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오히려' 난 할 수 있습니다
취업&이직 일기
최근에 제63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하 한능검)을 치렀다.
시험을 치기 전에 예상 준비기간이나 공부 방법에 대해서 정보를 얻으려고 검색을 많이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2주 만에 합격했다, 일주일 만에도 가능하다' 등의 후기 글을 올린 것을 보고 생각보다 짧은 준비 기간으로 가능한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괜히 공부시간을 짧게 잡았다가 만족할 결과를 못 내면 다시 도전하는 시간이 아까울 것 같아 한 달의 기간을 잡고 공부해 보기로 했다.
지금은 한국사가 수능 과목에 정식으로 편성되어 있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그렇지 않아서 역사를 학교 수업을 통해 억지로라도 배울 기회는 없었다.
어릴 때 만화로 나온 한국사 책들이 집에 있어서 그것을 읽은 게 내 인생에서 역사 공부의 전부였다. '만화로 보는 OOO왕조 OOO 년'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그 당시 그 책이 재미있었는지 책 표지가 닳도록 읽은 기억이 있다. 어떤 책은 표지가 찢어질 정도로 너덜너덜해져서 테이프로 붙이기도 했다.
그때 읽은 내용이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흐려진 자국을 새로 새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예 모르는 내용은 아니어서 다른 공부보단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느라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재미로 봤던 내용을 자격증을 따기 위한 취업의 도구로써 만나니까 부담스럽긴 했다. 유튜브에 무료로 올라온 강의를 활용해서 공부했는데 업로드된 강의 수가 꽤 많아서 준비기간 내에 잘 마칠 수 있을까 걱정도 들었다.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퇴근하고 공부를 시작해야 했고 계획을 세워보니 하루에 3강 이상 들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하루에 3시간 이상 꼼짝 않고 강의를 들었고 한 강의가 끝나고 기출문제 선지들을 빈칸 채우기 형식으로 복습하는 걸로 마무리 지었다. 11시가 넘어가면 피곤함이 머릿속을 지배했는데 너무 집중이 안 되면 포기하고 잘 때도 있었다. 그래도 진도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멱살 잡듯이 끝까지 잡고 나갔다.
시험일 2주 남기고 완강했을 때 고대 국가들,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 현대사 등 내용이 뒤섞여서 굉장히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이래서 문제를 풀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었다. 일단 강의하시는 분의 플랜을 믿고 따르기로 했다. 기출문제집을 사서 10회분을 풀었다. 그냥 무작정 푸는 것이 아니라 한 문제 풀고 해설 보면서 정답이 아닌 선지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그렇게 하니까 처음 한 회를 끝내는데 4시간이 넘어갔다.
집중을 못한 게 아니었다. 할 게 많았다. 문제 선지 중에 확실하게 개념이 떠오르지 않는 건 개념책에서 그 내용을 찾아 눈에 익혔다. 틀린 문제는 약점노트라는 것을 만들어서 강의 판서가 인쇄된 부록책에 나오지 않은 부분은 써넣고 부록책에 나왔는데 틀린 거라면 확실하게 표시를 해서 다음에 틀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첫 번째 회차를 풀고는 사실 좌절했다.
반 이상을 겨우 넘겼기 때문이다. 합격은 60점 이상부터였다.
그래도 이제 1/10을 한 거라 앞으로 점수를 올릴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고 2주를 버텼다. 점심시간과 출퇴근 시간, 자투리 시간에는 한국사를 총 정리해서 요약한 강의 영상을 핸드폰에 담아 무작정 계속 들었다. 나중에는 강사님이 하시는 추임새와 잡담 타이밍도 외울 정도였다. 그렇게 한 달을 한국사로 가득 채우고 시험일을 맞이했다.
한능검 보고 가답안으로 채점. 당당히 1급 안정권 점수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해서 시험을 굉장히 자신감 있게 봤다.
지난 몇 년간 본시험 중에 가장 자신 있게 봤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한 달간의 노력이 정직하게 결과를 냈다는 사실에 짜릿했다. 헷갈렸던 문제들도 다 맞아서 가채점이긴 하지만 97점으로 한능검 1급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겹경사로 여자친구도 같이 준비해서 시험을 봤는데 좋은 성적으로 함께 1급을 달성했다. 이렇게 공부하면 뭐든지 다 한 번에 합격할 것 같다.
요즘 공기업 지원 시 가산점을 받는 자격증에 한능검 자격증이 포함된다. 공무원 준비생, 취업 준비생, 자기 계발하시는 분 등 많은 분들이 시험을 보는 국가공인 인증시험이 되었다. 역사를 자격증 취득을 위한 것으로 공부하느라 깊게 알기보다 시험에 나오는 핵심만 골라 공부한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강의를 들으면서 강사님이 하시는 말씀 중에 이 말씀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원균과 일부 서인 세력의 모함으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당한 뒤에 원균이 그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원균은 일본 수군에게 대패하게 되고 조선 수군은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병사와 전선을 잃게 된다. 선조는 이순신 장군을 다시 복귀시킬 수밖에 없었다.
남은 전선을 회수한 이순신 장군은 그 유명한 명량해전을 앞두고 피해가 막심한 수군을 폐지하려는 조선 선조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지금 신에게는 오히려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今臣戰船尙有十二)'
'尙'은 '오히려 상'이라는 한자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조선 선조에게 올린 글의 내용이었다.
최악의 상황이지만 '오히려' 12척이 있다면서 죽을힘을 다해 싸우면 일본 수군에 대적할 수 있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명량해전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통해 일본과의 긴 전쟁을 끝낼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오히려'라는 단어가 주는 긍정적인 힘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강사님을 보면서 '오히려 좋아'라는 말이 떠올랐다. 예상치 못한 일을 당했더라도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는 의미의 신조어다. 위기의 상황을 기회로 삼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의미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이 치를 전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기에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울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안될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최선의 전략으로 희망의 미래를 뚫는 모습이 내가 앞으로 배워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에서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말한다. 내가 한능검 시험을 위해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보면서 따라 했던 것처럼 과거 인물들이 삶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밟고 괴롭혀도 '오히려' 그런 강압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사람들이 목숨을 바칠 정도로 마음을 모아서 항전하게 만들었다.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우리나라지만 끈기 있고 열심 내는 우리나라 국민성으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히려' 바닥이었기에 성장세가 가파르게 올라갈 수 있었다.
앞으로의 나의 삶에 어려움과 고난이 있더라도 '오히려'라는 말이 주는 긍정의 힘으로 뛰어 넘길 바란다. '오히려'라는 말을 계속 되뇌니까 지금 있는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보이는 느낌이다. '별 거 아닌데? 해볼 만 한데? 할 수 있겠는데?' 무엇을 하지 먼저 걱정이 가득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생각의 알고리즘을 고치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자격증 공부는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잡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스펙 쌓기 용이 아닌 이런 공부는 계속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