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못하는 분야에 도전하고 새로운 경험을 맛보는 즐거움
나는 게임을 정말 못한다.
어릴 때 'PC방'이라 하면 남자아이들의 친목을 다지는 장소였는데 나는 거의 가질 않았다.
집에 있는 컴퓨터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부모님은 나와 동생이 게임하는 대신 책을 읽기를 바라셨다.
몰래 먹는 음식이 더 맛있는 법.
우리는 부모님이 장 보러 가시느라 집이 비는 주말만을 기다렸다. 그때 우리는 꽤 용의주도했다.
부모님이 다시 돌아오실 수도 있으니 주차장에 차가 없는지 확인한 뒤에 컴퓨터를 켰다.
부모님이 나가신 지 1시간 전후가 되면 귀에 모든 감각이 집중된다.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나는지 예민하게 반응해야 했다.
부모님이 차에서 내려 짐을 내리고 집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오시기 전! 전원과 모니터가 완벽히 꺼져야 범죄현장의 증거를 없앨 수 있었다.
모든 것을 해냈을 때 나와 동생은 서로의 눈빛을 마주치면서 완전범죄가 성공했음을 흡족했다.
부모님이 건네시는 장바구니를 열심히 옮기면서 부모님이 오시기 전까지 공부를 열심히 했던 성실한 아들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후에 알게 된 것은 아버지는 장을 보고 오시면 항상 컴퓨터 본체 온도를 확인하셨다고 했다.
따땃한 컴퓨터 본체를 이미 느끼셨는데 컴퓨터 안한 척 공부했다고 떠드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정을 어떠셨을까.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이었던 셈이다.
게임을 했던 시간이 적으니 친구들하고 어울려 할 수 있는 게임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순수하게 피지컬로 하는 게임은 타고난 감각과 공들인 시간에 비례하여 실력이 올라간다.
그렇기 때문에 피지컬을 요구하는 FPS 같은 게임은 당연히 잘할 수 없었다.
팀으로 하는 전략게임은 맵 전체를 볼 줄 아는 시야를 가지고 자기 할 것만 하는 게 아니라 팀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유동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시야를 가지지 못한 평균 이하의 실력이라서 같은 팀이 된 친구들에게 먼저 사과를 하고 시작하기도 했다.
내가 하는 유일한 게임은 혼자서 하는 게임이다.
온라인상 경쟁해야 하는 게임보단 혼자서 레벨업하고 퀘스트를 깨서 성장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혼자서 하니까 실수해도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남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으니까 말이다. 스마트폰으로도 수많은 게임 어플들이 나와있지만 손이 가질 않았다. 재밌다고 해서 설치해도 하루 이틀이면 삭제해 버린다. 내가 생각해도 놀랄 만큼 관심이 식어버려서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덕분에 핸드폰 게임도 거의 안 하니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만나도 게임하느라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사람보다는 내가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본다.
최근에 게임을 하나 시작했다.
사실 예전에 한번 도전했다가 너무 어려워서 지운 게임이다.
고대 벌레 마을에 발생한 감염을 조사하기 위해 주인공이 벌레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는 내용인데 중간에 나오는 중간보스가 너무 잡기 어려워서 포기했다. 후기를 보면 다른 게임에 비해 쉬운 편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깨지 못하는 나 자신이 짜증 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보스를 만날 때마다 벌렁거리는 나의 새 가슴과 보스와 몇 합 겨루지 못하고 주인공을 죽게 하는 내 손가락(목숨 하나 차이로 죽을 때 스트레스는 정말...), 이 둘의 환장의 콜라보는 심지어 자존감까지 떨어뜨렸다.
꼭 게임을 해야 사는 것도 아니고 게임을 안 했으면 상관없었지만 일단은 시작을 했고 그 과정에서 너무 실력이 안 좋은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이런 걸로 나 자신을 미워하지 말자며 깔끔하게 포기했는데 이번에 다시 도전하게 된 것이다.
도전한 이유는 그동안 꾸준하게 무언가를 하다 보니 느리더라도 성장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못하는 것,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도전 의식도 생겼다. 별 것도 아닌데 집착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이런 변화는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게임뿐만 아니라 운동이든 무엇이든 새로운 분야를 경험하고 생각의 폭을 넓혀 지금보다 더 성숙해지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저번 주, 리셋하다(구, 봄날에 연애) 카페를 운영하시는 작가님으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카페에서 무료로 시 창작 수강생을 모집하는데 이번 기회에 신춘문예에 도전해 보라고 하셨다.
2년 전에 카페에 방문한 뒤로 인연이 생긴 뒤에 이런 글 쓰는 기회가 있으면 계속 연락을 주셔서 감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수업을 들으려니 엄청난 부담감이 생겼다.
나는 실제로는 별일 없지만 스케줄을 보겠다고 말씀드리고 고민할 시간을 가졌다.
'내가 신춘문예라는 큰 무대에 도전할 수 있을까? 수업을 다 들었는데도 성장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생각지 않던 큰 목표와 성장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으로 고민하던 중에 마음속에서 발견된 불씨를 키워보기로 했다. 새로운 경험.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몇 번의 수업으로 신춘문예에서 수상하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신춘문예에서 수상을 못하더라도 평소 많이 접하지 못한 '시'라는 영역을 깊게 경험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자고 마음을 먹으니 부담감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시인 작가분이 직접 하시는 수업을 무료로 들을 기회도 거의 없다는 것도 결정을 하는데 큰 요인이 되었다. 다음날 작가님께 연락해서 수업을 듣겠다고 말씀드리면서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뭐 어때, 너무 생각 많이 하지 말고 일단 해보자구.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고 피하던 예전 나의 모습을 이렇게 점차 이겨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