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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Apr 21. 2022

하필 같은 음식을 동시에 이웃에 날랐다니!

미천한 음식 솜씨 들통나게 된 사연

'지이이잉~'

주말마다 농막에 가는 언니에게서 단체 깨톡이 왔다

'딸기 3kg에 8천 원. 쨈이나 주스용'

주변 밭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분이 딸기를 염가에 처분하는 듯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상기온으로 인해 딸기 수확량이 점점 줄어드니, 딸기를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두라는 글을 이미 접한 터였다. 나는 주저 없이 주문을 했다. 딸기로 무엇을 할지는 이따 생각해보기로 하고.


초등학생 시절, 매일 놀러 갔던 친구의 집은 딸기 농사를 다. 그래서 딸기철이 끝날 무렵이면 몇 날 며칠 동안 부엌에서 딸기잼 만드는 냄새가 진동했다. 친구는 나와 같이 놀다가도 이따금 딸기가 삶기는 솥을 살피곤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딸기잼을 나 식빵에 발라 역시 종종 먹어보곤 했다.  하지만 친구네 잼은 색깔도 팥죽 마냥 거무죽죽한 데다가, 시판용 딸기잼보다 맛도 덜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는 그 친구의 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슈퍼에 파는 딸기잼은 색깔도 붉고 맛도 더 좋은데, 왜 굳이 맛도, 색깔도 별로인 딸기잼을 애써 만들어 먹는지...

어른이 된 지금은 애써 딸기잼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알지만, 그 추억의 여파 딸기잼을 만드는 건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잘해본들 딸기 농사를 던 분이 만든 딸기잼보다 더 맛이 나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많은 딸기로 딸기청을 만들기로 했다. 딸기청 만드는 레시피를 여러 개 찾아본 후, 레몬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아뿔싸! 나눠 담을 유리병이 부족했다. 부랴부랴 집에 있는 유리병을 죄다 모아 열탕 소독을 하며 딸기를 꺼냈다.

딸기는 예상보다 더 자잘했다. 같은 무게라도 딸기가 잘면 그만큼 다듬어야 할 딸기 꼭지가 많은 셈이다. 꼭지를 하나하나 떼내고 세척을 하고, 동량보다 좀 더 많이 설탕을 넣었다. 과육을 씹는 맛도 있어야 하니 딸기를 완전히 으깨지는 말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완성한 딸기청.

반나절 정도 숙성을 해야 하지만, 숙성이야 이웃집에서 해도 되니 서둘러 집을 나섰다. 각 집 문고리에 살포시 딸기청을 걸어두고, 단톡방에다가 딸기청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하지만 이게 왠 걸! 그때 딸기를 같이 샀던 이웃 언니도 주변에 나눠 주려고 딸기청을 담았다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손맛 대결이 된 듯한 모양새에 이웃 언니도 나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딸기마저 같은 밭에서 났으니, 이건 빼도 박도 못하게 손맛의 차이가 맛의 차이가 되는 셈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걱정되는 건, 이 딸기청으로 인해 이때껏 내가 만든 과일청들도 죄다 그저 그런 솜씨였다는 걸 들켜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평소 요리에 자신이 있었다면 이만한 일에 웃고 넘길텐데, 없는 솜씨에 만들다보니 더러 흠이 잡힐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내가 딸기를 으깨어 만든 것과 달리 이웃 언니가 담은 청은 딸기를 썰기만 했을 뿐인데도 딸기과즙이 잘 느껴졌다. 심지어 맛도 더 좋다.

 새삼 친구 엄마가 담은 딸기잼과 시판 딸기잼을 비교하며 먹은 지난날이 떠올랐다. 세상사 인과응보라더니,  굳이 집에서 맛없게 만들어 먹냐고 함부로 판단했던 벌을 지금 받는 듯하다. 그 친구 엄마도 딸기 한 알 한 알 정성스레 꼭지 다 떼내고, 더 오랜 시간을 투자해 만드신 건데... 게다가 팔리지 않은 딸기를 다 잼으로 만드셨을 테니, 잼을 만들어 먹는 그 속도 참 편치 않으셨을 것이다.  그때 내가 예쁜 마음으로  딸기잼을 먹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많은 것 중에 과일청으로 음식 솜씨를 비교당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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