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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름 Sep 19. 2024

[독후감] 창 너머의 낯선 세계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를 읽고

  초등학교 때 명절 당일이 되면 새벽 일찍 일정이 시작되었다. 도로가 막힐까봐 서둘러 준비하시는 부모님 옆에서 잠에 채 깨지 않은 몽롱함에 왜 이리 일찍 가냐며 불만을 터트리곤 했다. 우리는 항상 당일로 부평과 서울에 계시는 친할머니, 외할머니댁 2곳을 방문했다.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사실 멀미가 심한 탓에 차에 타면 바로 잤기 때문에 자는 시간은 충분했다.      


  참 신기했던 건 매번 기가 막히게 할머니 댁 도착하기 10~20분 전에는 눈이 번쩍 떠졌다. 그때 보이는 창 밖의 광경은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모습이었다. 해가 떠오르면서 반짝거리는 한강의 윤슬은 빠르게 지나가는 차창 사이로 짧은 시간만 바라볼 수 있었다. 명절 때만 볼 수 있었던 도심 한가운데 한강 모습은 매번 낯설었다. 저 아름다운 장면과 나의 사이는 분명 물리적으로 가까워질 순 없었다. 하지만 창으로 바라볼 수는 있었기에 장거리 연애를 하는 마냥 애틋한 감정도 들었는데 낯섦과 애틋함, 두 모순된 감정은 지금도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고 바라보는 한강에서 여전히 느껴지는 듯하다.     


  창은 세계를 구분하고 이어준다. 우리는 창 밖과 창 안, 두 곳에서 양립할 수 없다. 반드시 어느 한쪽에서 반대편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내가 존재하지 않는 창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남기는 것이다.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그래서 차창 너머로 보이던 한강의 윤슬이 그렇게 보였던 것일까. 그러한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만드는 매개체가 창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가게 되면 가장 먼저 찾는 장소는 지역의 유명 관광지보다 뷰가 좋은 카페다. 어딜 가든 통유리로 바깥이 탁 트여 산 능선 전체가 보이거나, 수평선 너머 막힘없는 바다가 보이는 곳을 선호한다. 영화관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사방이 막힌 안전한 공간에서 의자에 앉아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분명 직접 바깥에 나가 자연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사방이 막힘없는 광활한 곳에서 느껴지는 자연이 주는 압도감과는 조금은 다르다. 창을 통해 보는 자연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예술작품을 보는 정적이고 고고한 느낌도 든다. 바다가 밀어내는 파도 소리나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는 인위적인 카페의 노랫소리에 묻혀 들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긴 하다.      


카페 '여수에서' 에서 찍은 창 밖 풍경


  작은 창도 좋다. 오히려 작은 창이 주는 제한적인 시야에서 바라보는 경관도 새로운 느낌을 준다. 마치 사진 속에 담긴 모습처럼 작은 사각형 안에 담긴 모습은 유리창 풍경이 주는 경외감보단 소박하지만 친근한 느낌을 더 가져다준다. 자연을 감히 제어할 수 없지만 내가 어디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창이 내게 보여주는 자연의 모습은 다르다. 창틀에 갇힌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은 멈춰있지 않고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저 멀리 보이는 나무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람 따라 때로는 비를 맞으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풍경화다.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 민병일 저  / 문학판


  민병일의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는 저자가 본 창 너머의 풍경과 예술을 조화시킨 산문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방대한 분량에 놀라기도 했지만 저자가 본 풍경의 아름다움을 여러 가지 시와 음악, 미술작품과 치밀하게 연결해 독자들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표현이 어렵게 느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저런 노력이 더 어렵게 느낄 수 있었던 표현을 한 발짝 다가가기 쉽게 만들어 줬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가 소개한 미술작품은 책 안에 친절하게 첨부되어 '무슨 작품인지 찾아보는데 쓸 시간'을 '어떤 느낌을 전달하려고 했는지 느껴 볼 시간'으로 전환시켜 주었다. 음악은 책에 직접 첨부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등 소개된 몇몇 노래들은 직접 찾아 들었다. 이렇게 하니 풍경을 찍은 사진들 속에 담긴 저자의 의도를 느끼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저 '줄배 다니던 물길이야말로 삶의 질박함과 낭만을 느리게 간직한 곳이었다'(p.370)라는 문장을 읽었다면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감동이 적을 것이다. 하지만 <낭만에 대하여>의 짙은 색소폰 소리와 함께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이란 가사를 최백호의 축축하고 거친 목소리로 들으면 문장에 배긴 줄배의 추억을 저자와 좀 더 가까이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낯선 창은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눈이라고도 했다. 단순히 창 너머의 풍경뿐만 아니라 선팅이나 유색의 유리 같은 창에 가해진 사소한 변화를 햇빛이 관통했을 때 비치는 무언가에서도 의미를 찾는 저자의 모습에 또다시 감탄했다. 덕분에 나의 삶에서 창이 던져 준 추억과 흘러갔던 생각에 대해서 돌아보고 풀어낼 수 있었다. 낯선 장소에 자리한 낯선 창은 장소에 따라 불편함을 주기도 하고 감동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자극이 사회에 있는 듯 없는 듯이 살아가는 단조로운 삶에 얼룩을 남긴다. 하얀 셔츠에 작은 얼룩이 생기면 눈길이 바로 가고 신경 쓰인다. 이런 얼룩이 여러 개 묻으면 그냥 지저분한 모양이 될 수 있지만 예상치 못하게 지도가 될 수도 있고 그림이 될 수도 있다. 이럴 때 새로운 세상을 만날 가능성이 비로소 생긴다.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를 읽은 후, 조금 더 창 너머의 풍경에 의미부여를 해보려 한다.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 또 다른 세계를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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