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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아빠 Mar 21. 2023

기쁨의 하이파이브!

육아하며 배우다.

주말에 아들과 장난감 도서관에 갔다. 평소에 이곳에 가면, 아들이 블록 만들기를 즐겨했다. 그동안 원 없이 해서일까. 블록 조립을 몇 개 하다가 말고, 다른 놀이 하겠다며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더니, 보드 게임이 눈에 들어왔나 보다. 내 손을 끌고 보드게임 코너로 갔다. 


보드 게임은 어린아이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아들이 까치발로 서서, 이건 뭐고 저건 뭐냐고 물었다. 아들이 아직 글씨를 읽을 줄 몰라서, 보드게임 상자 표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며 재미있어 보이는 걸 골랐다. 텀블링 폴링 몽키, 룰렛 해적, 비교적 단순한 게임을 몇 가지 즐겼다. 초등학생 즈음 되니까, 보드게임을 즐길 줄 알게 된 듯하다. 내가 체스와 장기, 부루마불을 좋아하는데, 아들과 같이 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아들, 언제 이렇게 컸니.


“아빠, 이 자동차 그림 그려진 건 뭐예요?”


아들이 ‘러시아워 주니어’ 보드 게임을 골랐다. 이 게임은 아이스크림 자동차를 가로막고 있는 자동차들을 움직여서 탈출하는 게임이다. 쉬움, 중간, 어려움, 세 단계의 난이도로 나뉘어 있으며, 총 30단계까지 있다. 아들에게 대략적인 방법을 설명해 주고, 1단계 쉬움부터 시작했다. 아들이 1단계부터 10단계까지는 혼자서 잘 풀어 나갔다. 그러나 11단계부터 중간 난이도가 되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아,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파란색 자동차를 먼저 뒤로 움직여야지’


손이 오르락내리락. 입이 간질간질. 답을 말하지 않으려 버텼다. 여기서, 내가 아들에게 답을 알려주면, 그다음부터는 아들의 게임이 아니라, 내 게임이 되고 말 테다. 아들이 막혀 있는 길을 탈출하는 게임을 헤쳐나가는 것이라면, 그것을 지켜보는 아빠는, 간질거리는 입을 꼭 참아야 하는 게임이었다. 쉽지 않구나. 애가 탄다. 


그래, 항상 아빠는 너를 보며 애가 탈 때가 많았구나.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참으며 기다려주지 못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옷 입는 것도, 기다려주지 못하고 그냥 입혀 버릴 때가 있었다. 외출을 할 때, 현관문 앞에서 신발을 뭐 신을까 고민하는 아들에게 그냥 아무거나 신으라고 재촉할 때도 있었다. 내가 답답하다는 이유로, 아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해버렸다. 아들이 그렇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겼던 것은 아닐까? 아들을 믿어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스스로 할 수 있다.


‘아! 저렇게 하면 안 될 텐데… 아니?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내 생각에는 파란색 차를 두 칸 뒤로 먼저 움직이고 빨간색 차를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길이 열릴 것 같았는데, 아들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길을 만들어서 탈출에 성공했다. 의외였다. 그래, 내 생각이 정답은 아니다. 아들에게 내 방법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방법일 뿐이다. 정답은 다양하다. 아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으면 된다.


평소에, 아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이 많은 아빠다. 아들에게 힘든 길 말고 쉬운 길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들이 시행착오 겪지 않길 바랐다. 이제 너는 쉬운 길, 편한 길 가라고 해주고 싶었다. 애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보니, 아니었다. 정말 아들을 생각한다면, 기다려주는 것이 맞았다. 아들이 인생을 살아가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그 과정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가. 


“아빠, 이번 단계는 너무 어려워요.”


어떻게 말할까? 답을 알려주면, 아들이 나를 의지하게 될 게 뻔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아빠를 찾을 것이다. 게임의 주도권은 내게로 넘어오고, 아들의 게임이 아니라, 내 게임이 될 수 있었다. 도움을 주되, 포기하지 않을 정도의 힌트를 줘야 할 것 같았다. 


“진아, 아이스크림 차가 딱 한 칸씩만 간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 말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고민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뱉은 말이었다. 아들은 알겠다며, 아이스크림 차를 가로막고 있는 차들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면서 한 칸씩 길을 열어나갔다. 아들에게 할 수 있다는 격려도 섞어주었다. 과연, 아들이 이 단계를 풀어낼 수 있을까? 긴장되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아들은 같은 방법으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런데 아들이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더니,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기 시작했다. 자기 생각에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안 된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던 것 같다. 또, 안 되는 방법을 반복하면서, 왜 안 되는 것인지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흔히들, 말하지 않는가. 실패를 경험해 봐야 성공을 한다고 말이다. 아들이 그 과정을 겪는 듯했다. 만약에, 내가 개입해서 실패의 경험으로 성공을 찾아가는 길을 방해했다면, 아들이 그것을 터득할 경험마저 내가 빼앗게 되는 꼴이었다. 아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인내하며 지켜주어야 했다.


“아빠, 탈출했어!!!! 예~~!!!”


아들과 나, 정말 기뻤다. 아들은 기뻐서 방방 뛰었고, 나는 팔이 절로 하늘을 향하며 만세를 외쳤다. 무엇보다, 아들은 아빠의 큰 도움이 없이, 스스로 해냈다는 사실에 정말 뿌듯해했다. 나는 끝까지 아들을 믿어주며 인내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아들이 인생이라는 게임을 헤쳐나갈 때, 

아들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도록 믿고 기다려주자. 

아들은 할 수 있다. 인내하며 응원해 주자. 

마침내, 아들이 스스로 뭔가를 이루었을 때, 

지금처럼, 기쁨의 하이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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