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20대] 17일차: 날 것으로의 나(4)

by 읽쓰생정

제가 피의자가 된 이유는 저에 대한 모든 '혐의'라는 것에서 어느정도 자유롭게 되었을 때 듣게 되었습니다.


순직 처리가 되기 위해선, 원인을 제공한 가해자가 존재해야 했고 명확한 정황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 아이의 가족들은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모두 피의자로 간주해 수사를 요청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지금도 그 분들에 대해 원망같은 것은 없습니다. 가족들이 느꼈던 상실감과 허무함, 원망과 분노... 그 무엇하나 저는 완전히 공감하지 못할 것임을 압니다. 적어도 가는 길은 명예롭게, 분명히 그릇된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여 억울한 죽음을 만들 수 없으셨던 것이라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사건이 일어난 한창 군부대 내 가혹행위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사회적으로 많이 시끄럽던 시기였는데, 여러가지 상황이 맞물려 헌병들도 최대한 열린 가능성을 두고 넓고 깊게 수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사가 계속되며 반복되는 질문들로 도배된 조사가 진행되며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한 모든 말들과 행동들을 그들의 시나리오 속에 맞춰가며 확인을 위한 질문을 반복적으로 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그 아이와 가깝게 지내며 힘든 부분을 알게 되었고, 그 아이의 약점을 이용해 괴롭힌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부당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한 것이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느낄 수 있는 고통을 받았을 뿐입니다.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그 아이 부모님의 모습과 당시 제가 놓여 있는 방 안의 모습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에, 조사 중간중간 유족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만나기 원치 않으신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그 와중에 저와 함께 피의자 선상에 오른 이들과 참고인으로 한 명씩 불려 간 이들 중 몇명은 추측이라는 허울 좋은 방패 아래에서 모든 상황고려가 배제된 저의 행동 또는 그렇게 했으리라 짐작되는 머릿속의 상상들을 마치 실제로 본 것처럼 말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조사관이 뭐하나 제대로 말하지 않은 제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고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말했는지 조금씩 흘려주었기 때문인데, 조사관의 나름 저를 생각해주었던 이 위로가 오히려 저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저는 제가 하지 않은 일들을 말한 이들을 위로해주어야 하는 위치였습니다. 그들이 실제가 아닌 일을 '그런 것 같아요' 라는 모호한 문장으로 바꾸어 제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분대장으로써 아무것도 들은 것 없다는 듯이 그들을 위로했어야 했습니다. 조사실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뻔히 아는데, 그런 후임들이 밤에 찾아와 힘들다고 서럽게 울면 그 울음에 나에 대한 죄스러움이 들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반, 이렇게까지 속으로만 감내해야 하는 내 처지에 대한 서글픔이 반, 그 아이에 대한 죄스러움이 반의 이유가 되어 저 또한 함께 아무것도 없는 빈 벽을 바라보며 눈물 흘렸습니다.


수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던 어느날 저녁, 청소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후임에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내가 바랬던 분대장의 왕관을 써서 처음에는 너무나 좋았는데, 왕관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목이 꺾일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버티는 것도 힘드니 가끔 내 이야기 들어주라고...






그 아이의 죽음과 저와의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등장했는데, 주요 골자는 그 아이가 떠나가는 당일 날 제가 폭언을 행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적 없다고 말했으나, 조사가 진행되며 그 아이와 그 날 함께 이야기했던 단어 하나하나가 제 모습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죄책감과 삶의 허무함이 너무 커 그 아이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조차 점차 기억나지 않았고 한달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해서 폭언을 했냐는 반복되는 질문 속에 점점 더 확신 없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황상 딱히 다른 증거가 없었던 상황 속에서 수사관들은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통해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 저에게도 좋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그렇게 몇일 뒤 저는 새벽에 군사법원 조사실로 향했습니다.


연예인들이 하는 손가락을 끼워 전기가 통하는 그런 아기자기한 장난감은 없었습니다. 상의 탈의를 하고 많은 패드들이 몸에 붙여졌습니다. 제가 앉아 있는 방 안에는 스피커와 주파수 또는 심박수 따위가 기록되는 움직이는 기록장치가 전부였습니다. 늘어져가는 수사로 저 조차 그 날의 기억이 뿌연 안개 같기만 할 때 스피커에서 질문이 들렸습니다.


“당일 아침, 그 아이에게 욕설을 했습니까?”

“아니오”


그 뒤로 도 비슷한 형식의 질문이 이어졌고 종료되었다는 안내 문구가 나왔습니다.



거짓말여부 검사는 외부 민간 수사관이 진행했는데, 민간 수사관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을 주었습니다. 새벽부터 올라오느라 점심도 먹지 못한 저를 걱정하셨고, 아무것도 먹이지 않은 조사관들을 꾸짖었으며 긴장을 풀어야 한다며 담배도 함께 피워 주셨습니다. 기억이 왜곡되는 것 같다고, 너무 오래된 기억, 그 한마디, 한 글자에 대한 끊임 없는 질문으로 스스로도 무슨 말을 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제 말에 수사관은 조용히 저를 보시더니 너는 지금까지 잘해왔고 자신을 조금 더 믿으라고, 자신이 볼 때는 더 믿어도 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모든 검사가 마치고, 아무 말도 없는 가죽 쇼파에 앉아 책상 가운데 포스트잇 꾸러미를 보고 있을 때 민간 수사관이 들어왔습니다. 결과는 본인에게 공개할 수 없으며, 자신은 차후 절차에 대해서만 안내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거짓말 탐지기 결과가 거짓이 나오면 2차 조사가 들어갑니다. 2차 조사는 진행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조용히 울었고, 수사관은 가볍게 등을 몇번 쓰다듬어 주며 무어라 말하고 나갔습니다. 어떤 말을 제게 해주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투박하지만 따스한 손길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짧지만 너무나 길었던 저에 대한 수사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계속>


* [안녕, 나의 20대] 시리즈는 제삼자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변하며 과거의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제가 실제로 참여한 프로그램 경험을 바탕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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