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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름 Mar 12. 2024

[독후감] 책을 좋아해서 당신이 좋았습니다

『책 산책가』를 읽고

『책 산책가』/ 카르스텐 헨 지음 / 그러나


 안녕하세요, 칼 콜호프씨.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이제는 굳게 닫혀있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도 될만한 날씨가 오고 있습니다. 겨우내 바람을 쐬지 못했던 책장 가득한 책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좁고 답답한 방구석에서 있는 것도 서러운데 자기들 머리 위에 먼지가 쌓인다고 투덜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먼지떨이로 정기적인 청소를 해주는 것으로 책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매달 서너 권씩 사 온 책이 점점 쌓이다보니 더 이상 책 둘 곳이 없어 골치를 앓고 있는 청년입니다. 가끔 집에 있는 물건들 중 어느 것보다도 책이 귀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만약에 불이 난다면 다른 것보다 책을 어떻게 구할지부터 생각이 들 때도 있거든요. 이러한 생각 때문인지 칼 씨가 손님들에게 책을 배달하기 전 직접 고르신 책들을 곱게 포장하고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는 모습을 보면서 책을 귀하게 생각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한 번에 느꼈습니다. 그리고 책을 대하시는 모습뿐만 아니라 책 배달을 받는 분들과의 대화에서도 상대방을 한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을 주제로 한 소설이라서인지 칼 씨의 이야기에 몰입이 잘 되었습니다. 특히 샤샤와 만나고 무채색 같던 칼 씨의 일상에 화사함이 돌기 시작했다는 것을 칼 씨를 아는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두 사람의 만남에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누군가는 나이와는 상관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어려도, 혹은 나이 차가 많이 나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어떤 면에서는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있잖아요. 요즘은 '꼰대', 'MZ세대'라는 단어로 세대 간의 생각 차이를 나누려고 합니다. 사회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개념들은 때로는 나와 다른 어떤 사회적 조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편을 나누어 대립 구도를 만드는 선입견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칼 씨와 샤샤의 조합은 현대적 갈등을 깨뜨리는 나이 차를 초월한 멋진 파트너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시곗바늘같이 안정감 있고 평온한 칼 씨의 일상에 끼어든 샤샤가 불편하기도 하셨겠죠. 하지만 샤샤의 뛰어난 관찰력으로 손님들이 진정 원하는 것들을 알아가고 그것을 이루어주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에서 앞서 말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글자를 모르는 헤라클레스와 전직 교사 롱스타킹 부인의 만남 같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탈출한 에피와 담배 공장 직원들 앞에서 자신이 쓴 글을 읽음으로써 작가 데뷔를 하게 된 책 읽어주는 남자같이 '사람과 꿈의 연결' 등, 책 속의 세상에 빠져 자신의 아픔을 잊으려고 했던 사람들을 이제는 현실 세계로 데려와 각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직접 도와주셨으니까요.


 저는 책은 독자가 있기 마련이며, 가끔은 독자가 그 책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라잡이가 필요하다는 말을 보고 왜 이리 설렜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5년간 신간 발행 총 권수는 평균 6만 4,000권이라는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때까지 누적되어 온 책 권수는 상상할 수 없겠죠. 제가 놓치고 있는 좋은 책들도 그만큼 많을 것이고 평생을 읽는다고 해도 다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가끔 유명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산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 후회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그 시간에 저에게 잘 맞는 좋은 책을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드는 책은 없고 어떤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사랑받는 책이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은 책이 되기도 한다는 칼 씨의 말이 굉장히 와닿았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칼 씨라면 개성적이고 각진 저의 마음에 딱 들어맞는 멋진 책을 추천해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손님들의 꿈을 찾아준 칼 씨가 예기치 못한 사고 후 관심의 부재로 겪은 마음 아픈 상황을 보고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칼 씨를 위로하고 책 산책가로서의 삶을 다시 살 수 있도록 샤샤의 시나리오 안에서 한마음이 된 손님들의 노력을 보면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또한 칼 씨가 있는 지역의 누군가는 칼 씨를 통해 계속해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안심이 되었습니다. 책을 계속 읽을 수 있도록 책과 사람의 연결고리가 되어주시는 '독서 산소호흡기' 칼 씨의 역할은 현대사회에서 너무나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줄어드는 손님들을 통해 이미 느끼시겠지만, 독서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성인 2명 중 1명은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으며, 읽은 사람 기준으로도 한 달에 1~2권을 채 못 읽는다는 안타까운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요즘은 전자기기가 생활화된 현대사회에서 출판사들이 전자책을 발행하고 전자책만을 위한 리더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가방에 가득 부피를 차지하지 않고도 얇은 기기에 수많은 책을 담아 다닐 수 있는 편리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쉽게 책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죠.


책을 읽지 않는 성인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도 저런 조사결과가 나온 것은 독서에 대한 현대인들의 무관심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무서운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1~2분대의 짧은 영상을 시청하는 것에 중독된 많은 사람에게 글자 하나하나 눈으로 읽어 내려가며 이해하고 머릿속에 담아 가는 독서가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죠. 그렇기에 방 가득히 책을 쌓아두고 있는 저의 모습이 어떤 사람의 눈에는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습니다. 이사할 때 더 고생이고 관리하는 것도 일이니까요. 어떤 친구는 전자책이 더 싸고 관리할 필요도 없는데 왜 굳이 들고 다니기 번거로운 종이책을 사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한때는 '이 다음부터 사는 책은 다 전자책으로 바꿔봐야겠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책을 사야 하는 때가 오자 저는 자연스럽게 서점으로 발걸음이 향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저의 우직한 성격이 똥고집일 수도 있겠습니다. 책마다 다양한 재질의 종이, 손가락으로 느끼는 페이지 넘김, 서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새 책 냄새, 다양한 디자인의 책등을 바라보는 재미 등, 내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외적인 모습에서도 느끼는 책의 매력은 뭐라 설명하긴 힘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매력에 빠져든 것뿐이고요.


 칼 씨, 저는 오랜만에 이 책 자체를 사랑하는 당신을 만나면서 역설적이지만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회 속에서 느낀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책과 사람은 직접 만나서 알아봐야 그 속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것을 알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도 말이죠. '빨리' 무언가를 하고 '빨리' 결과를 내는 것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는 사회에서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대인관계와 독서에 대해서 시큰둥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빠르게 변화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오히려 다른 취미보다 독서에 빠진 게 아닐까 하네요. 저는 칼 씨에게 편지를 쓴 후 바빴던 하루 일정의 마무리를 책 몇 페이지로 해보려 합니다. 칼 씨도 오늘 책 배달로 노곤하실 텐데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책 산책가'로서의 여정에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하길 기도하겠습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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