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the capitalist
처음 자산운용사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인가? 좋은 기업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시절, 대학교 재무 교수님들께 질문을 던졌었다.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이냐. 교수님은 좋은 기업을 판별하는 기준이 있으시냐.
총 아홉 분에게 메일을 드렸었는데, 그중 한 분이 본인의 연구실로 불러 "Saving capitalism from the capitalist"라는 책을 추천해 주셨다. 질문에 대한 답은 주시지 않고, 이 책을 읽어보라시면서 책을 주셨다.
주된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자본주의의 왜곡: 시장 경제가 자본가들의 행동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 자본가들은 종종 규모의 경제와 정보의 비대칭성을 악용하여 경제적 권력을 남용하고 시장 경제의 공정한 운영을 방해할 수 있음을 지적.
자유 시장 경제의 중요성: 자유 시장 경제의 원칙과 가치를 강조하며, 이를 통해 효율성과 혁신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
정부의 역할: 규제와 정부의 역할을 재고하고, 자본가들의 남용을 억제하고 시장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 또한, 정부는 교육, 인프라, 경제 안전망과 같은 인프라적 역할을 수행하여 시장 경제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
제도 개선: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변경을 제안. 이러한 변경은 균형 있는 성장을 촉진하고 경제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으며, 자본가들의 권력을 제한하고 경제의 모든 이해 관계자를 보호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
내가 생각하는 스타트업 투자란, 돈이 될 것 같은 것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투자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투자는 자본의 논리로만 이뤄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벤처투자촉진법'이라는 것을 신설해 제도를 통해 균형 있는 성장을 촉진하고 경제의 안정성을 높이고자 했다. 도전적인 시도를 하는 기업에게 자본의 논리를 벗어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과연 이 법이 의도대로 활용되고 있을까? 아니다. 여전히 벤처가 묻은 '돈이 될 것 같은' 아이템에 대한 투자가 주를 이루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정부다. 정부는 모태펀드를 통해 자금을 출자한 투자사들의 실적을 평가할 때 정성적인 부분은 평가하지 않는다. 투자 수익률을 기준으로 줄 세우고, 높은 수익률을 낸 투자사에 많은 혜택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가들은 달랐는가? 아니다. 어떤 회사에서는 외국에서 성공한 사례들을 나열해 두고, 외국의 사례를 국내로 벤치마크 해 오는 팀이면 우선적으로 투자를 검토하겠다고 공표한 곳도 있었다. 혁신과 도전보단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검증된 방법"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국가 펀드인 테마섹은 우리나라의 모태펀드와 다르게 단순히 수익률로 평가하지 않는다. 얼마나 도전적인 아이템에 투자를 했는지, 시장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 정성적인 요소를 고려해 평가한다. 나는 이들이 맞고, 우리는 틀리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생각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지만 글로 풀어내길 망설였다. 자본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한, 부트스트래핑의 입장에서 이런 글을 쓰는 게 패자의 변명처럼 들릴 것을 심히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상관없다. 곧 내가 옳고 그들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생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