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왕의 카메라 롤라이 35

Rollei 35 - 005

by hongrang

작고 단단한, 롤라이 35

처음 셔터를 눌렀을 때의 소리는 놀랍도록 작고 확실했다.


무언가 중요한 장면이 내 안에 기록되었다는 느낌. 묵직하지만 날렵한 손맛은 그 작은 카메라에 담긴 오랜 역사와 품질을 말해주는 듯했다. 이 작고 단단한 카메라의 이름은 롤라이 35.

세상에서 가장 작은 35mm 필름 카메라로 알려진 이 기기는, 1966년 포토키나에서 첫선을 보이고

1967년부터 본격 생산되었다. 최소형의 자리는 1970년 올림푸스 AX가 등장할 때까지 롤라이 35가 지켰고, 그 뒤로도 수많은 사진가들의 손끝에서 여전히 회자된다.


내가 가진 모델은 1974년 4월 이후 발표된 싱가포르 생산 모델이다. 원래 롤라이 35는 독일에서 생산되다가 1973년 원가 절감을 위해 생산지를 싱가포르로 옮겼다. 콜렉터들 사이에선 독일산에 프리미엄을 매기지만, 실제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독일과 싱가포르 버전 모두 재질이나 품질 면에서 큰 차이는 없다는 말이 많다.

내 손에 들어온 이 모델도 그런 이야기들을 증명하듯, 단단하고 정직한 느낌이었다.


KakaoTalk_Photo_2025-04-05-23-53-22 002.jpeg 단정한 노출계


이 작은 카메라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용한 금장 기념모델로도 유명하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진을 잘 모르는 이들조차도 '롤라이 35'라는 이름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딘가 장롱 깊숙한 곳에서, 혹은 아버지의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그런 전설 같은 존재 말이다.

롤라이 35와 나는 사실 몇 번의 스침이 있었지만, 늘 한 롤도 찍지 못한 채 내 손을 떠나곤 했다.

그러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눈에 불을 켜고 찾았고,

마침내 지금의 이 싱가포르산 롤라이 35를 품게 되었다.

스크린샷 2025-04-05 오후 10.54.47.png 엘리자베스 여왕 롤라이 35 금장(인터넷 발취)


이 카메라의 매력은 단순히 작고 예쁘다는 것을 넘어선다. 셔터, 조리개, 폴딩형 렌즈까지—디자인은 마치

스팀펑크 가면처럼 정교하고 기묘하며, 기능적으로도 충분한 손맛과 정숙한 릴리즈 감각을 제공한다.

목측식 거리계는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그 또한 이 카메라만의 감성적인 조율법이다.

파인더는 투명하게 뚫려 있지만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신경 써서 찍어야 한다.


하지만 노출계 바늘에 집중하고, 조리개를 F16에 두고 피사계 심도를 확보한다면

낮에는 캔디드 포토에도 손색이 없다. 작은 바늘 하나에 온 정신을 모아야 한다는 그 감각이,

오히려 더 집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카메라는 사진을 위한 기계인 동시에, 패션 아이템이기도 하다.

KakaoTalk_Photo_2025-04-05-23-53-22 001.jpeg 하단에 필름이송레버 및 콜드슈

목에 걸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그거 롤라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전문 사진가의 이미지라기보다는, 감성을 즐기는 어느 지점에 위치한 느낌이다.

마치 패션과 취미 사이, 실용과 아름다움 사이를 걷는 듯한 기분.

첫 롤은 이태원에서 지인들과 함께였다. SLR로 볼 땐 전혀 몰랐던 거리감, TLR과는 또 다른 시선.

롤라이는 마치 바늘구멍으로 훔쳐보는 것 같은 작은 파인더 안에 비밀을 품는다. 작고 은밀한 그 창 너머,

세상은 언제나 새롭고 낯설게 느껴진다.

사진을 잘 찍어내는 카메라이기 전에, 나를 조용히 들여다보게 해주는 카메라. 롤라이 35는 그런 존재다.




"찌~~~이익, 촤락."

121805100007231219.jpg
121805100009231219.jpg
안동 월영교
121805100012231219.jpg 도산서원 시사단
121805100018231219.jpg 봉정사 모란
121805100020231219.jpg 애완묘 깻잎
121805100022231219.jpg 여름의 능소화

그 소리 하나면 충분하다. 나의 첫 롤라이 35는 어느 날, 우연처럼 흘러 들어왔다.

모 유명한 클럽장이 정리한 컬렉션 중 하나였다.

수리를 즐기던 사람이었고, 아마도 그의 수많은 수집품 중 미련이 덜한 모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레버는 살짝 빡빡했고, 또 어떤 레버는 지나치게 부드러웠다. 정제되지 않은,

그렇기에 더 살아 있는 감촉이었다.

내가 찍은 첫 필름은 흑백 영화필름이었다. 감도 500의 거친 질감, 흐린 날씨,

우연히 겹쳐진 모든 조건들이 마치 영화 한 장면처럼 묘하게 극적이었다. 콘트라스트는 진득했고,

빛은 부드럽게 번졌으며, 전체적으로 수채화나 파스텔 같은 무드를 담아냈다.

그렇게, 나의 첫 롤라이 35는 수채화 같은 기억을 남겼다.

keyword