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오늘 아침에 선생님께 답장한 것을 시작으로, 20대 초반부터의 저의 시절이...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규칙적인 파도가 아닌, 밀물과 썰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난잡한 물결처럼 두서없는 기억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제 모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떠오릅니다. 매출을 내는데 기여하지 않는다는 스텝부서의 일원으로써,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연말 업무에 허덕이는 가운데서도 오늘 아침에 선생님께서 질문하신 문장과 제가 선생님께 드린 답변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쓰고 싶은 대로 써서 보내도 된다는 그 말이 생각났어요. 어쩌면 얼굴도 모르는, 그렇기에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선생님께 제가 감정들을 솔직하게 말해보고 싶습니다. 저에게 20대를 돌아보는 것은, 날 것으로의 저를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썩 익숙지 않은 고역입니다. 그렇기에 지금껏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점점 다가오는... 또 다른 인생의 장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선 먼저, 제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답답한 이 마음 가득 담아 손 가는 대로 써보겠습니다.
20대가 끝나갑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별 다른 이유 없이 외쳤던, '인생의 분기점 28세'를 한참 지나 이제 29살도 보내야 될 때가 왔습니다.
똑같은 경험이더라도, 인생의 어느 시점에 했는지에 따라 다가오는 울림은 천차만별입니다.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얼마나 경험을 쌓아 올렸는지에 따라 느끼는 감정과 순간의 기분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제가 지금 서 있는 이 순간이, 저의 20대가 미치도록 아쉽습니다. 39살이 되어, 내 30대를 돌아보며 역시나 아쉬움을 토해내겠지만 그 감정의 모양과 깊이는 어쩔 수 없이 다를 것입니다.
저의 20대는 어땠을까요.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저를 잠시 멈춰 세우고, 뒤를 돌아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바라보려 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말씀드렸던 제가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나 추억 따위보다 아마도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먹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말한 것들이 진실함에 가장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20대는 말 그대로 노력만 하다 끝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도전하고, 실패했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 얻은 것도 많이 있겠지만, 잘 떠오르지는 않아요. 저도 사람인지라 항상 긍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더라고요. 평소에는 잘 떠오르지도 않는 부정적인 기억들, 가슴 아픈 순간들이 갑자기 올라올 때가 있는데 저에게는 오늘이 그날인가 봅니다. 오늘은 꽤나 강하게 찾아왔습니다. 비가 올 줄 알고 우산을 준비했는데, 댐이 무너진 꼴입니다.
걷잡을 수 없는 이 우울한 감정을 벗어던지기 위해, 어떻게든 이 응어리를 풀어보려 합니다. 무엇을 해야 이 기분이 나아질 수 있을까요? 20대를 돌아보며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래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많은 자기 계발서나 미디어에서 말하듯 글을 적어보며 제 자신을 알아본다면... 제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저를 더 성장시켜주었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 지금의 나를 만든 사건들
내가 시도한 것들, 하고 싶었던 것들, 꿈꿨던 것들, 가지고 싶고 이루고자 했던 것들... 너무 많습니다. 불에 그을린 뭉터기처럼 한데 모여 있어 하나씩 꺼내보기는 만만치 않을 것 같다만 그래도 하나씩 풀어가 보겠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이렇게 인생의 욕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처럼 무언가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계기는 크게 두 가지인데요. 첫 번째는 멀쩡히 다니고 있던 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공부하던 시절이고, 두 번째는 군 복무 시절입니다.
20살 때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그 당시는 마음이 심히 불안정할 때라 이유 없이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조르고 졸라, 형편에 맞지 않는 종합 재수학원을 다녔습니다. 유튜브나 책에서는 어려운 시절 중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이 악물고 다녔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간절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오히려 '이렇게 했는데 잘 안되면 어떡하지' 같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모습에 압도 당해 경제적 형편 핑계 대며 그만두었습니다. 진정한 도전이라면 모든 것을 걸었어야 하는데, 반도 못 걸고 그냥 겁났던 것 같습니다. 공부를 포기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경제적으로 도움받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너무나 큰 부담이었습니다. 무조건적인 지지는 꿈도 못 꾸는 가정 속에서 부모님께 빚진다는 마음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갚아야 할 빚,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평생 갚지 못할 빚...
눈만 돌리면 나오는 '자수성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실망스럽다고만 했던 부모님에게 잘난 모습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돈 없이 키워도 충분히 잘 키워진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스스로 벌어야 했고, 다녔던 재수학원 옆 웨딩홀에 무작정 찾아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릇 치우는 일은 항상 사람이 부족했기에 그 주 토요일부터 바로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에 14시간씩 일했습니다. 아침 7시에 가서 밤 11시에 끝날 때도 많았는데, 한 만큼 돈을 더 받으니 매니저님이 더 해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했습니다. 돈이라 받는 돈으로는 차비와 점심 몇 끼면 금방 사라졌기에, 노량진에서 컵밥이라도 삼시세끼 먹으려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단지 조금 더 잘 살아보겠다고, 나도 그깟 4년제 한 번 가보겠다는 마음에 시작한 재수는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차치하더라도 정신적 빈곤함과 박탈감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자신들이 가진 것 가운데서 최선의 지원을 해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온갖 짜증을 부리는 제 자신도, 그래도 해줄 수 있는 건 다해줬다고 우시는 부모님도 그 모든 것들이 싫었습니다. 같은 목표를 향해 공부하는 친구들은 학원에서 공부할 동안 나는 그 옆 웨딩홀에서 음식물쓰레기나 버리고 있는 것이 서러웠습니다. 원망의 대상이 없어 애꿎은 부모님에게 신경질을 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럽다기보다는 제 자신이 안타까운 기억들이 몇 개 있습니다. 그중 가장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은 6월 모의고사 다음날입니다. 웨딩홀 아르바이트생들은 예정된 모든 예식이 마무리되면 지하 주차장에 모인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1층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웨딩홀 건물은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1층 정문 바로 옆에 지하로 통하는 오픈형 계단이 있었는데, 위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일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넓고 가운데가 뻥 뚫려 있었습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다닐 때는 1층 정문은 고사하고 사람 없는 시간을 맞춰 오픈형 계단 옆 다른 통로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쓰레기 가득 든 봉투 두 개를 양손으로 잡고 양손으로 들고 올라가는 시간은 대개 밤 10시 정도였는데, 이 시간은 바로 옆에 제가 잠시 다녔던 재수학원 주말 야간 자습시간이 끝나는 시간과 동일합니다. 며칠 전까지도 같이 공부했던 애들 목소리가 들리면 올라가려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그 소리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제가 놓인 환경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싫어 울었습니다. 물론, 그때의 저 보다 더 힘든 사람들은 많겠지만 그 나이의 저로서는 감사의 마음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낼 만큼의 자존감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며 이렇게 공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정말 닥치는 대로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음식물 묻은 웨이터복, 위생장갑을 끼면 봉투를 놓쳐 맨손으로 매번 꽉 들고 있던 쓰레기들. 내 위로 그 아이들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어두운 계단 아래에서 기다리던 모습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중간중간 공부하면서 힘든 기억들은 많지만 구구절절 적고 싶지는 않기에 생략하겠습니다. 아는 게 없으니 닥치는 대로 외웠고, 문제 문구와 풀이 해법을 통으로 외울 수 있는 만큼 계속해서 외웠습니다. 결과적으로 시험은 꽤나 만족할 정도로 잘 보았습니다. 난생처음, 시험이 끝나고 잘 보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긴장이 돼서 점심밥도 먹지 않고 보았던 외국어영역의 경우, 다 풀고 나서도 15분이 남아 지퍼를 얼굴까지 올리고 남몰래 울었습니다. 그 시간에 한 번이라도 검토할 걸, 외국어 영역은 하나 틀렸습니다.
이 시절 경험을 통해 그래도 달려들면 최고는 아니더라도 남들보다 약간은 더 잘할 수 있구나, 내가 열심히 했다는 것을 나 자신이 인정할 정도가 되면 후회는 안 남는구나... 그렇게 시도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