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하고도 이상한 취향

#열여섯번째 글

by 신푸름

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결정장애를 가지고 있고 2명 이상 모인 자리에서 회의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 의견을 내는 시간이 생기면 내 의견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맞추는 편이다.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순간은 두 가지의 선택지를 두고 한 가지를 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여름에 놀러 갈 장소를 고를 때 산으로 갈 것이냐 바다로 갈 것이냐를 두고 굉장한 토론이 펼쳐진다면 그 속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할 것이다. 산이든 바다든 나는 다 좋기 때문이다. 산으로 가면 돗자리를 넓게 펴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장난 많은 친구들 때문에 물에 빠져서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물장난을 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고파하면서 고기를 굽기 시작할 것이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눈 감고 매미소리를 즐겨 듣겠지. 만약에 바다로 가면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양말을 벗어던지고 모래사장을 밟으면서 밀려오는 바닷물에 발을 적시고 놀 것이다. 그러다가 친구들 몇 명에게 팔다리를 붙잡혀서 안 빠지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이내 포기하고 저 멀리 바닷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나도 질 수 없다 하면서 희생양을 찾아 '하나, 둘... 셋!'하고 던질 것이고.


아무튼 나는 정말로 어딜 가든지 그곳만의 매력이 있다 생각하고 그걸 즐기면 되니까 상관없는데 몸은 하나이니 어딜 갈 것이냐 묻는 것은 나에겐 풀기 힘든 과제를 던져준 거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내 생각을 묻지만 나는 '다 좋은데 어떻게 이야기를 하지...' 하다가 '아무거나 좋아'라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답답해하면서 한 가지만 정하라고 한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다 좋다니까...

pexels-roberto-nickson-2559941.jpg 산이냐 바다냐 고르는 것은 부먹이냐 찍먹이냐 고르는 문제와 다를바 없이 첨예한 입장 대립이 있다.

이런 나에게도 확실하게 좋아하는 것이 있다.

치킨에서 양념보다 후라이드를 좋아한다. 후라이드를 선호하는 제일 큰 이유 중 하나는 손에 양념이 묻는 게 싫기 때문이다. 매콤 달콤한 양념이 손에 묻으면 쪽 빨아먹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일 테지만 나의 뇌는 양념이라는 것을 내 입 안에 직행할 것이 아니면 더러운 것으로 판별하는 것 같다. 만약에 먹게 되더라도 손으로는 잘 먹지 않고 접시에 올려 젓가락으로 열심히 살을 발라 먹었다. 오죽하면 죽어도 치킨 다리를 손으로 잡지 않고 먹는 나를 보면서 어머니께서 '그렇게 귀찮아서 밥은 어떻게 씹고 넘기냐'라고 하셨겠는가. 양념을 아예 안 먹는 건 아니다. 얄밉게도 순살이면 잘 먹는다. 이미 발라져 있으면 손으로 만 질 일이 없으니까.

고기를 먹을 때도 나의 이상한 깔끔함(?)이 드러난다.

보통 쌈을 싸 먹으려면 상추나 깻잎 위에 고기 한점, 편 마늘 하나, 쌈장 살짝 묻혀서 먹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쌈을 뭉치는 과정에서 쌈장이나 고기가 튀어나와 손에 묻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아예 따로 먹는다. 상추 한 장 먹고 고기 한 점 먹고 필요하면 쌈장은 살짝 혀 끝에 묻혀 먹는다.


책을 사서 읽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웬만하면 시리즈로 된 책을 사는 것을 피하는 편이다.

모으는 것에 집착이 있는 편이라 시리즈 전권을 사지 않으면 나머지를 채울 때까지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만약 연재가 되고 있는 중이라면 새로 나올 때마다 하나하나 모으는 것에도 집착한다. 한번 모은 것은 끝이 날 때까지 계속 산다. 지금도 그런 책이 몇 개 있다. 마지막 권을 샀을 때의 그 뿌듯함과 완벽하게 모았다는 성취감이 꽤나 큰 쾌감으로 다가온다. 정말 쓸데없는 성취감이지만 게임에서 캐릭터의 장비 아이템 세트를 완벽하게 맞추기 위해 몇백 시간을 사냥하고 합성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하는 자기 위로를 해본다.


모으는 것에 대한 집착은 매일 쓰는 일기, 다이어리에 까지 뻗친다.

나는 2008년부터 양지 다이어리만을 써왔다. 양지 다이어리 종류가 많은데 그중에서 '유즈어리40'만을 고집한다. 2008년이래로 2009년 한 해만 빼놓고 작년까지 13권을 써왔다. 2년마다 색깔도 바꾸는 규칙성이 있었다. 파란색 2년, 황토색 2년을 반복했었다. 어느덧 13권이나 모인 일기장을 보면 굉장히 뿌듯한데 이런 생각도 든다. '넌 참 이런 거에는 지독한 사람이구나.' 어찌 보면 13년 동안 일기를 쓸 수 있던 것도 다이어리 모으는 성취감의 지분이 그리 작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photo_2022-02-17_22-45-40.jpg 2008년부터 쓴 다이어리. 실수로 2018년을 파란색으로 샀다.


핸드폰 케이스는 얇은 것보다 범퍼가 있는 두꺼운 것이 좋다.

성능이 좋아지면서 점점 무게가 무거워지고 있기에 얇은 케이스가 좋을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내 핸드폰의 안전이 중요하다. 뛰다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튀어나와 바닥에 구를 수도 있고, 들고 있다가도 미끄러져서 떨어뜨리는 등,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돌발상황들이 많기에 핸드폰 케이스를 살 때 가장 최우선으로 보는 것이 핸드폰을 지킬 수 있는 안정성이다. 때로는 얇은 투명케이스를 써보기도 했지만 얼마 쓰지 못하고 바꾸고 만다. 그냥 마음이 편한 대로 쓰는 것이 제일 좋다.


한번 정해진 취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고집스럽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우유부단한 모습이 많은 나에게 있어서 취향이라는 것은 자존감을 올려 준다. 나도 이런 건 확실히 결정하고 고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나는 양념보단 후라이드가 좋으니까 후라이드 시켜줘!'라고 말하는 것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자신감 넘치는 말 중 하나이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취향이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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