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더로 보는 세상
아름다운 날의 익숙하지 않음과 좋은 아침이 때로는 버거울 때가 있다.
그것이 단순히 날씨나 분위기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껴지는 말 없는 간격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행복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자발적인 정신적 통제가 스스로를 단단히 묶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평안한 와중에서도 스스로 불편함을 일부러 찾아내곤 했다.
마치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자책하며 벌을 주듯 나는 불행이 당연한 사람인 듯
그렇게 자신을 궁지에 내 몰아야 마음이 편했다.
그런 내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나를 토닥이며 위로했고, 이것이 당연하듯 더욱더 등을 떠밀며 벼랑 끝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왜 그리 고단하고 힘들게 피곤하게 사느냐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 딱히 명확한 답을 정의할 수는 없다.
나는 그렇게 마음 편히 살아서는 안될 사람이라는 생각이 아직도 뿌리 깊게 내려 있었을 뿐이다.
지금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거리는 매우 적막하며 고요하고,
다소 빠르게 나를 지나쳐 가는 차량의 속도가 조금은 불안하고 불편하다.
마흔 중반의 이 가증스러움이여,
부디 오늘이 마지막이길
내일은 깊은 꿈에서 깨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매일매일 그저 상상으로 욕심내어보지만
결국 나는
내일 아침 또 이를 닦고 샤워를 하며
무슨 옷을 입고 하루를 시작할까 고민하는 내가 참 한심하고 가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