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업, 쉽게 생각하면 안 되는 출판과정

by 신푸름

아침 운동을 끝낸 후 씻고 나와 핸드폰 충전 상태를 확인했다.

평소보다 많이 충전된 핸드폰을 보고 왜 이리 빨리 찼지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아, 이제 날이 따뜻해졌구나'


겨울에 새벽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은 얼음장같이 차가워져 있었다.

그 상태에서 충전을 하면 핸드폰 온도가 너무 낮아서 저속으로 충전한다고 경고 문구가 떴었다.

그래서 겨울에 운동하는 동안에는 집에 돌아와서 씻고 나와도 그리 많이 충전되어 있지 않았다.


이젠 바로 고속충전이 된다. 그 말은 이젠 그렇게 춥지 않다는 말이다. 봄이 서서히 오고 있다.

그러나 따뜻해지는 계절과는 다르게 나는 찬바람이 부는 겨울 같은 상황을 보내고 있다.




2월 어느 날, 메일을 통해 전자책 출판 제안이 도착했다.

아직 브런치 구독자 수가 많지 않고 내가 쓴 글도 책으로 낼만큼 퀄리티가 있는지 자신이 없었기에 이런 제안이 들어온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출판 제안을 한 출판사가 실제 있는 곳인지 의심해서 찾아봤는데 사업자등록이 된 출판사임을 알고 작업을 같이 진행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라고 한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좀 더 고민해봤어야 했다.


경제적 자유를 꿈꾸던 와중에 전자책 발행으로 인해 발생할 부수입에 대한 열망으로 덥석 계약을 했던 것이 문제였다.

내 책이 나온다고 하니 마음은 잔뜩 들떴지만 주변에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도 없었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으려고 해도 출판사와 손잡고 전자책을 발행한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글은 없어서 전자책 발행을 위해 어떤 것부터 점검해 나가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런 걱정, 불안과 더불어 이메일로만 소통해야 하는 상황은 나의 답답함을 가중시켰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물어볼 것도 많고 결과물이 나오기 전에 여러 가지 가안을 두고 실시간으로 이야기 나누면서 함께 방향을 잡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출판사에 대한 신뢰가 가질 않아 결국 나는 계약 해지를 요청했다.


원래 전자책 출판 과정이 이런 것인지, 절차상 드는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나와 출판사가 이 계약으로 인해 소통하는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입었다.

출판사는 전자책 발행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나보다 더 신경 쓰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그 절차에 들인 시간과 노력의 결과물이 저작권자인 나와 좀 더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나는 나름대로 내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인생에서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라고 생각해서 최선을 다해서 잘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내 의견이 반영했다고 하는 결과물은 내 생각과 너무 달랐다.

결과물을 보고 깜짝 놀라 내가 보낸 메일의 내용을 다시 되짚어보면서 내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읽어봤다.


출판사와는 전화나 메신저가 아닌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연락이 빠르게 되면 좋았겠지만 오전에 보낸 메일의 답이 오후 늦게 되어야 오는 경우가 많았다. 혹여나 출판 준비과정이 지체되지 않도록 메일 하나에 구체적인 내용을 작성해서 보내야 했다.

보낸 메일을 보니 상대방 측에서 이해 못 할 부분은 없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쓸 걸 하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런 부분은 다시 물어보면서 자신이 이해한 방향이 맞는지 검토를 거치는 대화가 있었다면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리고 그 엎질러진 물을 보고 나는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계약 해지를 하는 것으로 결단을 내렸다.




이번 일들로 많은 것을 느꼈다.

'나의 책'을 내기 위해서 내가 먼저 많은 것을 생각하고 정리해놓고 있어야 했다.

표지 디자인, 책 발행 목적과 방향, 책의 설명, 분량, 글 배치, 사진 삽입 여부 등.

자세히 파고들면 이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겠지만 내 글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는 경험이었다.


창작의 고통은 산고(産苦) 같다는 말이 생각난다.

남자 입장에서 그 고통을 감히 비교하는 것이 말이 안 되지만 하나의 글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퇴고하는 모든 일련의 과정이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을 임팩트있게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는 고통으로 나온 하나의 글을 두고 '이 아이는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라는 육아 계획도 없이 출산만 하고 모른 척한 것 같아 내가 창작이라는 영역을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니었나 돌아봤다.


최한기 님의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에서 이런 말이 있다.


글은 그 사람의 머릿속 뇌구조입니다.
글은 그 사람의 마음을 찍은 사진입니다.


글은 글쓴이의 얼굴이라고 했다.

내 얼굴이 침 뱉는 일이 없도록 전에 올린 글도 세심하게 돌아보고 앞으로 올릴 글도 더 고민해서 신중하게 올려야겠다.

이전 15화그렇지만 '오히려' 난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