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들어맞는 자리에 앉아있는 금기된 문장부호들. feat. 문장부호
버터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다. 미국에서 오래 사신 시이모님이 집에 오셨을 때 버터라고 이름을 알려드렸더니 처음엔 계속 못 알아들으셨다. 그래서 “빵에 발라먹는 버터요. 털 색깔이 먹는 버터랑 비슷해서”라고 부연 설명을 하자 “아! 버러”라고 자신의 단어로 정정을 하시고는 강아지를 향해 계속 버러!라고 부르셨다. 물론, 우리 버터는 자기 이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한 번도 그 호칭에 반응하지 않았다. 이모님도 결국엔 ‘버터’로 정정해 부르셨고 애교 많은 버터는 이모님 옆에 찰싹 붙어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한편 친구 남편은 구수하게 “빠다”라고 부른다. 둘이 대면한 적은 없으나 가끔 빠다는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어온다. 분명 ‘빠다’라고 불러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 한 살이 되어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아듣는 버터는 버터라고 부르는 소리에만 딴짓을 하다가도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돌린다.
버터인 것이다. 이 버터.
3.2kg의 따님은 우리 집에 온 지 8개월이 되었다. 강아지를 키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돈된 것을 좋아하는 나였다. 그래서 집에 초대했던 많은 사람들로부터는 마치 모델하우스 같다는 칭찬인지,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는 것인지 모를 말을 많이 듣고는 했다. 그렇기에 버터를 데려온 것은 우리 가정에 르네상스와도 같은 가정문화의 혁명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아지를 입양했다고 소문을 내니 첫마디는 대부분 “그리 깔끔한 사람이 어떻게?”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아무튼 그렇게 되었어. 너무 예쁘고 잘했다고 생각해라고 답을 한다.
사실 강아지를 데려오기 1년 전부터 강아지에게 계속 관심이 갔었다. 인스타그램에서 강아지 영상을 찾아보고 티브이에서도 강아지가 나오면 채널고정이었다. 귀엽기도 하고 버려진 강아지에 대한 사연을 보거나, 불법 번식소 문제가 대두되면 한 마리라도 구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럼에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이유는 남편의 조언 때문이었다. 생명체를 키우는 건 그리 간단하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중대한 문제다. 일단 저지르고 책임지는 편인 나와는 반대로 남편은 사전에 지나치게 심사숙고하는 편이다. 그러다 결국 늘 포기하는 성향이 강한 남편이기에 일을 저지르는 것은 항상 내 쪽인데 이번 경우는 사실 남편의 의견이 옳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나도 계속 망설였던 것이다. 그래서 자주 강아지 분양소에 가서 안아보고만 오는 것으로 만족했었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을 맞았다. 외향 상으로는. 그 당시 나의 마음 상태는 그리 건강하지 않았다. 중년 여성의 독감이라는 갱년기 증상을 호되게 겪고 있었다. 몸과 마음 모두 너덜너덜한 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30년 가까운 결혼 생활 중 크게 상처받았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모두 밀려와 잊고 있다고 생각했던 기억조차 모두 어제의 일처럼 생생히 떠오르는 나의 기억력에 새삼 놀라는 나날들이었다. 표현하지 않고, 뱉어 낼 줄 몰랐던 상처들이 마음속에서 썩고 썩어 뚜껑 밖으로 악취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형상이었다. 원망과 미움과 분노에 더해 바보같이 아무 말도 못 했던 자신을 몰아세우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들은 독립하고 남편은 아침에 나가 늦게 들어오는 매일의 일상이 혼자 있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넘쳐나는 시간적 여유가 점점 더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던 것이다. 분명 행복한 순간들이 더 많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억울하고 서러웠던 일들만이 한 편의 끊이지 않는 영화처럼 필름이 24시간 돌아갔다.
그에 더해 스스로가 그렇게 불쌍하고 안쓰러울 수가 없었다. 가히 자기 연민에도 푹 빠져 있었던 것이다. 원망과 분노에 화가 치밀어 속으로 험담을 거듭하고,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실망하고, 지금도 이렇게 혼자 화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에 낙담하고.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마도 속마음뿐만 아니라 얼굴에도 고스란히 마음상태가 다 드러났을 것이다.
그날 아침엔, 나도 모르게 “오늘, 강아지를 데려와야겠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남편은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말없이 차키를 들고 일어섰다. 그렇게 데려오게 된 강아지가 버터이다. 사전지식과 준비 없이 충동적이라면 충동적으로 데려오게 된 것이다. 첫날부터 우리 집은 전쟁 통이 되었다. 이름을 짓고 강아지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물품을 서둘러 사고 바닥에 배변패드를 여기저기 깔아놓으면 다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영상에서 본 것처럼 예쁘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애교만 부릴 줄 알았던 것이다. 대·소변은 배변 패드만 피해서 싸놓고, 바닥에 놓인 모든 물건에 관심을 보이며 핥고 긁고, 저녁엔 한두 번씩 거실 가장자리를 트랙 돌듯이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전속력으로 뱅글뱅글 돌고..... 밤과 낮 구분 없이 낑낑거리며 사람을 깨워 대는 통에 잠 못 자는 날도 태반이었다. 그래! 버터 덕분에 정말 과거를 생각할 경황이 없어졌네. 감사하네? 정말 과거의 회상으로 나를 괴롭힐 시간이 없었다. 밤에 못 자 낮엔 늘 비몽사몽 피곤하고, 뒤 따라다니며 치우고 닦고, 몸은 여기저기 쑤시고. 지금 생각해도 초기의 그 시간들은 정말 시련의 연속이었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지금은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다. 우선, 강아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대·소변을 잘 가리게 되니 번거로운 수고가 많이 줄었다. 트랙질주도 조금은 약해진 듯하다. 애교와 꼬리콥터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솔직히 남편에게도 말 못 했지만 잘못 데려 왔나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그러다가도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지긋이 바라봐 줄 때면 그런 몹쓸 생각이 눈 녹듯 사라진다.
강아지를 키우게 된 이후로 다른 견주들의 삶을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특히, 한 마리도 아닌 두세 마리씩 키우시는 분들. 또한, 산책 나온 다른 집 강아지를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경험해 본 사람에게만 열리는 세상이다.
명실공히 이제 난 아들과 늦둥이 딸을 둔 엄마가 되었다. 아들에 대한 책임은 많은 부분 수료했으니 남편과 함께 늦둥이 딸을 잘 보살피는 데 정성을 다해야겠다. 다음 주에 있을 버터의 첫 돌에는 간식이라도 듬뿍 줘야겠다. 축하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