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며 배우다.
하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들이 우거지상이다.
"아들, 무슨 일 있었어?"
“아빠, 철수(가명)가 다리를 걸어서 내가 탁! 하고 넘어졌어! 그래서 기둥에 머리를 부딪혀서 다쳤어. 그런데 철수는 자기 잘못 아니라고 그냥 가 버렸어. 사과하라고 했는데, 안 했어! 철수 나빠!”
아들에게 자세히 어디가 아프냐 물어보니까, 뒤통수를 가리켰다. 빨갛게 피부가 긁혀 있었고, 혹이 나있었다. 혹이 난 자리에 머리카락을 휘젓자, 따가워했다. 혹시, 어지럽거나 기운이 없었냐고 물어보니까, 괜찮았다고 한다.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들이 평소에 엄살이 심해서, 그러려니 했다.
잠깐 마트에 들러서, 저녁거리를 사도 될 것 같았다. 마트에서 아들은 계속해서 친구가 나빴다는 말을 반복했다. 아무래도 머리를 다친 것보다 마음을 다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서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넘어뜨렸다는 생각 때문에 서운한 마음과 배신감이 든 것 같다.
마트를 나오며, 어떻게 다친 거냐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수업 쉬는 시간이었는데, 선생님께서 잠깐 밖에 나가서 놀아도 된다고 하셨단다. 신이 난 친구들이 서둘러 뛰어 나갔는데, 철수를 뒤따라가던 진이가 철수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고 했다.
아들의 말을 들어보니, 대충 어떻게 다쳤을지 상상이 갔다. 밖에 나가서 놀아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에, 신이 난 아들은 흥분했을 거다. 아들이 평소에 흥분하게 되면 앞뒤 안 보고 내달리는 편이라서, 앞서 가는 철수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을 것 같다. 당연히 넘어질 수밖에. 철수 때문에 다친 것은 아니었다. 혹이 난 것에 감사하고,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아들이 어떻게 다쳤는지 그 과정을 말하다가, 또다시 감정이 밀려왔는지 철수 나쁘다고 씩씩거렸다.
안 되겠다. 사건의 재구성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들에게 뒤따라 오라고 했다. 나는 빠르게 걷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콩. 아들이 내 등에 부딪혔다.
"아들, 이제 알겠어?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넘어지거나 다칠 수 있어. 알겠지? 달리기를 하면서 뒤를 보며 달리는 사람이 있을까? 철수는 진이가 뒤따라 오고 있는지 몰랐을 거야, 일부러 너를 넘어뜨린 건 아니야. 그러니까, 철수가 사과하기는 어렵지.”
“그래도 내가 넘어져 있는데 철수가 괜찮냐고 물어봐야 하는 건 아니에요? 넘어졌다고 웃었단 말이에요!”
아들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고. 아들 정말 서운했구나. 아니면, 마음을 몰라주는 아빠에게 서운한 걸까? 아들을 안아주었다. 좀 진정을 시킨 다음에 말을 이어나가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마냥 위로만 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친구 사이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더 심하게 억울한 일도 겪는다. 그래서 혹이 난 곳에 약을 발라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네가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아. 사실, 선생님께서 교실이랑 복도에서 뛰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 뛰어나간 네 잘못도 있어. 그리고 뛰어나갈 때, 네가 주변을 잘 살폈다면, 넘어지지 않았을 거야. 모든 게 철수 탓은 아니야. 너는 지금 다친 게 아파서 속상하겠지만, 친구가 아직 네 마음을 알아주기는 어려워. 때로는 이런 날도 있어. 그냥 잊고 지나가던가, 내일 가서 다시 친구에게 말해 봐. 잘 생각해 봐.”
“네..” 시무룩한 대답.
아빠가 속상한 마음을 더 이상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 대답했는지, 아니면 아빠 말에 동의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들 편을 들며 철수가 잘못했다고 온갖 나쁜 말을 하며 풀어줄 수 있겠지만, 사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들이 잠깐은 억울한 마음이 풀릴 수 있겠지만, 아들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다. 불편하거나 속상한 감정을 풀기 위해서,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된다는 걸 가르치는 셈이다. 감정에 휩싸이지 않게, 충분히 설명을 해줬다. 속이 상한 아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기분은 편치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아들 몫이다. 스스로 잘 생각하고 이겨내는 수밖에.
좋은 경험을 했다. 사람 사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나는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 또한, 피해를 주지 않은 것 같지만, 누군가 피해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때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넘어가야 한다. 내가 한 번 이해하고 지나가면, 그것이 돌고 돌아 더 좋은 일로 찾아오리라 믿는다.
아들의 마음이 더 단단해지길.
아빠도 너의 마음을 좀 더 잘 헤아릴 줄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 둘 다, 하나씩 배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