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20대] 17일차: 날 것으로의 나(5)

by 읽쓰생정



그렇게 다시 차를 타고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부대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기억은 희미한 안개와도 같습니다. 뒷좌석에 앉아 우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고 창 밖만 보는 저의 모습과 휴게소에서 고생했다고 밥을 사주는 조사관의 목소리, 달리는 차 안에서 저도 모르게 잠든 저를 보며 그냥 자게 내버려두라는 조사관의 말. 희미하지만 동시에 진하게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달리는 자동차가 도착한 곳은 모든 일과가 끝나고 저녁식사까지 마친 저의 군부대. 잠시 동안 괴리되어 있던 저의 일상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조사 과정 속에서도 절 끝까지 믿어준 유일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담당한 보직의 장, 상사였습니다.


군부대에 도착해 가장 먼저 본 찾아간 사람은 홀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분이었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새벽부터 깨워갔다며? 소식은 들었다. 개새끼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그분의 욕. 아무 말 없이 담배 한 대를 건네는 그분의 손. 노을을 보며 같은 방향에 서서 담배 하나를 다 피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믿고 있었다"



아무도 쉽사리 제 편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끝까지 믿고 있었던, 저에게 추궁하거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지 않았던, 언제나 깊은 눈으로 가만히 들어주기만 하셨던 그분은 그 말 이후 그것과 관련된 일체의 말을 제게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수사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말 나온 김에 이 분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실, 부대 안이나 밖이나 그분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이유는 대개 "융통성이 없다"였습니다. 유도리가 없다는 그분의 일 스타일은 정도에 맞게, 얕은수를 쓰지 않고 본래 해야 하는 대로 업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직무는 정비병이었고 발전기, 펌프, 엔진 등 복잡한 기계들을 유지 보수하는 일이었습니다. 훈련 중 장비가 잘못되면 밤낮없이 일해야 했는데 제가 발령 난 부대는 이제 곧 해체해야 하는, 연식 있는 장비들이 대부분이라 그 어떤 직무들 보다 더 많은 일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요령을 피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질책하는 상사는 미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했기 때문에 큰 사고 없이 매 훈련을 마칠 수 있었음에도 말이죠.


저는 이상하게 그분이 좋았습니다. 제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좋게 대해주셨거든요. 자신과 닮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체 말씀이 없는 분이지만, 조용히 저에게 고기 하나 더 얹어주시고 담배 한 갑 몰래 챙겨주시고 그랬습니다. 다른 부대원과 부사관들은 너가 일을 많이 하고 군말 없이 잘 해내니 이용하라는 것이라 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같이 일하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공구 사용법과 기계의 작동 원리만 배운 것이 아니라 간간히 들려주는 그분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우직하게, 묵묵하게 살아오신 그분이 살아온 이야기가 듣기 좋았습니다. 그분인들 자신을 욕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까요. 동시에, 그분을 진급시키고 주요 보직에 앉힌 이들은 그런 말들을 듣지 못했을까요. 저는 그분의 정직함과 성실함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따랐던 후임들이 조사에서 자신들의 의심과 '생각' 들을 말하는 동안 그분은 제가 조사실로 갈 때마다 죄지은 것이 없으니 어깨 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황과 상황상 저에 대한 조사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다고, 그날 너가 한 행동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고 의도를 알 수 없는 부대장의 말을 듣고 내려온 날에도 그분은 다 잘될 건데 뭐하러 걱정하냐고 난 너를 끝까지 믿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조사 과정 중 그분이 저에게 질문한 것은 단 한 번이었습니다.


"나에게 거짓말한 것 없지?


"없습니다"


"오케이. 난 끝까지 널 믿는다"


그렇게 유일하게 앞에서 울 수 있는 사람, 제 편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삶에 대한 한 가지 신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후로 제가 보고 느낀 것이 아니라면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자 노력합니다. 남들이 다 욕하더라도, 당해봐야 알겠냐고 말하더라도 직접 당하고 맙니다. 물론, 제 예상이 빗나간 적도 많습니다. 제가 좋은 분이라 생각한 사람도 결국 남들이 말한 것처럼 저에게 해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내 눈앞에 스스로 실재하는 그 사람은 제가 직접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떠도는 말에 의해 가공되고, 직접 경험되지 않고 판단당하는 그 사람. 그 사람이 저였고 저의 유일한 편 또한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당사자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함부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중시하며 내 마음에 자리 잡힌 그 사람을 존중하는 것. 비록 그 정확도가 낮을지라도 나의 마음에 따르는 것. 지금까지 잃지 않고자 노력하는 제 신조 중 하나입니다.






군 생활의 경험을 통해 내가 가장 크게 얻은 깨달음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의미 정도만 알고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겠거니라고 넘겼던 그 짧은 말을 온몸과 가슴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글을 쓰며 눈을 감고, 다시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있는 세상은 매번 새롭고 예상할 수 없음을 더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짧은 인생, 한정된 시간 안에서 후회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떳떳한 삶을 살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어요.


시간은 참 빠릅니다. 너무나 느리게만 느껴졌던 시간들도 돌아보니 까마득히 멀리 있습니다.

시간은 참 강합니다. 눈물밖에 없는 줄 알았던 기억들이 깎고 다듬어져 저에게 울림을 주는 것을 보면요.


괜히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네요.


약간 무거울 수도, 뜬금없을 수도 있는 두서없는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내일은 내일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계속>


* [안녕, 나의 20대] 시리즈는 제삼자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변하며 과거의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제가 실제로 참여한 프로그램 경험을 바탕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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