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정확히 말하면 4주간의 한글 글쓰기가 끝났다. 처음 기대했던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은 찾지 못했다. 29년 동안 못 찾은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얻으려 했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또한 애초에 손이 닿는 대로 쓰는 글이 결국 나 자신을 탐색하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글쓰기로 귀결되어 처음 목적은 중반부터 사라졌다.
글쓰기를 신청한 본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였더라도 한 달 동안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니,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해보기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말로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 아닌 기억하기 싫었던 기억들과 굳이 바라보지 않았던 순간들까지 내 눈앞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뒤얽혀 있는 나에 대한 감정들과 마주했다.
나의 20대를 돌아보면 아쉬운 기억, 쓰라린 기억, 행복한 기억 등 수많은 기억과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어찌 보면 그 안에서 침몰되지 않고 나름 좋은 궤도를 그리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돌아보니, 20대 때의 나는 한 살 한 살 들어갈수록 잡히지 않는, 정확히 무언지도 모르는 꿈 또는 행복에 지나치게 집착했었다. 내가 바라는 것의 구체적인 실체를 찾거나 스스로에게 의견을 구하기보다 우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해 눈도 뜨지 않고 계속 걸어가기만 했었다. 그러한 나의 행동들이 틀리다거나 후회스럽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한 번은 멈춰 서서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어디를 보고 걷고 있는지, 못 보고 지나친 것들은 없은지 등을 잔잔히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면,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내일이면 나의 20대가 끝나고 30대가 시작된다. ‘새로운 시작’, ‘또 다른 청춘’ 같은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20대인 오늘도, 30대인 내일도 나라는 사람은 한결같다. 내 몸의 세포는 여전히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할 것이며 어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20대가 끝나버렸다는 사실에 한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만족스럽지 않은 20대이기에, 돌아보면 웃음보다는 안쓰러움이 묻어나기 때문에... 하지만 그 또한 그냥 조금 아쉬워하다 그러려니 하고 넘기면 그만일 듯싶다.
20대를 잘 ‘보내준다’고 말하지만, 사실 보내주는 게 아니라 그 아이가 어련히 알아서 가는 것이다. 싹 틔우고 꽃봉오리 맺어 수줍게 활짝 핀다는 20대. 꽃 봉오리를 맺었는지 10년이라는 기간은 어땠는지 그 아이로부터 꾸준히 들었어야 하는데, 이제 와서 급하게 물어보는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다. 이제야 마주하는 나 자신이지만 글을 쓰며 돌아보는 시간 동안 강렬하게 만났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성장하던, 성장하지 않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었다는 것. 스스로와 질문하며 대화하는 것은 나라는 사람을 하나의 존재로써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유일하고 소중한 기회라는 것이다.
선생님,
이제 정말 제20대를 보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질문을 주시겠지만, 질문을 먼저 읽으면 제가 지금 느낀 감정들이 흐드러질 것 같아 오늘은 제가 먼저 메일을 드립니다. 민망하긴 하지만, 제20대에게 편지 한 통 써보려 합니다.
그동안 제 자신을 직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제게 따스한 위로를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유선 통화지만 모니터 너머 있는 저와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셨다고 하셨죠. 저도 그렇습니다. 마냥 혼자서 20대를 정리했다면 이와 같이 깊게 제 자신을 바라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살아가시는 동안, 그 일상 가운데 웃음 가득한 일들이 만개하시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 나의 20대.
이제 너를 보낼 때가 되었어.
너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온전히 마주할 순간이 왔어. 남들이 볼 때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떠나는 너일지라도 네가 어떤 마음으로 달려온 것인지를 내가 너무도 잘 알기에 손 흔들며 웃으며 보내려 해. 네가 저 멀리 언덕 지나갈 때까지 나는 같은 자리에 서서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가려 한다. 희미해지다 결국 보이지 않게 되면, 한참을 자리에 앉아 울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너의 얼굴 한 번 쓰다듬어주고 잘 가라 인사할게. 너무 할 말이 많기에, 그렇기에 아무 말도 없이 서로만 쳐다본다는 이산가족의 말이 감히 떠오른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눈앞에 있는 듯 해. 하지만 동시에 어떤 것부터 살펴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나는 나뭇가지요, 너는 새였으면 싶다. 가지에 앉은 네가 날아가면 나는 온몸을 흔들며 괴로워하겠지만 이내 그 요동침은 잔잔해지고, 네가 앉았던 자리에는 그런 일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새싹과 꽃이 돋아나겠지. 네가 지나간 자리. 지금은 너무나 아프고 힘들지만 이내 다시 꽃을 피우길 바란다. 선인장의 꽃과 같이 언젠간 반드시 피울 것이라 믿는다. 하늘 보며 내가 꽃봉오리 치켜올리는 날이 오면, 너는 나도 모르게 다가와 꽃받침이 되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의 10년,
방황하며 매일 밤 나와 가족들을 한 없이 슬프게 한 나의 스무 살,
나만의 중심을 찾기 위해 비틀거린 나의 스물 하나
사랑이라는 감정의 힘을 처음으로 안 스물 둘
사람이 지독히도 싫으면서, 동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스물 셋,
미친듯이 살며 내 존재가치를 증명하려 한 스물 넷,
내가 선택한 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 스물 다섯,
부푼 꿈을 안고 후회 없이 도전했던 스물 여섯,
손 닿으면 흩어지는 송사리 같은 기회를 얻기 위해 물장구치던 스물 일곱,
거칠지만 뿌리 깊은 나의 신조, 살아가는 방식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스물 여덟,
아쉬움과 뿌듯함이 있는, 약간은 지친 눈을 가진 스물 아홉.
모두 안녕. 이제 보낼 때가 되었다.
안녕, 나의 20대
잘 가. 나도 잘살게.
<마침>
솜씨 없는 글에도 매번 꾸준히 라이킷 눌러주신 이름 모를 분들께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각자 계신 곳에서 하나의 등불처럼 따스하게 주변과 자신을 밝히는 삶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