 할인 아닌 게 없으니까. 원가에 엑스표와 빨간색 할인가는 나의 마음과 손을 유혹했다. 저 오늘이 마지막 할인이에요. 손짓한다. 저를 집으로 데리고 가주세요. 강열한 빨간색 숫자가 나를 붙잡는다. 이게 정말 할인된 가격이 맞아?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가격표와 밀당을 한다. 무슨 소용이겠어. 정말 할인된 가격인지 알 길이 없다. 원가가 적혀 있고 할인가가 적혀 있지만, 할인가가 원가는 아닐까? 정말 할인된 가격이 뭐야?


다른 방도가 없다. 마트를 자주 가서 대략적인 가격을 익혔다. 마트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라서, 마트도 여러 군데 다녔다. 쓰레기 통으로 직행하던 마트 전단지도 이제는 성경처럼 정독한다. 마트마다 보내주는 전단지를 놓고, 비교하다 보면 정말로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는 물품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생필품의 시세와 식자재의 시세를 어느 정도 익혔다. 시장조사를 이렇게 할 줄이야. 엄마가 마트 전단지를 왜 그렇게 챙겼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엄마는 귀한 아들이 이렇게 살고 있는 거 알면 슬퍼하겠지만. 엄마 난 재미있어요. 보물찾기 하는 것 같거든요.


이제는 나름 전업주부로 2년 차라서, 수많은 장보기 경험이 나를 단련시켰다. 마트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마트를 오간 시간만큼이나 시세를 익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제철 음식이라 할까? 계절별로 저렴한 가격의 물품이 뭔지 알게 되었다. 후훗! 이제 할인이라고 사지 않는다. 필요한 것을 사는 게 정말 할인이라 생각한다. 유혹에 빠져서, 필요하지 않은 걸 사고, 미리 사고, 마지막일 것 같아서 사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합리적인 소비는 내가 필요한 걸 저렴한 가격에 사면되었다. 경제적인 소비는 할인에 속지 않으면 되었다.


오늘도 MS마트 어플을 켠다. 유혹에 홀리지 않겠다는 냉정한 눈 빛이 반짝거린다. 어지럽게 반짝이는 가격표에 속지 않는다. 옥석을 가리듯! 정말로 할인된 녀석을 고른다. 먹고 싶은 걸 찾는다. 그렇지, 오늘은 이 놈이다! 팽이버섯. 음, 얘도 나쁘지 않네. 두부. 오!! 계란 지금 사야겠어!! 요즘 계란 한 판에 만원 가까이하는데, 오늘은 6990원이다. 계란~~ Flex~!! 괜스레 신난다. 둠칫, 둠칫. 팽이버섯, 두부, 계란 한 판 메모한다. 학창 시절 이렇게 필기했으면, 서... 울대? 갔겠지?! 엄마 미안해.


이 조합으로 오늘은 뭘 만들까 고민한다. 악상을 떠올리듯. 요상(?)을 생각한다. 요상하게 눈을 감고 선택된 식자재를 조합한다. 음표를 조합하는 것처럼. 음악의 음자도 모르지만, 뭐 이런 거 아니겠어. 양파랑, 대파는 있고... 애호박 있나? 냉장고를 뒤적인다. 이건 할인 안 하나. 마트 가 봐야겠어. 애호박을 메모한다. 된장찌개랑 계란말이로 저녁 메뉴를 정한다. 굿굿!


띵동. 응?!



달갈뷔???!!!! 할인!!! 띠용!!

오늘도 나는 할인과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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