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참여 일기
어제 제22회 국제관광 서울 마라톤 10K에 참여했다. 지난 5월쯤 장거리 운전으로 인해 허리가 급속도로 안 좋아져서 한방치료를 자주 받으러 다녔고 지금도 허리에 힘을 주고 물건을 드는 일은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허리가 안 좋아지면서 척추에 무리가 가는 달리기도 거의 하지 못했었다. 6월 한 달간은 퇴근 후 허리에 뜨거운 팩으로 찜질하고 누워있다가 살살 걸어보는 정도로 재활을 해야 했다. 아침저녁으로 가볍게 달리는 것이 습관이었는데 그걸 못하니까 너무나도 답답했다.
최근에 션의 유튜브 채널에 이봉주 마라토너가 나왔었다. 이봉주도 2020년 초에 '근육 긴장 이상증'에 걸려서 근육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축되는 증상이 있었다. 그래서 몸이 앞으로 구부러지고 목도 꺾여서 운전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을 겪었던 이봉주에게 션은 이렇게 물었다.
"선배님은 어떠세요? 매일 일상화가 되어 있다가 오랜 시간 잘 움직이지 못하셨으니까... 가장 그때 하고 싶었던 게 뭐세요?"
그때 이봉주는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도 정말 늘 달리는 게 생활화가 되고 몸이 익숙해져 있었는데 달리지 못하니까... 죽고 싶을 정도로 뛰고 싶은 거죠"
이봉주는 몸이 아픈 것보다도 뛰지 못하는 상황이 더 갑갑했다고 했다. 이 영상을 보면서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건강히 잘 뛰고 있었고 누구보다 체력과 건강에 자신이 있었는데 한 순간에 허리로 인해 누워있으니 허리통증이라는 새장에 갇힌 새 같았다. 뛰지 못하니 살도 불어나는 것 같고 몸이 둔해지는 것 같았다. 바닥에 머리만 대면 잠에 드는 나에게 허리를 쉬기 위해 누워있는 시간이 개미지옥 같았다. 누워있다가 깜빡하면 잠에 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방에 불을 켜놓고 잠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잠을 푹 자지 못하고 새벽 3~4시에 깨는 경우가 많았다. 견고히 세워놓은 하루 루틴이 망가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출근하고 나서도 컨디션은 바닥이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나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었다. 코로나 사태 전 무기력하고 안 좋은 건강상태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섬뜩했다.
그래서 7~8월은 뛰지 못하면 걷기는 반드시 하자 생각하고 열심히 걸었다. 그전에도 많이 걸었지만 뛰지 못하는 만큼 더 걸으려고 했다. 몸무게 증가도 허리에 가장 안 좋은 요소이기 때문에 살을 찌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운동을 안 하니까 스트레스 해소를 먹는 쪽으로 푸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도 최대한 절제하기로 했다. 제법 생활패턴을 정상화시키고 나서 조금씩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3km 뛰어보고 허리 상태 살피고 다음날 다시 3km 뛰고... 절대 무리하지 않고 한의원에서 재활치료도 병행했다. 8월 중순이 되자 5km 정도를 뛸 수 있었다. 귀찮은 마음을 이기고 오랜만에 5km 완주를 했을 때 속으로 오두방정으로 떨며 환호를 했다. 다시 뛸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그렇게 해서 이번 마라톤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전날까지도 '괜찮을까? 무리하는 거 아닐까?' 하면서 걱정 가득했지만 그냥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아프다고 느끼면 바로 포기할 마음을 먹고 말이다. 마라톤 당일 버스를 타고 부지런히 도착하여 몸을 풀고 배번표를 부착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말자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나보다 살짝 빠른 사람의 페이스를 의식하면 경쟁심때문에 따라잡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내 페이스를 유지해야 했다. 출발신호가 떨어진 직후가 가장 우울했는데 출발할 때 평소보다 힘차게 달리지 못하는 내 상태가 확실히 느껴지고 힘차게 지면을 구르며 무수히 멀어져 가는 다른 참가자들을 바라보니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완주가 목표였기 때문에 시간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반환점을 돌지도 않았는데 이미 반대편 도로에서 결승점을 향해 달리고 있는 사람들, 더워서 웃통을 벗고 힘껏 내달리는 사람들, 교묘한 타이밍인지 모르겠지만 걷고 있다가 내가 지나가면 후다닥 달려가는 사람들 등 마라톤 내에서 경쟁의식을 자극하는 요소는 많다. 이전에는 이런 것들이 내 기록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내 마음대로 뛰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속에서 열불을 키우는 땔감 역할을 했다. 정신 차리고 내 속도와 호흡에 집중하기로 했다. 반환점을 돌고 나서야 느려진 내 속도를 인정하고 차분히 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결승점에 도착해서 경과시간을 보니 63분이 찍혀있었다.
간식배부처에서 주는 간식과 메달을 들고 한참 앉아 있었다. 완주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건강관리를 잘 못한 것의 아쉬움이 교차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매번 참가할 때마다 전 기록보단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과 그것이 나름대로의 건강관리의 척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조한 성적이 크게 아쉬웠다. 그래도 뛰지도 못하고 끙끙 앓던 6월에 비하면 감사할 따름이다. 다시 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잘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앞으로 있을 마라톤에서 제대로 된 성적을 내기 위해서라도 허리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 당분간은 완주에 의의를 두기로 하고 다음을 기약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