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가장 즐거웠던 그 해 여름
이전 어느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듯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다. 남편은 나에게 '촌'에서 자랐다며 은근히 깔보지만, 나는 그 추억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아이도 어릴 때는 시골에서 키웠으면 하는 로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로망을 해결해 주는 게 <캠핑>이었다. 하지만 매번 캠핑을 가더라도 온전히 캠핑장에 있는 날은 하루뿐이고, 입실/퇴실 시간에 쫓기듯 나가야 하다 보니, 시골 생활이라고 하기엔 감질나던 차였다.
나는 아이들의 방학을 맞아 '캠핑장에서 일주일 살기'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로 했다. 적어도 그 정도는 살아봐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아무 계획 없이 배만 부르면 물에 언제든 뛰어들 수 있는 생활이 될 테니까!
그렇게 나는 2020년 여름과 2021년 여름을 캠핑장에서 보냈다. 내가 선택한 캠핑장은 울산 언양에 위치한 등억캠핑장이었고, 다행히 평일이라 자리는 있었지만, 워낙 인기가 높은 탓에 며칠 뒤에 사이트를 옮겨야 하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그건 2021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동안 캠핑을 하려고 하니 가장 걱정되는 건 매 끼니와 빨래였다. 게다가 캠핑장에는 냉장고도 없었다. 다만, 전기 아이스박스만 있을 뿐이었다. 급한 대로 우선 3일 치 정도의 냉장보관 식품을 챙기고, 라면, 쌀, 김 등 실온 보관이 가능한 제품은 가득 챙겼다. 일주일 내내 휴가를 쓸 수 없었던 남편이 이후의 음식은 조달을 해주기로 했고, 빨래도 그때그때마다 집으로 가져가 세탁 후 다시 가져오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얼른 물에서 놀고 싶어 했다. 남편 없이 혼자 캠핑장에서 8살, 6살 두 아들을 상대하려니 더운 날씨에 아침부터 힘이 든다. 급하게 아침을 먹이고, 소화되기를 기다린 뒤 아이들과 계곡으로 간다. 정신없이 물놀이를 하고 있으니, 어느새 또 점심이다. 그러면 나는, 아이들만 물에 두기 위험하니 아이들을 모두 계곡에서 나오게 하고는 텐트로 가서 음식을 준비한다. 그동안에도 아이들은 얼른 밥 먹고 놀고 싶다고 성화이다. 시간 개념 없이 그냥 배만 부르면 물에 들어가서 마냥 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이 또 타이머가 돌아가는 기분이다.
물놀이를 하다가 물고기를 보면 물고기를 잡고, 계곡에서 물살이 조금 빠르게 흐르는 구간은 아이들이 '슬라이드'라며 튜브를 타고 내려오며 신나 했다. 이 맛에 캠핑장에서 혼자 힘들어도 꼭 아이들과 오래 캠핑장에 있고 싶었나 보다.
밤이 되면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왔다. 그때가 되면 나도 한숨 돌릴 수 있게 된다. 물론 7일 중 1~2은 남편이 회사를 빠지기도 했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바로 캠핑장에서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남편이 가장 많이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캠핑장에서 술 한 잔 하는 게 낙인 남편에게, 퇴근하고 캠핑장으로 간다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었던 듯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아침이 밝아오면 텐트를 다른 사이트로 옮겨야 했던 어느 날, 기상청에서는 밤새 태풍이 온다며 계속 시끄러웠다. 그렇거나 말거나, 이미 캠핑장에 자리를 폈던 우리는 계속 캠핑을 이어나갔고, 다른 사이트의 텐트들은 하나둘씩 캠핑장을 벗어났다. 당시 뉴스에서 태풍이 무시무시하다고 했기 때문에 고민은 살짝 되었으나, 우리 말고도 가지 않은 텐트가 몇 더 있었기 때문에 아마 서로가 서로를 의지한 채 신경은 쓰였어도 우리는 텐트 안에서 아이들을 눕히고, 잠이 들었다.
나루야, 일어나 봐, 이것 좀 잡고 있어! 우리 텐트 안에 물 다 들어왔다"
새벽 4시경 남편이 급하게 나를 깨웠다.
자다 보니까 내 얼굴이 촉촉해지는 거야, 그래서 눈을 떴더니 밤하늘이 보여! 분명히 텐트 안에서 잤는데, 밤하늘이 보여서 정신 차려 보니까 바람 때문에 텐트 스커트가 날려서 내 상반신이 텐트 밖으로 나와 있더라."
사이트를 좀 더 넓고 편하게 쓰려고 타프 스크린을 쳤더니, 태풍은 강제로 남편을 텐트 밖으로 꺼내버렸다. 그런데 그게 어떤 위험 신호였던 걸까? 텐트 안에서(?) 곤히 자던 남편의 뺨에 비바람이 강타하는 바람에 깼던 남편이 본 건, 이후에 강풍으로 텐트 한쪽 모서리가 쓰러지려던 찰나였던 것이다. 아이들도 비바람에 노출되기 전에 얼른 복구가 필요하다 보니 급하게 나를 깨웠는데 그와 동시에 근처 다른 사이트에서 텐트 고정핀(팩)을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가 캠핑장을 쨍쨍 울렸다. 결국 나와 남편은 태풍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텐트를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 일은 아침까지 몇 번 더 있었다. 그리고 종래, 이 허약한 타프스크린에 일가족을 맡길 수 없음을 깨닫고 캠핑을 접어야 했다. 물론 태풍이 가고 나서 다시 캠핑장으로 오긴 했으나, 우리의 캠핑은 2박 3일 내지는 3박 4일의 짧은 캠핑을 연달아 2번 한 것과 진배없었다.
작년의 그 캠핑이 아쉬웠던 우리는 2021년 다시 캠핑장에서 일주일 살기에 도전했다. 그 사이, 우리는 카라반을 구매했고 이제는 태풍이 오더라도 작년처럼 태풍을 피해 모든 짐을 철수했다가, 다시 설치해야 하는 불상사는 생길 리 없었다. 역시, 캠핑은 장비빨이라고 했던가?
지난해보다 생활하는 건 훨씬 편해졌지만, 여전히 빨래의 문제 등의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카라반에 에어컨도 되다 보니, 생활환경은 더욱 쾌적했다. 다만, 이때에도 며칠 뒤 사이트는 옮겨야 했다. 아이들은 캠핑장에 오래 있을 수 있다는 게 그저 즐거운 듯했다.
아이들이 물고기를 잡으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물고기들이 아이들 손에 쉽게 잡힐 리 만무했다. 근처의 다른 사이트의 아저씨가 물고기를 많이 잡았는데, 퇴실하기 전에 잡았던 물고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주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잡은 물고기가 아니어도 매우 신나 했다.
아이들은 계곡에서 물살이 빠른 곳에 튜브를 타고 수십, 수백 번을 미끄러져 내려왔다. 이른바 '슬라이드'라 칭하는 곳이었다. 저 거북이 튜브는 이 캠핑 때 생명력을 다하였다.
이 캠핑에서도 비는 내렸다. 어쩜 하고 많은 날짜 중, 내가 캠핑장에서 일주일 살기로 하는 때에는 꼭 중간에 비가 오는 것일까? 하지만 이번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캠핑장에 있을 수 있었다.
어느 글에서 보았던, 우리 집에 사슴벌레를 들였던 것도 이 캠핑 때였다.
캠핑을 시작할 때는 식구가 늘 거라고 미처 예상도 못했었다.
그 이후의 여름에는 나도 직장에 다시 나간 터라, 우리의 <캠핑장에서 일주일 살기> 프로젝트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심지어 남편마저 교대근무로 바뀐 탓에 캠핑 일정 잡기조차 어려워졌다. 하지만 이따금, 아무런 계획 없이, 시간에 쫓김 없이 밥만 먹고 나면 물에 가고, 곤충을 잡으러 가던 그 여유가 그립다. 아이들이 좀 더 커서 그런 캠핑을 즐겼다면 더욱 기억에 남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도 있다.
올해 여름에도 우리 가족은 등억 캠핑장을 찾았다. 아이들은 마치 여기가 자신들의 제2의 구역이라도 되는 듯 속속들이 모르는 게 없다. 심지어 얼마 전에 갔던 워터파크보다, 캠핑장 계곡에서 노는 게 훨씬 재미있단다. 아이들이 언제까지 캠핑을 따라갈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와 학원과 숙제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힐링이 되는 시간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