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8: 이어지는 글에서도 언제든지, 얼마든지 쏟아져 나오는 만큼 "나의 20대에게" 들려주는 말들을 적어보겠습니다. 나의 힘들고 찬란했던 20대,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시절에 들려주고 싶은 말을 모두 해주겠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말하는 기준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스스로에게 멋지고 홀가분한 30대를 선물하겠습니다.
책이나 인터넷, SNS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추억에 잠겨 행복한 20대 시절을 떠올리는 이들이 보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20대라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애틋하고 한 없이 웃음이 지어지는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도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남들에게 보이는 화면이니 만큼 좋았던 추억들 또는 미화되고 조작된 기억들만 올리고 싶은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비겁한 위로를 건네보고는 합니다.
앞선 메일들에서 느끼셨을지 모르지만, 저는 20대의 순간을 다시 겪고 싶지 않습니다. 도전하고 실패하고, 기대하고 실망하며, 행복하다 슬퍼지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의 연속인 저의 청춘을 다시 경험해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한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존재한다는 그런 뻔한 말로 억지스러운 긍정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선생님과의 편지 쓰기도 이제 2일밖에 남지 않았네요.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스스로에게 의미부여를 해보자는 의미로 가볍게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점점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약한 저의 모습과 마주하고 있어요. 아직 매듭짓지 못한 채 널브러져 있는 20대의 제가 보입니다. 선생님께서 오늘 질문에서 말씀해주신 것과 같이 새롭게 30대를 시작하기 위해서, 우선 널브러져 있는 20대의 파편들을 잘 모아 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라고 하셨으니... 딱! 오늘까지만 정리하는 마음으로 응어리가 남았던 20대의 기억들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제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볼게요. 음... 실패라는 말이 주 느낌이 너무 강하긴 하네요. 그냥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들이라 생각해 주세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시험의 낙방입니다. 당시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일부러 집과 제일 먼 학교에 다녔고, 월세를 포함한 생활비 중 대부분을 충당해야 했던 저는 전문직에 대한 욕심이 강했습니다. 잘한다는 학원의 1년 순환 학원비, 교재비, 기타 스터디 모임과 식사에 드는 비용을 딱 맞춰 계산하여 목표 금액을 정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잘 살고 싶다". 간단하지만 강력한 그 동기 하나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험생활에 드는 돈을 조금씩 모았습니다. 3개의 아르바이트와 과외, 연구보조를 하며 돈을 모았는데 학교 생활을 하며 수험생활에 드는 돈을 번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힘들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이 안부인사였어요. 수업을 위해 강의실로 이동하는 중에 갑자기 코피가 날 지경까지 갔는데, 코피를 쏟던 그 달에 목표한 금액을 달성하여 다음 학기부터 휴학을 신청했습니다.
제가 준비한 시험 역시, 다른 모든 시험처럼 예외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예외 케이스란 "정말 열심히 해서 1년 만에 합격" 한 예외 케이스입니다. 후기를 찾아보며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1년 만에 합격할 수 있다를 외쳤고 애초에 배수진을 치기 위해 돈도 딱 1년 수험비용만 모았습니다. 정말 아쉽게 불합격이라는 최종 결과표를 받았지만... 그 당시로 돌아가도 그 이상 노력하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후회 없도록, 아쉽지 않도록, 나도 좀 잘살아 보려고... 정말 노력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기에, 시험을 위한 공부는 날이 갈수록 불안과 초조함으로 다가왔습니다. 학원 모의고사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음에도 계속 불안했고 시험이 떨어지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고, 점점 제가 가지고 있는 감정의 그릇 안의 비율을 넓혀 갔습니다. 딱 1년만 할 생각으로 왔는데 1년은 너무나 길면서도 짧은, 꿈같으면서도 너무나 현실인 시간이었습니다. 유튜브를 보면 저보다 더 힘든 상황 속에서 공부를 하고, 결국 성공한 사람들의 후기가 많이 있으니 동기부여를 위한 공부 과정 서술은 하지 않겠습니다. 결론으로 넘어가자면, 1차는 붙고 2차는 한 과목 때문에 떨어졌습니다. 너무 긴장했는지 2일 동안 진행되는 시험 중 첫날 첫 교시 시험을 망쳤습니다. 그래도 만회해보려 남은 과목들을 최선을 다해 풀었으나, 결과는 그 첫 번째 과목 때문에 떨어졌습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아쉽게 불합격했다면, 왜 한번 더 도전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주실 수도 있는데요, 제가 그냥 겁쟁이라서 그렇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지인들과 부모님까지 모두 한 번 더 해보라고 하셨지만 또 한 번의 실패로 저라는 사람이 평가받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없는 집 형편 더 끌어 쓰기도 싫었고 다시 그 고통의 터널을 겪고 싶지 않았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증명한 것이 조그마한 핸드폰 화면 안에 불합격이라는 세 글자라는 그 기분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물론, 한 번 더 도전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 공부한 것들로 취업도 하고 지금의 저로써 살아가고 있기에 미련이 남아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가끔 그려보기는 합니다. 내가 그때 지금과 같은 편안한 마음으로 한 번 더 도전하였다면, 아니 극도로 불안할지라도 나 자신을 조금 더 믿고 도전하였다면 지금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하고요.
또 다른 사건은 사업실패입니다. 크게 시작했다가 망한 것도 아니고, 시작하려는 찰나에 뒤집힌 것이지만 마음 한편에 쓰라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일전에 뜻 맞는 사람들을 모아 봉사단체를 사업체 파일럿으로 만들었다고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시나요? 그때는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그만두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에서 실시하는 사업 지원 공모에 당선되고 대학 내 산학연계 교수라는 사람과 연결되었습니다. 교수라는 직책을 원래부터 단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근무하시다 취업 및 창업 열풍에 힘입어 대학마다 우후죽순으로 생기던 특성화 부서에 고용되어 교수라는 직책을 단 분이었습니다. 그 교수님과 사업 준비를 함께 하게 되었다고 지역사회 내 지인분들께 공유했을 때, 신기하게도 축하와 함께 그 사람을 너무 믿지 말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습니다. 도시보다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지방 지역사회에서 평판이 상당히 안 좋은 분이었는데, 제 앞에서는 너무 점잖으셨기에 일단 제가 바라 본 모습만을 토대로 믿고 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그분의 진가를 내가 알아봤다는 어린 나이의 패기도 있었고요. 그렇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전문가분들께 자문을 구하고,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토론하며 힘들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시작한 조그만 우리의 사업.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할 것이라 확신한 사업은 시작도 못했습니다. 막상 사업을 시작하려는 순간 예산 때문에 불발되었습니다. 사업 지원 단체는 분명히 지원해주겠다고 한 금액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정권에 따라 뒤죽박죽인 사업 지원이라지만, 아니 예산이 나오지 않은 원인이 학교 때문이었는지, 그 교수 때문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그때 함께 준비하던 이들, 그리고 대표로서 1년 동안 준비했던 제가 흘린 눈물은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무 경험도 없던 학생이었던지라, 급하다면 우선 선지출 하고 향후 정부에서 돈이 들어오면 후 지급해주겠다는 그 교수의 말을 들었습니다. 확실한 정보가 아니었음에도 좋은 경험이라고 포장하는 그 말에 속아 제가 알고 있는 지역사회 분들을 찾아뵙고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앉을 책상들이 제작되어 배송되고, 입금 확인 요청 연락이 수시로 걸려왔습니다. 학생들이 기특하다며 임차료를 싸게 해 주셨던 임대분께서도 멋쩍어하며 입금 절차 및 일시를 묻는 전화가 종종 왔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나 어린 25살이라는 나이에, 지원 사업은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머리가 하얘져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사업부서에 들려 감정에 호소하기도 하며 계약된 금액들이 지급되도록 제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시도했었습니다. 당선되었다(후에 알아보니 당선될 것 같았다)라고 전달 준 사람은 따로 있는데, 1달 남짓한 시간 동안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 사람은 저 혼자 뿐이었습니다. 그 교수라는 사람은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은 책임이 없고 제가 섣부르게 행동한 것이라는 태도로 그저 열심히 하라는 말만 문자로 보내왔습니다.
그 교수 밑에 연결된 창업팀만 7개. 그 많은 팀들이 한순간에 쓰러졌습니다. 담당 교수는 지원이 어려울 것 같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들을 불러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지원단체가 없어졌다는 사실도 우연히 그 단체가 있는 길목을 지나는 또 다른 프로젝트팀의 팀원이 보고 말해 주었을 때에야 알게 되었으니까요. 교수는 연락을 피했고, 돈 달라고 말할 부서도 해체되어 전화할 곳도 없었습니다. 다른 팀의 경우 갑자기 모든 계획이 틀어진 사실에 상심해 휴학하는 인원들도 있었습니다.
결국엔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말아먹었습니다. 사업체가 되었던 봉사단체는 초기 설립 목적을 지키지도 못한 채 조직 자체가 해체되었습니다. 그 당시 가장 죄스러운 마음이 강했던 이들은 함께 사업을 하자고 설득한 동료들, 자랑스러운 제 후배들이었는데 꿈만 풍선처럼 키워 마음속에 심어 두고 바늘 하나로 너무나 쉽게 제가 그 풍선을 터뜨렸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를 위로하는 어른스러운 동생들 앞에서 마음만 미어졌습니다.
살면서 겪는 모든 경험이 스스로에게 양분이 된다는 사실은 공감하지만, 그 양분이라는 것은 정말 달 수도, 쓸 수도 있네요. 힘든 경험이 양분이 되는지 마는지는 소위 '마음가짐'에 따라 결정되지만, 그 경험의 맛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떠올리는 것 만으로 쓴 맛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