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olta Capios 140 - 006
1995년에 태어난 미놀타 카피오스 140 필름카메라를 처음 손에 넣었을 때, 솔직히 큰 기대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이름에서 풍기는 그럴듯한 아날로그 감성과 달리, 손에 들어온 실체는 생각보다 크고 묵직했기 때문이다. 은빛 플라스틱 바디는 단단해 보였지만 세련됨보다는 투박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콤팩트를 상상했던 내게, 약 13cm 너비의 이 카메라는 한 손에 가득 찰 만큼 컸고 무게도 꽤 실렸다. 처음엔 “이게 그렇게 로망의 카메라인가?” 하고 의아한 마음에 감흥이 덜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 그런 첫인상은 금세 잊혔다. 손에 쥔 카메라의 묵직함은 오히려 안정감으로 다가왔다. 무게 중심이 흔들리지 않아 셔터를 눌러도 손떨림이 적게 느껴졌다. 줌 렌즈가 윙 소리를 내며 앞으로 부드럽게 돌출될 때는 마치 작은 망원경을 다루는 듯한 흥분도 일었다.
38mm의 넓은 화각에서 140mm 망원까지 조용히 오가는 줌 동작은 멀리 있는 장면을 내 눈앞으로 끌어당겨 주었다. 자동 초점은 피사체를 금세 찾아내었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찰칵” 하는 경쾌한 느낌과 함께 촬영이 이루어졌다. 쾌적함이란 이런 것일까 – 별다른 설정에 신경 쓰지 않아도 카피오스 140은 착착할 일을 해내주니, 나는 오로지 장면과 순간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찍고 나면 자동으로 필름이 부드럽게 감기는 소리가 뒤따랐고, 그렇게 한 컷 한 컷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며칠 뒤 현상소에서 받아 든 사진들을 펼쳐볼 때, 예상치 못했던 매력이 드러났다.
사진마다 어딘지 모르게 독특한 붉은 기운이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졌다. 마치 오래된 영화 필름을 한 장 한 장 인화해 낸 듯한 분위기로, 디지털 사진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색감과 촉감이었다. 아마도 내가 그때 특별히 구해 넣었던 영화 촬영용 필름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현대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약간 색이 튄 결과물일지도 몰랐지만, 사진 속 옅은 붉은빛은 오히려 따스하고 포근하게 다가왔다. 해 질 녘 노을 아래서 찍은 장면들은 붉은 기운을 받아 더욱 빈티지한 향수를 자아냈고, 피사체들의 윤곽은 날카롭기보다는 살짝 스며들 듯 부드러워서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미놀타 카피오스 140은 기계적으로 완성도가 매우 높은 카메라였다. 90년대 중반의 최신 기술이 집약된 덕분에 노출은 정확했고 초점은 신속했으며, 어두운 곳에서는 자동으로 플래시가 솟아올라 제 몫을 다했다. 한마디로 흠잡을 데 없이 똑 부러지게 움직이는 우수한 기계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완벽함이 자칫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너무 매끄럽고 정확하면 오히려 사용자로서는 개입할 여지가 없고, 감성보다는 기능만 돋보일 위험이 있으니까. 다행히도, 카피오스 140은 그 빈틈없이 돌아가는 완벽함 속에 작은 모자람을 한두 가지 품고 있었다. 이를테면 광학적인 한계 때문에 최대 줌 구간에서는 이미지가 살짝 소프트해지는 모습이나, 묵직한 바디를 오래 메고 다니면 어깨에 느껴지는 미세한 부담 같은 것들이었다.
또 자동으로 알아서 척척 움직이는 동안 가끔은 “내가 찍는다”는 실감이 덜할 때도 있었는데, 그런 순간이면 오히려 카메라 특유의 소음이나 렌즈 움직임에 의지해 감성을 채우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그 약간의 부족함들이 이 카메라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 준 듯했다. 완벽함 속에 살짝 비어 있는 부분이 있었기에 사용자의 상상력이 들어갈 자리가 생겼고, 그 틈새를 통해 이 기계와 교감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정이 간다는 말처럼, 나는 카피오스 140의 작은 빈틈에 더 큰 애정을 쏟아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 카피오스 140과 함께한 날들을 떠올려보면, 마음 한구석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적 여운이 배어 있는 것을 느낀다. 일본에서 말하는 **‘로망미’**란 표현이 있다는데, 아마도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필름 카메라만이 줄 수 있는 아날로그 한 손맛, 그리고 완벽하지 않음에서 비롯된 따뜻한 인간미가 뒤섞여 만들어진 정서적 울림. 그 감동은 수치로 표시되는 스펙 이상의 것이어서, 글로 풀어내기조차 쉽지 않은 종류의 것이다. 미놀타 카피오스 140은 분명 빛을 기록하는 작은 기계장치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기술 이상의 낭만과 이야기들이 숨 쉬고 있었다. 나는 이 카메라로 순간을 포착할 때마다 단순한 촬영 이상의 의미를 느꼈고, 결과물을 손에 쥘 때마다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곤 했다. 카메라를 내려놓은 후에도 한동안 잔상처럼 남는 그 감정의 여운… 아마 그것이 로망미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종의 낭만적 향기였을 것이다.
그렇게 한 롤을 다 찍고 마지막 장면의 셔터를 누르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용한 공간에 울려 퍼진 ‘틱~ 찌이잉’ 하는 셔터음과 필름 감기는 소리. 그 작고도 선명한 기계음이야말로 카피오스 140이 내게 남긴 로망의 여운이었다. 틱~ 찌이잉… 그 여운 어린 울림이 지금도 귓가에 맴돌며, 1995년 산 이 필름카메라와 함께한 순간들을 더욱 아름답게 기억 속에 간직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