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아빠 Mar 16. 2023

할말하않


위잉 위잉


무슨 소리지? 믹서기 소리에 눈이 떠졌다. 아내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보, 뭐 만들어요? 아내가 호두죽을 만든다고 했다. 아들도 믹서기 소리에 일어난 것 같다. 아들이 방문을 열고 뛰어나온다. 나도 어린 시절 그랬을까? 눈 뜨자마자, 아빠 놀아주세요. 아들에게 책 몇 권을 읽어주고 등교준비를 했다.


“식사하러 오세요~”


고소한 호두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호두죽 색깔이 고와서 입에 침이 고였다. 어느 그릇에 호두죽이 더 많이 담겨있나 눈대중으로 확인하고, 양이 많아 보이는 그릇이 놓여있는 자리에 앉았다. 아들도 내 옆에 앉았다.


숟가락으로 한 술 뜨는데, 호두의 고소함이 배가 된다. 걸쭉하게 늘어지며 밥알이 알알이 흘러내린다. 아내가 죽을 잘한 것 같다. 맛있겠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한 입 먹었다. 호두를 갈았지만, 약간의 깔깔함이 느껴졌고, 견과류 특유의 기름맛이라고 해야 할까? 몇 숟가락 더 먹었다. 호두 기름맛 때문인지 느끼함이 올라왔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기대한 것과는 달랐다. 낯설었다. 호두죽이 원래 이런 건가?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에 속은 느낌이다. 섣부르게, 많이 담겨 있는 죽을 골라서, 큰 일이다. 사발에 반쯤 담겨 있는데, 이걸 어떻게 다 먹을까. 준비한다고 고생한 아내를 생각해서라도 먹어야 할 텐데… 아들 앞에서 편식을 할 수도 없고… 사면초가다. 내 상황이 이런데 아들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아니다 다를까, 아들은 호두죽 냄새가 이상하다고 호들갑이다. 호두향이 낯설었던 것 같다. 아내가 그래도 한 번은 먹어보라고 권했다. 아들이 한 숟가락 떠먹는데 죽상이다. 아내가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서, 어색할 수 있다며 몇 번 먹으면 맛을 알게 될 거라고 설득했다. 아니면, 무생채나 마늘장아찌를 곁들여서 먹으라고 알려주었다. 아들이 아내의 말을 따라서 무생채와 같이 먹으니까 한결 먹기 편했는지 몇 숟가락 더 떠먹었다. 느릿느릿 숟가락 속도가 맛을 보여주는 것이지 않나. 젓가락으로 죽을 휘저으며 장난질이다.


“아들 그냥 밥 줄까?”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내가 말했다. 사실, 나도 그냥 밥을 먹고 싶었다. 여보, 미안해. 더 못 먹겠어.


“아니야, 밥 없어.”


아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네!!”


막다른 길을 만난 느낌, 나는 힘차게 답했고, 이제 별 수 없구나. 아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먹어야 한다. 아들과 나는 각자 살 길을 찾아야 했다. 나는 김 뚜껑을 열었다. 모든 걸 맛있게 만드는 마법의 김가루를 호두죽에 뿌려 먹었다.  느끼함이야 사라져라! 체념한 아들도 자기 살 길을 찾듯이, 마늘장아찌와 먹기 시작했다.


“아빠, 마늘장아찌랑 먹어 봐, 맛이 사라져!”


느끼함을 없애려 아들과 나는 발버둥 쳤다. 후추도 뿌려보고, 무생채를 잔뜩 넣어봐도 이 느끼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어찌어찌, 반 정도 먹었다. 아들이 숟가락질을 하는 것 같은데, 어찌 된 영문인지 줄어들지 않았다. 너무 긴 시간 식사를 해서, 호두죽이 불은 건가. 등교 버스 시간은 다가오고, 빈속에 보낼 수도 없고 어쩌나.


“어우, 호두죽이 포만감이 있네, 벌써 배불러.”


반쯤 먹었을 때, 백기를 들고 싶었다. 아내 눈치를 살폈다. 죽을 남길 수도 없고, 못 먹겠다고 말하기도 미안했다. 아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서,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장난을 쳤다. 다행이다. 드디어 아내가 다 먹고 일어났다. 아내가 방에 들어가서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기회가 왔다. 그렇다고 아들에게 맛없으면 그만 먹으라는 마음을 표할 수 없으니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다.


“진아 다 먹었어? 먹을 만큼만 먹어.”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만 먹겠다고 자리에서 냉큼 일어났다. 식탁 위에 있는 포켓몬빵을 가리키며, ‘이거 먹어도 돼요?’ 입만 벙긋벙긋. 아들은 엄마가 눈치를 챌까 조심했다. ‘그래, 얼른 먹어’ 나도 입만 벙긋벙긋. 안방에 있는 아내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진아, 먹을 만큼 먹었어? 그럼 빵 먹어도 돼.”


신이 난 아들은 초코빵을 얼른 입으로 집어넣었다. 호두죽의 느끼함에서 벗어난다는 기쁨이 넘쳤다. 아들이 아빠도 같이 먹자고 했다. 아들과 눈웃음을 주고받으며 할말하않, 전우애를 나누었다. 엄마를 생각해서 느끼함과 싸웠고 이제 승리의 기쁨을 누린다. 호두죽의 느끼함에서 벗어나, 초코크림의 달콤함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었다. 포켓몬 빵이 원래 이렇게 맛있었나?


여보, 미안해요.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의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