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터지면서 사람들과 대면으로 만나는 자리가 매우 줄어들었다. 옛날에는 서로 연락하기 위한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연락할 수 있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은 비대면 시대에 사람들과 더 편리하게 소통할 수 있게 만들 줄 알았으나 실상은 진짜 내 곁에 남는 사람들을 판별하게 되었다. 핸드폰에는 700여 명이 되는 사람들이 저장되어 있지만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서 실제 연락하는 사람들은 10여 명 안팎이다. 정말 '찐'으로 남은 사람들과 간간이 안부를 전하면서 연락을 하고 있다.
연락수단은 편해졌지만 편하게 연락할 사람은 오히려 줄었다.
코로나19는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경제활동을 위축을 불러일으키며 그 전에도 바늘구멍 같다는 취업문을 더 좁혀놓았다. 취업 구직사이트를 들어가보면 정규직 일자리가 많이 없다. 이곳저곳 정규직을 찾아 클릭하느라 손가락이 나보다 더 바쁘다. 취업사이트를 한 번 다 돌고 나면 공기업이나 공무원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진다. 더 이상의 계약직은 싫다. 끝이 보이는 자리를 가고 싶진 않았다.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최근 과장님이 참석한 부서장 회의에서 들은 바로, 각 과에 있는 비정규직 인원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에 대해 논의가 되었다고 했다. '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지금의 나에게는 그 어느 것보다 안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기에 마음이 살짝 두근거렸지만 직장의 상황을 보았을 때는 미래가 그리 밝지 않아 마냥 좋다고 보긴 어려웠다. 그리고 '논의가 되고 있다'라는 거지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큰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저 회의에서 무수히 논의된 것 중 제대로 시행되는 건 별로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번 주에는 친구들 몇 명이 만나서 저녁을 먹었다. 직장을 준비하는 친구도 있고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친구도 있었다. 철없는 20대 초반에 만난 친구들인데 이제는 잔뜩 가시 돋친 사회의 출입구에서 상처받고 지친 30대 아저씨들이 되어 있었다. 대화 주제도 20대와는 매우 달라졌다. 이룰 수만 있을 것 같았던 목표와 꿈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던 우리가 아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불만, 우리의 가치를 제대로 봐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불만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투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취업에 대한 준비를 못한 것이 자기 스스로가 부지런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걸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답답한 마음은 더 커졌다. 같은 시기에 같은 일들을 겪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나보다 더 안정적인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는 근황을 듣는데 슬슬 배가 아파왔다.
학교 교직원으로 취직이 되어서 일하고 있는 사람,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
대기업 인사팀에 들어가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친구 등등.
내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조금씩 깎여나가는 느낌이다. 깎여나가더라도 석상같이 예쁜 작품이 만들어지면 멋진 결과물이 되지만 투박하게 깎여나가는 자신감은 시간이 갈수록 보기 흉해진다. 흉해진 마음을 바라보면서 불안해진 나는 급하게 여기저기서 좋은 말들, 좋은 글귀들을 뒤져보면서 안정과 힘을 찾으려 하지만 그건 덕지덕지 진흙을 급하게 덧붙이는 것과 같아 오히려 자신감을 누더기처럼 만든다. 노력을 안 한 건 아닌데 최선을 다했나라는 나 자신에 대한 의구심도 고개를 든다. 그럴수록 억울한 마음이 물방울처럼 맺히더니 바닥에 고여 점점 찰랑거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쏟아내도 안에 있는 감정이 게워지지 않았다. 마음속 깊은 바닥에 달라붙어 떼기 힘든 껌같이 남아있었다. 이야기를 힘겹게 마무리하고 각자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내일도 일은 해야 하니까. 집에 도착해서 아직 쓰린 마음을 눅눅해져 가는 새우깡을 씹으면서 달래 본다. 되고 싶다. 정규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