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한 상상력

상상 속 나만의 세상에서 현실 속 세상으로

by 신푸름

초등학교 때 나는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의 상상은 주로 등하굣길에서 이루어졌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나와 같은 또래 친구가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나와 친하지 않았고 얼굴을 마주친 적도 손에 꼽을 정도로 몇 번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 때 어머니께서 내 손을 잡고 우리 집에서 학교 가는 길을 같이 걸으셨다.

유치원 때부터 혼자서 등원하고 심부름도 하고 다녔었는데 어머니께서 직접 데려다 주시다니 신기했다.

알고보니 어머니는 길 잃지 않고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나에게 길을 알려주신 것이었다.

다음날부터는 다시 혼자서 등교를 해야 했다. 어머니는 어린 나를 굉장히 믿어주시는 편이었다.


수줍음이 많고 낯을 많이 가리긴 했지만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숨을 곳이 많은 학교는 친구들과 어울려 숨바꼭질과 경찰과 도둑 등의 잡기 놀이를 하기 최적의 장소였다.

얼마나 열심히 놀았는지 그때 뛰다가 넘어져서 찢어진 무릎의 상처는 아직도 남아서 볼 때마다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오르게 만든다.


신나게 놀다 보면 수업은 다 끝나고 집에 가야 하는 시간이 된다.

내가 사는 동네 쪽으로 가는 친구는 신기하게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집 방향이 같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하루종일 붙어있었음에도 못다한 이야기가 있는지 소란스럽게 떠들었다.

가끔씩 친구들이랑 더 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쉬웠다. 그럴때마다 가는 곳이 있었다.

학교 후문 근처 문방구에서 운영하는 게임방이 있었는데 이용자들이 주로 근처 중학교 형들이었다.

100원짜리 동전을 가득 쌓아놓은 형들이 신명나는 컨트롤로 게임을 깨는 걸 감탄하면서 저녁 먹기 전까지 눌러앉아있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도 혼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어머니께서 알려주신 등하굣길은 대로변 쪽으로 가는 정석적인 길이었다.

입학 이후 몇 달간 학교 다니면서 좁고 복잡하지만 미로를 통과하는 느낌의 새로운 길들을 알게 되었다.

그 길에는 그리 높지 않은 담벼락들을 가진 주택들이 많아서 초등학생 키로도 집 외관이 다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중간에 무너진 담벼락도 보이고 아직 지중화가 되지 않을 때라 가로등과 전봇대가 굉장히 많았다.

요즘은 위험하기 때문에 외진 곳 외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여름만 되면 대문을 활짝 열고 시원하게 지내시는 분들도 많으셨다. 그 때문에 집에서 살던 성질 사나운 개가 튀어나와 집으로 가는 길을 막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개를 제압할 별다른 무기도 없었기 때문에 기에서라도 지지 않으려고 눈을 노려보면서 한동안 서 있기도 했다.

변함이 없던 초등학교 등하굣길


어느 순간부터 매일 다니는 길이 나에게는 매일 새로워졌다.

같은 길을 가지만 나의 상상력은 엉뚱한 곳에서 발현되어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이 게임 속 주인공이 깨야하는 던전 코스가 되었다.

머릿속에서는 이 게임에 대한 스토리를 짜놓고 시작을 한다.

스토리는 유치하지만 정말 다양했다. 학교라는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용사라던지, 무림 세계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를 처단하기 위해 악의 본거지로 향하는 닌자라던지 말이다.

무너진 담벼락은 주인공에게 함정이 되었고 전봇대는 주인공이 없애고 지나가야 하는 크나큰 벽이며 중간에 나타나는 무서운 개들은 중간보스가 되었다.

비가 오는 날은 웅덩이가 큰 호수가 되어 뗏목을 구해 넘어야 했고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여름날 들리는 매미소리는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 주인공을 공격하는 소리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철저히 내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졌고 다른 사람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등하굣길에서만 열리는 나만의 세계인 것이다.

어떤 때는 그 스토리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주인공이 쓰는 무기 소리와 움직임을 입 밖으로 내기도 했다.

'슉슉, 휙, 펑'

어쩌면 내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뭔지 모를 말을 계속 중얼거리는 내 모습이 조금 무서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만의 세계는 중학교 1학년때까지 지속되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어떤 상상을 했는지 생각이 안나는 것을 보니 머릿속을 상상 대신 학교에서 배우는 암기 지식들로 꽉 채웠나 보다.


현재로 돌아온다.

휴가날 아침, 초등학교 때 걷던 등하굣길을 다시 걸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걷던 그 골목길은 도로명주소가 박힌 표지판이 새로 생겼고 대문들은 굳게 닫혀있는 것이 바뀌었을 뿐 그 자리에 있던 집들은 대부분 그대로였다.

재개발되고 리모델링되는 곳도 많은데 변함없는 모습에 신기해하면서 벌써 시간이 20여 년이 넘었다는 것을 깨닫고 또 놀랐다.


이 글을 적게 된 건 추억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옛날과는 다르게 그 길을 걸으면서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았구나'


머릿속에 펼쳐졌던 멋진 모험의 세계가 더 이상 나에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주변의 풍경과 지리적 변화를 느끼면서 옛날 사진을 꺼내보면서 느끼는 아련한 감정을 느꼈을 뿐이었다.

풍부했던 상상력은 20여 년 동안 자신을 찾지 않는 나를 보면서 자신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슬며시 자기 자리를 정리하고 떠난 모양이다.

성숙해지면서 잃는 것도 있었다.


어릴 때 나는 손날이 새까맣게 될 정도로 상상력 가득한 만화를 연습장 몇 개에 가득 채울 정도로 그렸었다. 그 상상력 안에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급격한 성장을 위해 주인공에게 고된 시련을 줄 수 있었고 힘든 모험의 끝에 해피엔딩을 그려낼 수 있었다.

상상에서라도 강하고 싶은 내 바람을 투영시켜 현실에서 할 수 없는 멋진 초능력을 쓰게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지독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능력이 필요했다.

행정적인 서류 처리를 위해 문서 작업 능력이 필요했고 윗선에 내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생각을 논리적으로 가다듬는 능력도 필요했다. 상사의 비위도 잘 맞춰야 했고 눈치도 빨라져야 했다.

오랫동안 찾지 않은 상상력이 지쳐서 짐을 싼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요즘 독립출판으로 나온 책들이나 동화책들을 하나씩 사서 보고 있다.

작가분들의 재치 있는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당연히 좋고 특히나 그 글을 눈에 쏙 담기도록 아기자기하게 표현하신 작화를 보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분들도 나와 똑같이 나이가 드신 분들인데.

이분들은 나와 달리 상상력과 잘 놀아주어서 떠나지 않았나 보다.


불편한 건 아니었다.

오늘 옛날 걷던 그 길을 걸으면서 그 녀석의 빈자리를 느꼈던 것이고 잠시 아련해졌을 뿐이.

앞으로도 이 녀석이 없다고 불안하고 안달 나진 않을 터이다.

그저 과거의 내가 가졌던, 그리고 현재의 나에게는 없는 상상력이라는 녀석은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혹시나 또 다른 나의 모습이 깨어나 이 세상을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고 지금과는 또 다른 꿈을 가지지 않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