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지기 친구와 첫 여행, 안동 여행코스
친구를 알고자 하거든 사흘만 같이 여행을 해라
- 서양 속담
"너 상황 괜찮으면 같이 바람 쐬러 어디 갈 수 있나 해서"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었다. 1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 둘은 함께 20대의 청춘을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하지만 현실과는 다른 방향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다가 남들보다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해서 고생하고 있는 것도 같은 입장이다. 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지냈다 보니 지금은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알아서 살아있겠거니 하고 있다. 그랬던 친구가 여행을 제안했다. 연차는 많이 쌓였는데 할 게 없어서 못 쓰고 있다고 했다. 맛있는 걸 먹으러 가보기도 하고 집에서 조용히 뒹굴거리면서 지내보기도 했지만 시간을 허무하게 쓰는 것 같아 아깝다면서 이번 기회에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20대 초반에는 누구보다 밝고 장난기가 많으면서도 선배들에게 예의가 바르다고 좋은 이야기가 많았던 친구라 다른 사람들하고 여행 한 번쯤은 가봤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어느 정도 자기 앞가림은 할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자기만을 위한 여행을 생각해보고 있었다. 막상 여행을 가보자 마음을 먹으려고 하니 혼자서는 의지가 잘 생기지 않아 이번에 나와 함께 가면서 여행의 맛을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나도 1박 2일 단기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친구한테 조언을 하거나 알려줄 건 없었지만 의지가 잘 생기지 않는다는 말을 백번 천 번 공감할 수 있었기에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같이 여행을 가보기로 결정했다.
몇 차례 여행을 통해 나는 계획형 인간이지만 시간, 분 단위로 쪼개는 계획보다 최적의 동선으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어떤 장소에 갔는데 불가피한 사정으로 열지 않았거나 아예 없어졌을 경우를 대비해 대체할 수 있는 장소를 생각하긴 한다. 그런 돌발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오히려 더 좋은 곳을 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의 회로가 활성화된 것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볼 수 있었다. 친구는 나보다 신중한 성격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런 부분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처음 하는 여행이라서 더 신경을 썼을 수도 있지만 시간 단위로 하루 코스를 짜고 점심, 저녁 식당을 정하는 모습에 예전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이번 여행은 친구가 여행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지고 다음에도 자기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옵션을 줘야겠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친구의 취향에 맞추기로 했다. 우리가 함께 갈 곳은 '안동'이었다.
차를 가져가는 선택지는 너무나 탁월했다. 친구 덕택에 편안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친구의 준비성은 짐의 크기에서 알 수 있었다. 1박 하는 것 치고는 큰 가방에 가득 담긴 짐을 보면서 살짝 웃음이 나왔다. 나도 그랬었지, 생각하면서 짐을 실었다. 아침에는 안개가 가득했는데 안동에 이르러서는 맑은 하늘이 반겨주었다.
우리는 안동 여행의 시작을 축복해줄 맛있는 점심을 먹기 위해 신라국밥으로 이동했다.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 답게 11시 오픈이지만 10분 전부터 사람들이 들어가서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리가 없어서 제 시간에 못 먹을까봐 마음이 급해져 빠르게 들어갔다. 다행히 우리가 본 사람들이 전부였기에 여유 있게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신라국밥의 국물이 신기했던 건 다른 국밥집에서 많이 보던 뽀얀 사골 국물이 아니라 맑은 국물이라는 것이었다. 이 맑은 국물 덕택에 뒷맛이 깔끔했고 부추가 가득 올려있어서 먹고 나니 추워진 아침 기온에 굳어있던 몸에서 열기가 훅 올라왔다. 고기 양도 많아서 한 숟갈에 고기를 잔뜩 올려 먹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이 정도 양이라니, 아침에 빈 속으로 온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친구와 매우 만족한 눈빛을 나누면서 한 그릇을 비워내고 '낙강 물길공원'에서 산책하면서 소화시키기로 했다.
낙강 물길공원에서 높지 않은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안동댐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나온다.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면 계단 끝에 안동루라는 정자가 나오고 그 위로 올라가면 안동댐이 바로 나온다. 안동댐의 맨 위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풍경과 사람들이 다듬어 놓은 풍경들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바람이 제법 불었지만 햇빛은 따뜻해서 춥지 않았다. 친구와 한참 동안 말없이 강과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을 보냈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는 느낌이었다. 언뜻 귓가에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너희들 잘 살아왔어!' 외치는 것 같았다. 그날따라 그런 소리가 듣고 싶었나 보다.
어느덧 숙소 체크인을 할 시간이 돼서 안동 시내 쪽으로 이동했다. 관광 위주의 도시라서 그런지 평일에는 사람이 많이 없어 교통이 편했다. 시내 중심가 쪽에 위치한 전통문화컨텐츠박물관에서 VR체험과 대형 스크린에서 나오는 영상들, 하회탈춤 따라 하기 등 안동의 역사와 문화를 잠깐 맛보고 나와 숙소에 갔다. 주인분이 엄청 나긋나긋하고 친절하게 숙소 이용방법에 대해서 설명해주셔서 마음속으로 좋아요 도장을 쿡 찍었다. 숙소는 최대한 저렴한 곳으로 잡자는 것에 의견을 모아서 시설편의에 대한 기대는 없었는데 막상 깔끔하고 청결함이 느껴져서 가격 대비 잘 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지친 발을 옥죄는 양말을 벗어던지고 침대에 누워서 좀 쉬기로 했다. 친구는 어느새 코를 골며 자기 시작했고 나도 살짝 눈만 감았다 떠야지 했는데 다시 뜬 눈앞에 보이는 창문 밖의 풍경은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저녁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우리의 배꼽시계는 거의 비슷했다. 잠에서 깬 친구는 어느새 안동찜닭골목을 검색하고 있었다. 찜닭골목에는 수많은 찜닭가게가 있어서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는지 크고 깔끔한 가게가 우리 눈에 띄어서 그곳에서 찜닭을 먹기로 했다. 요즘 찜닭가게들이 많이 늘어나서 포장, 배달해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서 안동이 원조라고는 하지만 크게 차이가 있을까 싶었는데 양도 꽤나 많았고 간장 양념이 충분히 배어든 고기와 탱글거리는 당면은 우리의 선입견을 무참히 깨뜨리고 매콤 달콤한 맛으로 우리를 사로잡았다. 안동에 오면 찜닭은 한번 먹어봐야지! 하는 말이 무색하진 않을 것 같다.
완전한 어두움이 덮이기 전 월영교를 지나는 낙동강은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낯을 가리듯이 발갛게 물들었다. 다리뿐만 아니라 월영교 근처 데크길도 강가를 따라 조명이 가득하여 멀리서 보면 별빛들이 가지런히 수놓는 것처럼 보였다. 다리 중앙에 있는 월영정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대학교 MT, 타지에서 놀러 온 관광객들이 인생 사진을 건지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도 사람 없는 타이밍에 맞춰서 몇 차례 찍으며 여행 온 티를 좀 내보았다. 저녁은 어느새 검푸르게 저물어가고 조명이 만든 별빛이 아닌 진짜 별빛이 밤하늘에 반짝거렸다. 친구와의 첫 여행의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 지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평소와 똑같이 새벽 운동을 다녀왔다. 어제 저녁에 갔던 월영교까지 걸어서 아침 모습을 보고 왔다.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저녁과는 사뭇 다른 신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더 걸을까 하다가 친구가 혼자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에 걸려서 발걸음을 돌려 숙소에 왔다. 친구는 그 사이 일어나서 개운하게 씻고 나와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어제 숙소에 돌아오면서 아침으로 먹으려 산 캐릭터 스티커가 들어있는 추억의 빵이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하긴, 선택한 모든게 최고일 수는 없지.'라고 생각하며 숙소를 정리하고 나와 안동하면 떠오르는 그곳, 안동 하회마을로 향했다.
"아니, 우리는 하회마을 건너편 쪽으로 가고 있는데 길 가는 내내 표지판에는 하회마을 가는 길 표시가 되어 있네?"
"그러게, 하회마을로 가지 않으면 무슨 일 일어나겠다 야"
안동 시내에서 벗어난 도로표지판에서 하회마을이 안 써진 표지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회마을 건너편 부용대를 가는 길이었는데도 하회마을로 돌아가라는 듯이 굵은 화살표가 뚝심 있게 하회마을을 가리켰다. 하늘의 지시를 거스르는 느낌을 받으면서 부용대에 도착해 하회마을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아서 사진에 이쁘게 담기지 않아 햇빛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하나둘씩 올라올 때쯤 사진을 찍었다. 오랜만에 친구의 독사진을 찍었는데 나름 마음에 들어서 흡족했다.
하회마을은 한옥집이 많기도 했는데 실제 사는 분들의 차량들이 한옥의 멋을 몰입하는데 조금 방해가 되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차가 없는 것이 더 이상하겠지만 유구한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곳에서 현대시대의 차가 있는 게 어색했던 것 같다. 그래도 한옥이 주는 정겨움과 따뜻함은 어디 가지 않았고 마을 전체를 한 바퀴를 도는 내내 여유와 평화로움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구석구석 살피면서 다닌 것이 아니라 동네 한 바퀴 산책하듯이 즐겼는데 오히려 그런 편함이 좋았다. 사진을 찍어야 하는 압박도 없고 다음 일정이 정해진 것도 없었다. 비포장도로를 걷는 이 시간 자체를 좋은 친구와 즐기는 것이 감사한 일이었다.
점심을 하회마을 안에서 먹을까 하다가 친구가 찾은 다른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곳은 안동 여행의 정점을 찍은 최고의 마무리가 되었다. 처음엔 배고파서 음식이 맛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푸짐하게 나온 반찬을 모두 한 번씩 비웠는데도 입맛을 다시며 밥 한 공기를 더 리필하는 우리를 보면서 이건 진짜 맛있는 곳임을 깨달았다. 먹는 내내 최근에 한 리액션 중 가장 크고 밝게 했던 것 같다. 먹는 기쁨도 있었지만 1박 2일의 시간을 친구와 재밌고 알차게 보냈다는 즐거움이 텐션을 한껏 올리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친구와의 여행이 처음엔 걱정이 되었었다. 10년 이상 봐왔고 잘 맞는 친구였지만 혹시나 이때까지 알지 못한 맞지 않는 부분 때문에 불편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있었으나 그 걱정이 무색할 만큼 정말 잘 보내고 왔다. '친구를 알고자 하거든 사흘만 같이 여행을 해라'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비록 이틀이었지만 나는 이번 기회로 친구와 10년 넘게 잘 지낼 수 있었던 이유도 알게 되었다. 서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배려하고,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공감 가는 친구. 그런 친구였다. 친구도 정말 재밌었다며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거를 타선이 없었다면서 만족해했다. 나도 그 말을 들으면서 친구가 앞으로 있을 자신만의 시간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하게 보내길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도 함께 잘 지내보자는 응원도 마음속으로 함께 보냈다.
2022.10.11 ~ 2022.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