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 나를 사랑하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 줘

10년 후 나에게 보내는 편지

by 신푸름

차가운 공기가 날카롭게 폐를 찌르는 고통을 ‘으앙!’ 울음을 터트림으로 풀어 낸 첫 고생을 시작으로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을 칭찬하면서 기분 좋게 이 편지를 시작해 보려 해. 민성아, 마음은 넘쳐도 입술은 인색할 때 편지를 쓴다는 말도 있는데 나는 마음도 넘치고 만나서 떠들 것이 한가득이지만 너와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아쉽구나. 이렇게라도 하고 싶은 말을 남겨본다.


10년 후, 너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의 나에게는 이게 제일 궁금해. 현재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 누구와 사랑에 빠져 어떤 멋진 가정을 꾸려나갔을지. 인생의 큰일을 앞두고 준비를 하는 중인 나는 네가 가장 부럽다. 주변 친구들이 주는 청첩장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들은 남들보다 뒤처지는 건 아닌가 괜히 불안하게 만들더라. 그런 큰일을 잘 넘겼을지, 혹시라도 그런 일을 겪지 않고 혼자 살고 있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얼마나 성장을 했을지, 이제는 너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궁금하다. 너의 인생에 수많은 선택이 있었을 것이고, 아무리 신중한 선택이라도 후회나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기억에 남는 진한 경험들이 힘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가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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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후문에 있었던 작은 문구점에서 체육대회 때 쓸 콩주머니를 살려고 어머니께 돈을 받은 적이 있었지. 한 개에 300원 남짓했던 것 같은데 2개를 사고 당연히 주머니에 남아야 있어야 할 거스름돈을 쥐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순간 무언가 허전함을 감지했어. 그래, 너는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었어.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 사실을 깨달았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노력하시던 어머니는 놀라서 멍하게 서 있던 나를 호되게 야단치셨어. 다시 찾아간 문구점의 사장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문구점 문밖을 나와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어. 집에 돌아가는 길에 거스름돈을 받지 못해 어머니께 또 혼날까 봐 마음을 졸였던 기억들은 나에게 주어진 일이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수시로 점검하는 습관을 만들어 준 기회가 되었어.


처참한 결과를 맞이한 수능을 치르고 대학 입학원서를 준비하면서 봤던 드라마 ‘공부의 신’도 생각나. 전교에서 꼴찌를 면치 못하던 몇몇 학생들이 변호사 출신의 선생님을 만나 기초부터 공부하기 시작하는,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드라마였어. 아직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그 회차에서는 탁구를 치면서 수학 공식을 외우는 꼴찌 학생들을 보여주는데 그걸 보면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그 당시의 나는 나만의 멋진 미래를 준비해온 지난 12년의 초⦁중⦁고등학교 생활이 수능 하나로 박살 난 느낌이었고 자존감도 너무 떨어져 있었어. 나는 재수는 더 이상 할 자신감이 없어서 원래 목표를 했던 대학보다 입학 지원을 낮춰서 할 수밖에 없었고 자식에 대한 기대감이 크셨던 부모님은 크게 실망을 하셨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지원해 주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과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나름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봐. 바닥부터 열심히 노력하는 그 학생들의 모습이 마음 한구석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해 후회하는 자신을 일깨웠어. 나는 하늘에 구멍 뚫린 듯이 한참을 펑펑 울었어. 그 눈물이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잔뜩 멍들어 있던 마음을 보듬어 주는 기분이 들었지. 그날이 되어서야 스스로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었다는 것을 알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 마음을 먹게 되었던 것 같아.


대학교 학과를 정했던 이유가 가고 싶은 대학원 때문이었는데 그곳을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가겠다고 해서 부모님과 연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싸웠던 너 자신도 생각날 거야. 부모님 입장에서는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지 이제야 조금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젊은 패기로 밀어붙여서 부모님을 이겨야겠다는 마음뿐이었어. 20대 후반이 다 되어 가는데도 부모님과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고 일방적으로 내가 필요한 것만 이야기했던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야. 이때까지 걸어온 길을 엎어버리고 아예 새로운 길로 가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너는 힘들면 이겨내려고 하지 않고 꼭 피하려고 하더라'라고 하신 부모님의 말씀이 나에게 상처가 되고 내가 홧김에 내뱉은 말도 부모님께 상처가 되어서 서로 아픔을 가득 안게 되었지. 누구의 말이 절대적으로 옳은 건 아니었는데.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길을 갔지만 한동안 부모님께 말도 못 꺼내고 눈치 보면서 집에 가지 못했어. 나의 미래를 위해 이때까지 도와주신 부모님에 대한 예의는 아니었던 것 같어. 그걸 깨달은 뒤에도 부모님과의 대화가 많아진 건 한참 뒤에 일이긴 하지만.


남들보다 조금 늦게 사회에 발을 들이면서 소설 속 주인공보다 더 멋지게 나를 꾸며내야 하는 자소서와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고 면접 준비하느라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날도 많이 있었어. 메일과 문자로 불합격이라는 쓴맛을 수없이 맛보면서 처음으로 내가 선택해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후회하고 욕했던 것 같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때로는 아무 이유를 듣지 못하고 정중한 거절의 메시지를 하루에 10개, 20개를 받으니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의문까지 들 정도였지. 그러한 고통의 시기를 지나서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나는 나름대로 일을 찾아서 하고 있고 너는 나보다 더 나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 기대해. 넌 고난과 좌절을 하더라도 계속 노력을 멈추지 않는 성실하고 멋진 사람이야.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너지만 아침 새벽에 일어나 운동해야겠다 마음먹은 후 2년 넘게 빠짐없이 하면서 필요한 공부는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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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40대에 내 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지금 글을 써보기 위해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겁이 많아서 하지 못했던 여행도 다녀보면서 일상에 지친 감성에 숨을 불어넣어 보고 있어.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도 글 쓰려고 했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거든. 바쁘다고 핑계 대면서 글쓰기를 멈췄을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다시 펜을 들고 너의 마음을 담아보길 바란다. 투박하지만 솔직하게 내뱉는 너의 글이 어색하고 부끄러울 수 있지만 어렵게 붙잡고 한 편 만들어내면 속이 너무나 후련할 테니까. 나도 그렇게 알 수 없던 내 마음을 정리하고 다스리고 있어.


너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고 너를 의지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나보다 어른이 된 너는 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겪었을 것이고 그 일들을 혼자서 이겨내지 않았을 거야. 지금의 내가 만난 사람들, 함께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네가 무너지지 않게 받쳐주고 지켜주면서 응원해 주고 있을 거야. 힘든 시간이 되면 한 발짝 물러서서 너 자신을 바라보고 주변을 돌아봐줘. 제일 중요한 건 항상 너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으로 너를 판단하지 마. 지금도 틈날 때마다 바라보는 은행 계좌의 '0'의 개수가 너의 가치를 대신하지 않아. 지금도 나는 나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인지 의문을 가질 때가 있지만 나보다 더 큰 너는 어떤 모습이든지 너 자체를 사랑하고 보듬어 주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네가 바로 서야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지킬 수 있어.


민성아, 주변에 너를 이렇게 '민성'이라는 이름을 온전히 부르는 사람도 이젠 많지 않을 거다. 누구의 아빠, 누구의 남편, 과장, 선생님 등 이름보다는 역할에 맞는 호칭이 너를 부르겠지. 그 역할들도 충실히 해나가겠지만 '온화하게 사람들을 다스리는 큰 사람'이라는 너의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고 멋진 뜻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누구보다도 너를 항상 응원한다.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려가느라 고생했고, 세상에는 천천히 가야 보이는 것도 있으니까 걷는다고 느릴까봐 불안해하지 말고 너를 믿고 발을 내디디렴. 그때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할테니까. 노력한 사람이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은 모두 노력했다는 멋진 만화 속 대사를 생각하면서 너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지금의 나는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려고 매일 아침 일어나면서 다짐을 하고 있어. 편지를 보는 그때가 아침일지, 저녁일지 모르겠지만 그 날 하루 중 편지를 보는 이 순간이 입가에 가장 밝은 미소가 맴도는 순간이길 바란다. 이만 글을 마치며 낯간지럽지만 하기 어려운 말 한번 해볼게. 민성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


2022년 10월 20일

미래의 민성이를 믿는 지금의 민성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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