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아빠 Mar 12. 2023

뛰어 볼까?

육하아며 배우다.



늦은 밤 스마트폰을 들었다 놨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였다. 이렇게 있느니, 책이나 몇 쪽 읽자 싶어서 일어났다. 아내와 아들이 깰까 봐, 조용히 식탁 조명을 켜고 앉았다. 책을 읽는데, 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부모가 자녀에게 항상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자연스럽게 당신의 자녀도 도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성이 마비되고 감정이 솟구치는 밤이었을까? 뭐, 잘 모르겠지만. 아무 이유 없이 이 말에 홀려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달리기가 하고 싶어졌다. 달리기 하니까, 예전에 봤던 ‘춘천 마라톤’이 생각났다. 마라톤 코스가 우리 집 근처를 지나서 갔기 때문에, 매년 가을에 볼 수 있었다. 그래, 좋아. 지금이 2월이니까, 열심히 준비한다면 가을에는 참가할 수 있을 거야.


사실, 나는 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운동을 하면 숨이 차오르고 온몸이 쑤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운동을 해야지 건강해지는 것은 맞지만, 운동 후에 생기는 통증이 불편했다. 달리기 한 번하면, 다리가 땅기고 무릎이 쑤셔서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건강을 위한 운동인지, 건강을 해치는 운동인지 헷갈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바른 자세로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었다. 아무튼, 운동으로 인한 피로 때문에, 마음 같아서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이제 40대를 앞두고 몸 여기저기서 신호를 보냈다. 손목도 아프고 팔꿈치랑, 무릎도 불편할 때가 있었는데, 의사 말로는 근육량이 적어서 연골을 쓰게 되니까 통증이 있는 거라고 했다. 별수 없이, 운동을 꼭 해야 했다.


처음에는 자전거 타는 것을 즐겼다. 내가 사는 지역은 자전거 도로를 정말 잘 만들어 놨다. 특히, 북한강을 따라가는 길은 정말 예술이다. 하늘은 파랗고 산은 푸르며 강물은 일렁일렁 춤을 추었다. 강물 위로 다리를 만들어 놓은 길을 지나갈 때는, 마치 내가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며 신바람이 났다. 스트레스가 싹 풀렸다. 자전거 타는 맛이 일품이었다.


자전거를 탈 때는 정말 좋았지만,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 준비 과정이 많았다. 자전거를 타겠다는 마음먹기, 베란다에서 자전거 꺼내기, 타이어 공기압 확인, 헬멧 착용, 장갑, 자전거 복장 챙겨 입기, 이렇게 준비를 하고 나가는 데 30분 정도 걸렸다. 어떤 때는 옷을 입다가 안 나간 적도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오늘은 그냥 쉬자. 소파에 누워버렸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무사히 자저거를 타고 오면, 하루가 거의 다 지나간 느낌이었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즐겁지만, 준비 과정도 길고, 돌아와서 정리하는 시간도 길어서 점점 타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빠르게 걷기다. 모자 눌러쓰고 운동화만 신고 나가면 되니까, 준비할 것도 없었다. 걸으려는 마음만 있으면 되었다. 집 앞에 1분 거리에 강변산책로가 있어서, 정말 운동화만 신고 현관문을 열기만 하면 됐다. 근데, 이 마저도 잘하지 않았다. 그 걸으려는 마음을 먹기까지가 너무나 어려웠다. 운동 준비과정이 단순해지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아도 운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몸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것 같으면 좀 걷고 오는 정도였다. 그만큼 운동이랑 친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운동을 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없었던 것 같다.


늦은 밤 이상이 마비되었나? 마라톤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가을 마라톤이 언제쯤 열리나 검색하던 손가락이 민망해서 오그라든다. 발이나 닦고 잠이나 자자.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눈을 감고서 혼자 피식거렸다. 어휴, 책이나 더 읽을걸, 뭐 하러 그걸 찾아봤지?


“여보, 어제 늦게 잤어?”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아내가 흔들어 깨웠다. 꿈속에서 마라톤을 한 건지, 겨우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아들 등교를 도왔다. 아들이 학교 버스를 타고나면, 아내와 아침 산책을 했다. 비몽사몽 걸으면서, 어제 왜 늦게 잤는지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나는 늦게 잤던 이유를 말한 것뿐이었는데, 아내는 아니었나 보다. 마라톤?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운동화가 필요하겠으니, 사라는 것 아닌가? 아.. 아니. 이게 아닌데? 진짜 사준다고? 아니야 괜찮아. 생활비 아껴야지. 얼버무렸다. 하지만 아내는 비상금으로 사면 돼. 도망치려는 나를 붙잡아 세웠다. 혹시 마라톤이 무리될 것 같으면, 짧은 코스도 있으니까 나가보길 권했다. 뭐야? 갑자기? 휩쓸리면 안 될 것 같았다. 마라톤 대회가 주일이라서, 그날은 교회 가니까 어려울 것 같다고 방어했다. 하지만 아내는 월드 비전에서 주최하는 마라톤이 있는데, 그 행사는 토요일에 한다나? 끙. 막다른 길을 만났다. 얼른 대화주제를 돌려서 빠져나가야 할 것 같았다.


“우와, 여보 여기 이런 게 있었네?! 예쁘다. 그지”


좋아, 자연스러웠어.


저녁에 아들 실내화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  마트 입구에 운동화 매장이 있었는데, 마침 전 날밤에 뭐에 홀린 듯이 알아봤던 조깅화가 떡 하니 있는 게 아닌가? 가격도 인터넷 보다 저렴했다. 신어나 볼까? 신발을 신는 순간, 신데렐라가 됐다. 내 마음은 황영조 선수로 변했다. 그래, 마라톤 할 수 있지!!! 지금 당장이라도 42.195km를 완주할 기세였다.


“마음에 들어? 사!”


그래, 결심했어!! 비장한 마음으로 신발을 계산했다. 신데렐라가 무도회장을 빠져나오며 현실로 돌아오게 된 것처럼, 나는 신발 매장을 빠져나오고 마트를 나오면서 점점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 있는 종이가방 속 신발 박스를 보며, 이게 지금 무슨 일인가. 어안이 벙벙했다. 실제로는 1km 뛰는 것도 버거운 사람이 정말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진아, 아빠 마라톤한데!! 대단하지?”

”우와~아빠 나도 같이 할레요! 우리 같이 뛰자, 아빠!“


아내가 쐐기를 박았다. 치사하다. 아들에게 폭로하다니. 아들 귀에 들어갔으니, 이제 되돌릴 수 없다. 뛰어야 한다.


그래! 아들아 같이 뛰자, 그리고 함께 도전하는 삶을 살자.

아빠는 도전하는 삶과 거리가 멀었거든. 그때, 해볼걸! 후회되는 게 많아.

너는 안 그랬으면 좋겠어. 아빠처럼, 후회하지 말고, 뭐든 해봐! 아빠도 뛸게!

아빠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 무슨 일 있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